삶을 고민하다 452

Durham 에서

살포시 비가 내리는 창밖 너머에는 천년의 고풍을 자랑하는 더람 성과 성당이 말없이 자리하고 있다. 한 주 내내 날씨가 맑은 편이더니 학회가 끝나는 주말부터는 비가 내린다. 익숙한 날씨 인듯 아랑곳않는 사람들은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탄다. 더람 성을 휘도는 작은 강 위에 현대적 모습의 작은 다리가 산뜻하게 걸쳐있다. 캠퍼스를 오가며 매일 건넌 다리지만 오늘따라 더람 성을 배경으로 현대의 역사가 겹쳐지는 듯 하다. 스코틀랜드의 침략을 맞아 잉글랜드 북방의 중요한 요새였던 더람이 큰 확장없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근대의 광산개발에도 불구하고 성과 성당을 두르는 더람의 중심부는 강으로 둘러싸인 크기 때문인지 옛모습을 담고 있다. 천년의 역사 동안 사람들의 삶은 변했을까? 북쪽의 침략을 막아 농민들을..

이원석의 [거대한 사기극]

이원석의 "거대한 사기극"을 읽었습니다. 범람하는 자기계발서의 역사와 배경을 훝으며, 사회의 안전망은 점점 약화시킨채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자기계발의 시대를 비판하는 걸작입니다. 자기계발의 붐 자체가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것이죠. 이 책에 언급된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을 보며 자기계발서들이 베스트셀러에 많이 포함되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 수준임에는 정말 놀랐습니다. 그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의 이름이 하나씩 나오는데 저는 그 중에서 한 권도 읽은 책이 없더군요. 물론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자기계발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계발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사회를 저자는 까발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대한 사기극이죠. 책의 재미는 자기계말을 종교 특히 기독교와 비교해서 풀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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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고 있다. 오래된 CD케이스를 열어 비발디의 봄의 악장을 듣는다. 창 밖, 결혼식장을 향하는 사람들의 총총대는 발걸음이 눈에 들어온다. 쏟아지는 봄비 후에 피어나는 새싹처럼 바이올린의 선율이 가날프고 섬세하게 마음을 휘젓는다. 봄은 언제나 그렇듯 잃어버린 땅을 떠올리게 하고 봄이 없던 시간을 한숨에 망각시키듯 단절된 10년의 삶을 넘어 봄의 추억으로 데려간다.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길디 긴 장문으로 아줌마의 수다처럼 먼 이국의 삶들을 그리고 있으나 인생이 드러내는 삶과 사랑과 사람들은 시공간의 차이를 넘어 오늘 여기 일상에 오버랩된다. 나는 비를 맞고 추위에 떠는 새싹처럼 따듯한 햇살을 쬐려 기다리는 노인처럼 사계절을 끌고가는 시간에 밀려다니다 낯선 길을 두리번거리는 사내처럼 오늘 여기서 봄을..

18대 대선 1주기를 맞이한 기윤실의 성명서

박근혜 대통령의 각성을 촉구합니다하나님의 품성인 공의를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 모인 우리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18대 대통령선거 1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사회에서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는 공의의 훼손과 이로 인한 공동체의 분열을 개탄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힙니다.1. 지난 대선에 국가기관이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다양한 의혹이 검찰수사를 통해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초에는 국가정보원의 댓글조작 사건으로 시작했으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군 사이버사령부와 보훈처 등 여러 국가 안보기관의 총체적이고 불법적인 선거개입 정황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2.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은 선거의 공정성이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으로 그것이 설사 기관의 조직적인 개입이 아닌 소속원 한 개인의 범죄..

삶을 고민하다 2013.12.20

[책] 약함이 강함입니다. - 김홍덕

오랜 만에 미국에서 맞는 추수감사절을 보냈습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살던 시절에는 주로 친구나 지인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연구년으로 미국에서 보내는 올해는 고향에 못가는 나그네처럼 그러나 여유있게 추수감사절을 보냈습니다. 김홍덕 목사가 쓰신 '약함이 강함입니다'라는 책을 밤 늦게 까지 읽었습니다. 지난 번에 동저자의 '지적장애인에게 세례를 베풀라'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감상을 남겼지만 이번에도 많은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다운증후군 딸을 키우는 목사님과 다운증후군의 아들을 키우는 전도사님의 장애인 선교와 사역을 다룬 책입니다. 다운증후군을 비롯한 여러 장애에 얽힌 일화들이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장애 혹은 장애인에 관한 나의 꽉 막혔던 인식과 선입견을 보기좋게 깨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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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에 아침이 깃듭니다. 짙어지는 여명을 배경으로 까치들이 활기찬 아침인사를 하고 물들어가는 은행나무들은 가을의 문턱에 섰습니다. 관악산을 마주하고 계절을 생각합니다. 한가한 도로 위를 쏜살같이 달리는 차들이 붉은 신호등에 멈춰섭니다. 머리속을 가득 메운 온갖 두뇌작업들을 내려놓고 나도 잠시 멈춰 섭니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당신은 이 길의 동행입니까? 아님, 이미 오래전 어느 갈림길에서 당신의 길을 벗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아우성대는 이 넓은 도로를 쓸쓸하게 질주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언제나 그렇듯 당신은 말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화엔 말이 필요없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는 시간이 무한 같습니다. 그러나 태양은 당신의 얼굴을 비추고 오늘도 나는 그의 나라를 숨쉬고 있..

1월 초 워싱턴 DC방문

1월 초에 5일에서 9일까지 DC에서 미국천문학회가 있습니다. 어차피 서부에 있으니 참석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9일 오후 늦게 일정이 끝나면 10일 비행기로 LA에 돌아올까 해서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혹시 동부에서 만날 사람들이 있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차피 학회 다음에는 주말이라 시간은 있는데 동부에 가는 발걸음을 뭔가 유용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퍼뜩 스치고 지나갑니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걸까요?

멀티태스킹

머리 속에 여러 생각들이 한꺼번에 돌고 있습니다. 여러 연구 프로젝트들의 상황, 다음 단계 연구 내용, 연구비 관련 자잘한 일들, 학생 지도와 관련된 일, 참석할 컨퍼런스, 발표 준비, 그리고 마감이 다가오는 글쓰기, 집필 계획... 아침 시간, 샤워를 하면서 수많은 생각들을 하다 보면, 머리를 감았는지, 세안을 했는지, 샤워젤을 사용했는지, 샤워의 3단계 중 어디까지 했는지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라는 책에서 멀티 태스킹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수렵사회 시절부터 있었고 멀티 태스킹을 하는 것은 원시사회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얘기를 썼습니다. 사냥한 동물을 먹으며, 더 힘쎈 놈이 다가오지 않나 경계해야 하고, 새끼들도 돌봐야 하고 동시에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할 수 밖에 없던 시절..

[책] 교회여 지적장애인들에게 성례를 베풀라 - 김홍덕

얼마전 참석했던 한 세미나에서 장애 신학에 관한 강의를 두번 연강으로 들은 뒤에 지적장애인들에 관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강사였던 김홍덕 목사님이 저술하신 두 책 중에, 오늘 "교회여 지적장애인들에게 성례를 베풀라"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습니다. 세미나를 통해서 들었던 도전들을 새롭게 실감하게 됩니다. 지적장애인들에 세례와 성례를 베풀지 말아야 하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걸까요? 그들에게도 세례와 성례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책 중에 이런 얘기가 담겨있습니다. 어느 교회에 꾸준히 출석하고 있던 24살 자폐장애인은 예배에 꾸준히 참석하고 성경공부 시간에도 내용을 곧잘 이해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노"라고 대답을 한다는 것이죠. 물론 모든 질문에 "노"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