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 452

교토대 방문

어제는 교토대학 천문학과의 망년회가 있었습니다. 말그대로 망년회라고 하더군요. 대학원생, 포스닥, 교수, 직원들이 다 모여 스끼야기 집에서 넓은 방을 차지하고 망년하는 자리랍니다. 마침 교토대를 방문하는 기간이라 손님으로 초대받았습니다. 시니어 교수 한분이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바로 식사를 합니다. 다다미방의 둥그런 테이블에 앉은 대로 먹다가 분위기가 오르자 서로 테이블을 오가며 수다떨며 망년을 합니다. 엑스선 천문학은 일본이 자랑하는 분야입니다. 20세기 중후반부터 일본이 쏘아올린 엑스선 우주망원경들도 즐비합니다. 안타깝게도 지난 2월에 쏘아올린 히토미라는 엑스선 위성 발사된 지 얼마되지 않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재라는 평가입니다. 그 위성을 대신할 히토미2를 준비하고 있는데 다행히 첫 1년의 예..

거짓의 영이 휩쓰는 나라

거짓의 영이 휩쓰는 나라2016.12.25 성탄절입니다. 가난한 목자들에게 들렸던 기쁜 소식을 깊이 묵상하기에는 요즘 나라가 참 시끄럽습니다. 얼마 전에는 분노의 영이 나라를 사로잡고 있다는 어느 목사님의 말에 참 답답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분노의 영은 촛불을 든 국민을 미혹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해먹은 걸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최순실 부역자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겉으로는 분노를 드러내지 않고 쫄아있는 모습이지만 사실 그들의 마음에는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하는 분노가 가득할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분노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습니까? 예의바르고 인사잘하면 착한놈들 같지만 원래 사기꾼들이 더 예의바르고 인사잘하고 화 안내는 법입니다. 분노의 영 운운하는 얘기를 들으니 성전에서 물건들을 뒤집어..

예수께 묻다

예수께 묻다 나: 당신의 도를 따라 살려면 세상에서 누구에게 고난을 받겠습니까? 수: 세상 모두에게서 고난을 받을 것이다. 나: 그렇다면 무신론자와 목사 중에 누구에게 더 고난을 받겠습니까? 수: 목사에게 더 고난을 받을 것이다. 나: 어찌 그런 일이 벌이질 수 있겠습니까? 수: 나도 당대의 목사인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에게 고난을 받았다. 나: 그래도 그렇지. 어찌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수: 세상을 감당하려 하지 말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길을 걸어라 나: 저는 한낱 인간에 불과 합니다. 제가 뭐 신이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수: 나도 이 땅에 인간으로 와서 살았다. 나: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미국, 박근혜가 대통령인 한국에서 어찌 살겠습니까? 수: 헤롯과 빌라도만 하겠느냐? 나: ..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끔씩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끔씩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버겁고 무거운 일들이 겹치면 인간의 몸은 세포까지 그 무게에 눌리는 건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버리고 싶도록 이 땅엔 불의와 폭력이 가득하고 이제는 사사로운 개인의 공간까지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한히 감지되는 악. 그것을 벗어나는 일은 지구를 떠나는 수 밖에 없는 듯. 그사이 슬쩍 돌아 본 내 삶엔 끝없이 남과 비교하는 상대적 박탈감과 허전함이 엄습한다. 충분히 가졌음에도 더 가진 자들의 비웃음이 눈에 선하고, 충분히 행복함에도 행복의 지수적 증가를 추구하는 죄성엔 몸둘 바를 모르겠다. 청춘을 바쳐 바람의 방향을 바꾸려는 노력은 끝없이 몰려드는 왜곡과 비난과 몰지각한 태도들 앞에 소귀에 경읽기 같고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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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5일 비가 내렸다. 가을 같은 스산한 바람이 살짝 열어둔 창틈을 타고 넘나든다. 벌써, 바람이 시렵다. 합시코드와 바이올린이 이 소박한 3차원을 메운다. 이 둘 만큼의 조화로움은 우주에서도 보기 드물듯 흐르는 선율이 시간을 멈춰 세운다. 9월의 시작에 이렇게 나는 정.지.한다. 7년의 세월이 이 캠퍼스를 후다닥 넘어가려한다. 붙들지 못할 너의 이름은 도망자 언제나처럼 나는 너를 좇고 두고온 너는 추억의 복받친 울음을 선사한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무엇이던가 사랑에 빠진 연인과의 설레임도 내일의 만남이 주는 잠못드는 뜰뜸도 어머니의 품처럼 아끼고 품었던 시간과 공간과의 정도 모두 시간의 거대한 파도속에 모래알처럼 문드러져 기억조차 퇴색한 치매환자의 그림처럼 아득하다. 아직도 나는 너를 만나..

한 학기 열심히 강의했던 노고가 한 방에

오늘 받은 이메일. 한 학기 열심히 강의했던 노고가 한 방에 사라집니다.------ 수업에서 좋았던 점을 꼽자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교수님께서 학생들 이름을 다 알고 계시고, 불러주셨던 거였어요. 저는 지금 4학년 1학기인데, 항상 조용히 수업듣다 가고 그런 학생이다 보니 제 이름을 외워주셨던 교수님은 소규모 강의 진행하셨던 한 두분 빼고는 없었는데 제 이름을 외워주셔서 정말 너무 감동이었어요... 4학년 되니까 친구나 동기들 만나기도 힘들고, 항상 조용히 학교에서 수업듣다 바로 집가고 그러니까 제가 투명인간 같았는데 인간과 우주 수업은 교수님, 그리고 다른 학우분들 덕분에 따뜻한 수업이었어요. -----너는 나에게로와서 꽃이 되었다... 매번 교양과목 강의를 하다보면..

긴 하루를 시작하며

긴 하루를 시작하며 새벽 6시반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간수치가 떨어져서 아침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전화였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은 어머니 오른쪽 무릎 연골 수술입니다. 아침 출근시간이라 평소보다 훨씬 오래 걸려 병원에 주차하고 전화를 했더니 벌써 수술실로 이동 중이랍니다. 겨우 수술실 앞에서 만난 어머니는 아들이 뭐가 그리 좋은지 활짝 웃으십니다. 가족끼리 아침식사를 하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눕니다. 본인이 없어 아버님이 식사도 못하신다고 걱정하며 한껏 우울해지시는 어머니. 혼자서도 잘 한다는 아버지. 사는 게 바빠 잘 돌아보지 못하던 두 분을 수술을 계기로 자주 가까이서 보게 되니 많은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사랑하는 이가 아무도 남지 않은 채 죽어가는 마지막 길은 이 영원스런 시간 속에서 ..

실비가 흩뿌리는 촉촉한 이른 아침

실비가 흩뿌리는 촉촉한 이른 아침 부지런히 지저귀는 새소리가 고용한 동네를 깨웁니다. 창밖 노란 종탑 위로 십자가가 보이고 여전히 잠자는 듯한 2층집들 사이로 차들도 쉬고 있는 길을 내려다보며 시편을 읽습니다. 저 엹게 낀 구름 뒤에는 해가 있고 별이 있겠습니다. 지구 반대쪽으로 가버린 달도 해와 별과 함께 변함없이 빛나고 있습니다. 비록 잠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하늘 위의 하늘들, 하늘 위에 있는 물들아, 찬양하여라. 야훼의 명령으로 생겨났으니, 그의 이름 찬양하여라. 지정해 주신 자리 길이 지키어라. (148편)시편기자가 천문학을 배웠더라면 은하들과 블랙홀들도 찬양의 대열에 끌어냈을까요. 비행기에서 본 '이집트의 신들'이란 영화 장면이 쓸쩍 겹쳐집니다. 새소리를 알아들을 뻔 하는 중에 교회 종..

젊은 교수가 어쨌다고?

젊은 교수가 어쨌다고? (2016년 5월 26일)https://www.facebook.com/jonghak.woo.9/posts/2040031042888170 공적인 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젊은 교수시군요 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제가 나이보다 조금 젊어 보이긴 합니다 (이것은 자뻑이 아닙니다. 물론 제 담벼락에 자뻑이 많은 건 인정합니다). 그래도 40 중반을 넘겼으니 젊다고 하긴 좀 그렇습니다. 하긴 젊다는 말은 상대적이라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나에게 젊다고 해도 사실관계에는 오류가 없지요. 그러나 사실관계에 오류가 없는 '젊은 교수'라는 말은 '경험이 없는, 아직 초짜인, 성숙하지 못한, 권위가 없는, 전문성이 좀 떨어지는...' 등등 다양한 부정적 함의를 담고 있을 수 있고 반대로 '..

교회에 하는 헌금

5,6년 만에 동창 몇몇을 만났습니다. 사는 얘기들을 듣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됩니다. 40대 중반을 넘어가며 부모님들이 가실 때를 걱정해야 하고 유산상속으로 형제들과 분란을 겪기도 하고 새로운 직업이나 사업으로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기도 해야 하고 건실하던 회사가 망하기도 하고 암투병도 하고 송사에 휘말리기도 하고 참 인생이 그렇습니다. 단편 소설들을 읽듯 살아온 얘기들을 들으며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새로 출석하는 교회를 열심히 나간다는 어느 친구는 교회 재건축을 맡게 되었답니다. 수억이 들어간 공사과정에서 담임목사가 리베이트가 없냐며 슬쩍 묻더랍니다. 교회건축을 하고 새차를 뽑았다는 친구목사의 얘기를 들었다는군요. 건설업 관련 일을 하는 그 친구는 깜짝 놀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