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상황 14

[217호 과학칼럼] 얇팍한 거룩의 이원론 (복음과상황 2008년 11월호)

우종학 (천문학박사, UCLA) solarcosmos@hanmail.net “죄 많은 세상에 나가 살던 저희들을 오늘 이 거룩한 주일에 주님의 전에 불러주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임재하셔서 저희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아 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직장을 옮기면서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교회를 정하는 것이다. 추천 받은 교회들을 중심으로 몇몇 한인 교회들을 둘러보았다. 오랜만에 한인 교회에 가면서 그동안 잊고 있던, 그러나 매우 익숙했던 면들을 새삼 보게 된다. 그 중 하나는 대표기도 시간에 들을 수 있는 대략 위와 같은 내용들이다. 한 주간 기도를 준비하신 분들의 열심과 정성을 폄하할 생각은 없으나 예배시간에 이런 기도를 들으..

[215호 과학칼럼] 명품의 환상에서 깨어나라 (복음과상황 2008년 9월호)

월간 복음과상황 [215호 과학칼럼] 명품의 환상에서 깨어나라 우종학 (천문학 박사, UCLA) 우리의 일상은 사고파는 일의 연속이다. 노동을 팔아 자본을 사고 자본을 팔아 의식주를 산다. 경제활동을 포함한 대부분의 의사결정에는 사고파는 원리가 적용된다. 가능하면 적은 투자로 좋은 물건을 사는 것이 그 핵심이다. 회사는 같은 월급을 주면서 더 나은 인재를 뽑으려 하고 구직자는 같은 양의 일을 해야 한다면 보다 좋은 조건의 회사를 원한다. 싱글들은 경제력이나 미래의 가능성이 더 나은 배우자를 얻으려 한다. 적은 투자로 좋은 물건을 사는 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명품이다. 물론 명품은 정의하기 나름이다. 나도 명품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명품은 좋은 질이 보장된 물건이다. 싸구려 물건보다는 괜찮은 브..

신과 진화 - 최태연

최태연 교수가 십년 전 쯤에 쓴 글이지만 한국의 상황을 보여주는 참고가 되는 글이다. 신과 진화 - 한국의 유신진화론 논쟁 - 최태연 (천안대학교 기독교학부) 1. 여는 말 이 글은 한국 기독교에서 일어났던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 논쟁에 대한 역사적 재구성을 시도한 논문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한국의 유신진화론 논쟁이 약 8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 역사를 적어도 3가지의 국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세 국면의 변화를 살펴볼 때, 필자의 분석으로는 1920-30년대의 초기 기독교에서는 오히려 유신진화론에 대해 포용적인 태도가 주류를 이루나, 그 후 분단과 전쟁, 교파분열의 여파로 1970년대부터는 근본주의 신학과 창조과학회의 영향아래 유신진화론을 거부하는 입장이..

[214호 과학칼럼] 한 방향으로만 가면 결국 골로 간다 (복음과상황 2008년 8월호)

[214호 과학칼럼] 한 방향으로만 가면 결국 골로 간다 우종학 (천문학박사, UCLA) 오랜 기간 조금씩 친해진 사람이 있다. 속 깊고 배려심 많은 사람으로 나랑 가깝게 지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딱 하나 걸리는 것은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점이다. 기독교인들과는 사귀지 않겠다는 생각이 이명박과 그의 지지자들 때문에 더욱 굳어졌는데 어떡할까? 계속 거리를 두어야 하나? 아내가 애용하는 어느 카페에 올라온 글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기독교인이라는 점 때문에 마음을 주어야 할지 망설여진다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어느 수준인지를 확연히 보여주는 글이었다.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의 내용은 그래도 점잖았다. ‘교회다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단 조심해야 하지만 그래도 가깝게 한번 지..

[213호 과학칼럼]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복음과상황 2008년 7월호)

복음과상황 [213호 과학칼럼]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수배자 전단에 실린 어느 용의자가 ‘얼짱’이라는 이유로 누리꾼들에게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말이 실감나는 경우였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외모에 따라 차별을 받거나 주었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그래서인지 다들 외모에 무척이나 충실하다. 각종 부위(?) 별로 살을 빼는 것이 유행하고 몸 만들기에 열심인 남자들도 늘고 있다. 말 그대로 이미지의 시대다. 인간의 오감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시각이다. 말로 아무리 잘 설명해도 잘 그린 그림 하나를 못 당한다. 우리의 의사결정에 바탕이 되는 정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각을 통해서 얻어진다.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고 가는 것을 목격하는 것, 범죄 현장에 떨..

[209호 과학칼럼] 좁디좁은 우물 안을 박차고 나와라 - 복음과상황 08년 3월호

[복음과 상황 209호 과학칼럼] 좁디좁은 우물 안을 박차고 나와라 선택효과 영국의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인 아서 에딩턴 경은 이런 얘기를 했다. 어떤 어부가 10센티미터 간격으로 짜여진 그물을 깊은 바다에 던졌다. 끌어올린 그물에는 10센티미터 보다 큰 고기들이 가득했다. 만족스런 얼굴로 고기들을 내려다보던 어부는 이렇게 결론내렸다. 깊은 바다에는 10센티미터 보다 작은 고기는 살지 않는다고. 이 얘기는 어떤 현상을 연구할 때 꼭 점검해 보아야하는 소위 '선택효과(selection effect)'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그물망이 10센티미터니까 그보다 작은 고기들은 그물 밖으로 빠져나갔을 뿐인데, 작은 고기들이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과학에서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특히 새롭게 발..

[208호 과학칼럼] 침묵의 카르텔에 돌을 던져라 - 월간 복음과상황 08년 2월호

복음과 상황 2008년 2월호 [과학칼럼] 침묵의 카르텔에 돌을 던져라. 우종학 예일대 천문학 박사.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바바라의 물리학과에서 거대블랙홀에 대해 연구 중이며 국제학술회의/국제학술지 논문발표, 논문 심사, NASA 우주망원경들의 프로포잘 리뷰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한국에서는 IVF와 기독교학문연구소를 섬겼고 미국에서는 코스타를 섬기고 있다. 기독과학자들의 모임인 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의 멤버. 복상과는 98년부터 필자로 관계를 맺었고 창조-진화 논쟁과 지적설계 논쟁, 그리고 신앙과 과학에 관련된 글들을 기고해왔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얼굴 제이슨(가명)은 한 학기 내내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았다. 시위라도 하듯 그는 ‘낙태는 살인이다’라는 커다란 문구가..

[글] 월간 복음과상황 2003년 12월호: 광대한 우주공간 그리고 우리동네 - 우종학

광대한 우주공간 그리고 우리동네 [월간 복음과상황 2003년 12월호] 우종학 집을 잃어버릴 위험이 높았던 어린 시절, 꼬불꼬불한 동네 골목을 거쳐 집으로 돌아올 때면 가끔씩 새로운 길로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저기로 가면 어디가 나올까? 내가 살던 작은 동네는 어린아이의 일상을 보내기에 충분히 컸지만, 가끔씩 그 경계에 다다를 때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대책 없이 솟아오르곤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참 새로운 길을 탐색하다 가도가도 끝없는 낯설음에 두려움이 들기 시작하면 조심조심 오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 집을 잃을 염려는 이제 없어졌다. 그 대신 다양한 방식과 세계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릴 염려가 새로 생겼다고나 할까. 미국 국립천문대가 위치한 ..

지적설계 운동 비판 3 - 너무나 인간적인 반쪽 짜리, '지적' 설계 (복음과상황 2003년 2월)

이 글은 월간 복음과상황에 지난 2003년 2월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복음과상황의 문맥 (다른 분들의 기고글들과 관련된) 에서 벗어나 제가 쓴 글만을 올려서 포커스에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최근에 쓴 글은 아니지만 여전히 유효한 글이며 지적설계 운동에 대해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이 전달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반론에 응답하여 두편의 글을 더 기고하였고 이 글과 함께 올립니다. ------------------------------------------------------------ 너무나 인간적인 '지적' 설계 (월간 복음과상황 2003년 2월호) 우종학 연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고 현재 미국 예일..

지적설계 운동 비판 2 - 지적설계 논증은 과학인가? (복음과상황 2002년 11월)

이 글은 월간 복음과상황에 지난 2002년 11월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복음과상황의 문맥 (다른 분들의 기고글들과 관련된) 에서 벗어나 제가 쓴 글만을 올려서 포커스에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최근에 쓴 글은 아니지만 여전히 유효한 글이며 지적설계 운동에 대해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이 전달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반론에 응답하여 두편의 글을 더 기고하였고 이 글과 함께 올립니다. ------------------------------------------------------------ 지적설계 논증은 과학인가? (월간 복음과상황 2002년 11월호) 우종학 연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고 현재 미국 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