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 이슈/창조-진화 논쟁

신과 진화 - 최태연

별아저씨의집 2008. 8. 24. 08:38

최태연 교수가 십년 전 쯤에 쓴 글이지만 한국의 상황을 보여주는 참고가 되는 글이다.


            신과 진화
           - 한국의 유신진화론 논쟁 -

                                                                  최태연 (천안대학교 기독교학부)

1. 여는 말

이 글은 한국 기독교에서 일어났던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 논쟁에 대한 역사적 재구성을 시도한 논문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한국의 유신진화론 논쟁이 약 8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 역사를 적어도 3가지의 국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세 국면의 변화를 살펴볼 때, 필자의 분석으로는 1920-30년대의 초기 기독교에서는 오히려 유신진화론에 대해 포용적인 태도가 주류를 이루나, 그 후 분단과 전쟁, 교파분열의 여파로 1970년대부터는 근본주의 신학과 창조과학회의 영향아래 유신진화론을 거부하는 입장이 주류를 형성하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다시 유신진화론을 주장하는 전문가 그룹이 등장해서 서서히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유신진화론 논쟁의 세 국면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면은 일제 강점기인 1920-30년대에 전개된 유신진화론에 대한 논의들이다. 특히 평양의 장로교 신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된 유신진화론에 대한 해석들은 당시의 프린스턴 신학교의 변증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대체로 수용적인 태도가 특징이었다. 왜냐하면 이 논의에 참여한 학자들이 대부분 프린스턴 신학의 영향 아래서 공부한 미국 선교사들이거나 한국 신학자였기 때문이다. 감리교 선교사들이나 일본에 유학했던 크리스천들도 대체로 유신진화론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장로교 신학자 박형룡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930년대 중반부터는 보수적인 장로교의 주류가 반유신진화론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유신진화론에 대한 포용적인 태도가 존재했으나 점차로 이에 대한 거부의 입장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국면인 1970-80년대에는 유신진화론에 대한 태도가 개신교 보수주의와 이에 대립하는 개신교 자유주의 및 가톨릭의 구도로 양분되어 대결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이미 1930년대 중반부터 반유신진화론의 입장에 섰던 박형룡의 입장은 보수적인 장로교뿐만 아니라, 성결교나 오순절교회 등 전반적인 복음주의 교회의 주도적인 입장으로 확산된다. 이러한 신학적 배경아래 1960-70년대 미국에서 유학한 공학자와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한국창조과학회(KACR)가 1981년에 결성되고 이후의 반진화론 논의의 선봉에 선다. 반면에 유신진화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은 개신교 자유주의 입장에 선 기독교장로교와 감리교 그리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두 진영은 서로의 교류나 논쟁 없이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된다.

셋째 국면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전개된 창조과학회와 유신진화론 지지자 사이에 일어난 논쟁을 다룬다. 이 때에 비로소 본격적인 논의가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논의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현대 과학과 신학에 대한 학제간의 연구를 통해 유신진화론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형성한 새로운 그룹인 <종교와 과학 연구회>로부터 나왔다. 이 연구회의 젊은 대변인인 장대익은 복음주의 청년잡지인 『복음과 상황』을 통해 유신진화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글을 발표했고 여기에 KACR이 응답함으로써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짧은 논쟁의 결과는 서로의 시각차이 때문에 평행선을 달리며 짧게 끝을 맺고 두 진영은 각자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게 된다.

이상의 세 국면으로 한국에서의 유신진화론 논쟁을 서술한다는 것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작업가설일 뿐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서술하는데 주로 잡지에 발표된 논문이나 기고문에 의존했다. 아직도 필자에 의해 검토되지 않은 관련 자료들이나 문헌이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다루어진 논문들을 통해서 한국에서의 유신진화론 논쟁의 흐름을 대체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도는 아직 충분한 연구 결과가 축적되지 않은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학제간 연구 분야에서 불완전하지만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이정표로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2. 1920-30 년대의 논의: 반진화론과 유신진화론의 공존

2.1 평양신학교의 어도만(Erdman)과 이눌서(Reynolds): 무신론에 대한 대항논리로서 유신진화론

해방 전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하기까지 평양의 장로회신학교(이하 평양신학교)는 한국개신교의 가장 큰 교파인 장로교를 유일하게 대표하는 신학교였다. 한국교회에서 나타난 ‘유신진화론’에 대한 최초의 논의가 바로 이 학교에서 발행하는 신학논문집 『신학지남』에 등장한다. 즉 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변증학적 관심이 장로교에서 가장 강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 선교사이며 이 학교의 신학교수였던 어도만(Eerdman) 어도만(Walter C. Erdman, 1877-1948) 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이며 프린스턴(Princeton) 신학교를 졸업하고 1916년부터 1931까지 평양신학교에서 구약신학과 변증학을 가르쳤다. 특히 그는 과학과 성경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논문을 썼다. 과 이눌서(Reynolds) 이눌서(William D. Reynolds, 1867-1951)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이며 버지니아의 유니온(Union) 신학교를 졸업하고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라틴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최초의 한국 선교사 언더우드(Underwood)의 강연을 듣고 한국 선교사로 자원했다. 그는 1917년부터 1937까지 평양신학교에서 고전어와 변증학을 가르쳤고 『신학지남』에 많은 글을 기고했다. 는 1920-30년대에 이미 현대 과학계에서 점점 더 강력한 영향력을 얻어가는 진화론에 대한 변증학적 시도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독특한 점은 진화론을 기독교 창조론의 입장에서 비판하면서도 창조론과 진화론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유신진화론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탐색하고 인정한다는 점이다. 감리교의 신학잡지 『신학세계』도 반진화론의 입장에 서지 않고 어도만이나 이눌서와 유사한 입장의 글을 기고하도록 허락했다. 참고: 무어 감독,「반진화론적 입법에 대하야」,『신학세계』14권 4호 (1929. 6), 27-34.

먼저 어도만의 글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한국에서 발표된 진화론에 관한 최초의 논문으로 보이는 1920년의 「진화론과 창세기」에서 토론토 대학의 그리피스 토마스(Griffith Thomas)의 주장을 따르면서 진화론을 “원인적 진화론”과 “방법적 진화론”으로 나눈다. 어도만이 말하는 원인적 진화론이란 생명의 생성과 변화의 원인을 자연 자체로 보는 이론으로서 자연주의적(무신론적) 진화론을 가리킨다. 반면에 방법적 진화론은 진화를 하나님이 우주창조의 방법으로 사용한 하나의 방법으로 보는 진화론, 즉 유신진화론을 의미한다. 어도만에 따르면 전자의 입장은 성경의 창세기와 일치할 수 없으나, 후자는 우주의 창조자인 하나님을 인정하는 점에서 성경과 배치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다윈과 비슷한 시기에 진화론을 제시한 월레스(Wallace)의 입장을 예로 들면서 진화론이 세 가지의 기적(하나님의 우주의 원질서 창조, 무생물로부터 생물의 창조, 다른 동물의 구별되는 인간의 창조)을 인정하는 한, 성경과 대립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입장은 과학이론으로서 진화론은 우주창조의 기원과 원인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창세기와 창조론을 인정한다면 진화론을 창조 이후의 우주의 과정에 대한 방법적인 설명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태도이다. 그의 입장은 성경(창세기)과 현대과학(진화론)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조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프린스턴의 변증학적 입장을 따른다고 할 수 있다(장동민,1998: 65-88; 최태연, 2002: 75-97). 다음 인용문에서 어도만(1920: 185-186)은 “방법적 진화론”, 즉 유신진화론의 가능성을 인정한다.

“진화론에 두 가지 종류가 잇스니 원인적 진화론과 방법적 진화론인데, 만일 원인적 진화론을 찬성할 것 갓흐면 진화론과 창세기의 리치가 합하지 아니함이 분명하니 그런 이들은 원인의 근원이 업다하는 까닭이로되, 방법적 진화론을 말하면 하나님 끠셔 유형적 우주를 조성하실 때에 행하신 방법을 설명하는 리치뿐이라. 이 두 가지 중에 어나 리론을 취하던지 과학은 우주가 본래 엇더케 성긴 거슬 설명하지 못하나니, 우주가 본래 엇더케 성긴 거슬 알코져 하면 창세기 1장을 보아야 할지니, 곳 우주가 자연히 성긴 거시 아니오, 근본되시는 이가 계신 거시 분명한즉, 우리가 이런 근원이 잇는 줄을 알게 되면 창세긔와 과학이 모순된다 할 이유가 없나니라.”

어도만의 뒤를 이어 창조와 진화에 대한 글을 1930년대의『신학지남』에 기고한 신학자는 같은 학교 교수였던 이눌서였다. 그는 유신진화론이 하나님이 우주를 조성하는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도만 보다는 좀더 조심스럽게 진화론에 접근한다. 그러나 그는 1933년의「창조주의자와 진화주의자가 합의할 수 잇나뇨」라는 글에서 진화론을 비판하면서도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사실을 창조론 안에 수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다시 말하면 그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다양한 종이 생겨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 이후 서로 교배 가능한 하나의 종의 경계를 넘어 생명체가 변화해 왔다는 생각을 사실(facts)로서 받아들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종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초자연적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눌서(1933: 126)는 “만일 조물주가 창조 후에 다수로 변화함을 용납하였으면 저가 불임한계를 초월식힘을 믿지 못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필경 저의 확실히 창조한 것을 승인함이 긴요한 사실이요, 창조 이래 다량의 변화는 그리 긴중(緊重)하지 안은 적은 문제이다”라는 결론으로 그의 글을 마무리한다.
과학의 고유한 권리를 존중하려는 입장에서 이눌서(1933: 125)는 모든 생물의 친족관계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과학자에 의해서 밝혀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즉 생물학자는 “상관된 생물의 차별, 곳 친류관계가 얼마나 확대될 수 있는 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비록 이에 대한 생물학자의 과학적 대답이 종의 진화라면 그 대답을 비과학자들은 존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의 관찰이나 실험을 통한 결론은 과학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전제인 하나님의 창조를 벗어날 수 없다. 비록 진화의 과정이라도 신학적으로 볼 때에는 창조주의 기적적인 창조와 간섭에 의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역시 종의 진화와 초자연적 창조론을 결합해서 기적을 허용하는 유신진화론의 해석을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모든 종류가 신영능(神靈能)의 간섭으로 유래하였다면 창조로 유래하였다. 조물주가 원초의 고래(鯨)를 쥐(鼠) 혹은 물범(海豹) 혹은 수달(川獺)로부터 조류(鳥類)응 통하야 지엇을 것이며 친류관계 잇음을 제시하엿을 것이나, 그러나 이적적 원인이 잇을터인즉 역시 창조인 것이다(이눌서, 1933: 124).”

그러나 이들 미국 선교사 출신의 장로교 신학자들보다도 한국 크리스천의 정서를 대표했던 신학자는 한국 보수신학의 거목이라 불리는 박형룡이다. 박형룡은 그의 한국적 신앙과 미국에서의 신학교육이 불안정하게 결합되어 진화론에 대한 입장 역시 불안정하게 나타난다.

2.2 박형룡의 유신진화론의 점진적 거부

한국 장로교의 대표적인 조직신학자 박형룡은 평양에 있는 한국최초의 기독교대학인 숭실대학을 졸업한 후, 남경의 금릉대학과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를 거쳐 켄터키 루이빌에 있는 남침례교 신학교에서 1933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프린스턴에서 공부하면서 워필드(B. B. Warfield), 그린(W. B. Green Jr.), 핫지(C. W. Hodge), 그리고 메이첸(G. Machen)의 변증학적 입장을 받아들여서 성경의 계시진리와 과학이 밝혀낸 경험사실이 조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수용했다(Gundlach, 1995: 298-324; 장동민, 1998: 75-79). 이러한 변증학에 따르면 신학은 사실에 의해 증명된 과학을 부정할 필요가 없었다. 박형룡(1977a: 175)은 남침례교 신학교에 제출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앞선 어도만이나 이눌서와 비슷하게 프린스턴 변증학의 입장을 그대로 따른다.

“만일 미래에 우주적 차원이든지 유기적 차원이든지 진화(evolution)가 진실로서 입증된다면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우리의 신앙은 파괴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비록 생명의 세계가 한 종(kind)으로부터 다른 종으로 변화하면서 전개된다는 사실이 증명되더라도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은 부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는 생명의 변이가 일으키는 법칙 자체를 고려해도 여전히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유신진화론자(theistic evolutionist)는 하나님을 창조자로 바라볼 수 있으며 진화를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박형룡은 그가 영어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던 바로 그 시기에『신학지남』에 창조과학의 창시자인 지질학자 조지 프라이스(George M. Price)의 「현과학은 진화론을 의문한다」라는 글을 번역하여 『신학지남』에 기고한다. 프라이스는 안식교인이며 1923년『새 지질학』(The new Geology)이란 책을 써서 ‘격변설’(catastrophism) 또는 ‘홍수지질학’(flood geology)의 이론적 틀을 마련한 사람이다.(Numbers, 1992: 72-81) 그의 이론은 1960년대 헨리 모리스와 존 위트컴에 의해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으로 발전했다. 이 글에서 프라이스는 “논리적, 과학적 체계로서의 유기적 진화론이 붕괴되고 있는 점차 명료하여가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계시종교의 중요한 교리들이 현대과학적 연구에 의하야 변호”되고 있다는 결론을 맺는다(박형룡, 1932: 54). 이러한 프라이스의 입장은 후에 창조과학자들이 가지게 될 전형적인 입장으로서 과학에는 매우 긍정적이나 진화론에는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방식이다. 박형룡이 프라이스의 글에 따로 주해를 달지 않았지만, 그 글을 번역해서 한국 장로교의 가장 대표적인 신학잡지에 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진화론뿐만 아니라, 유신진화론의 타당성에 대한 그의 점증하는 불신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은 박형룡의 첫 번째 체계적 저서인 1935년의『근대기독교신학난제선평』에서 선명하게 확인된다. 그는 이 책에서 “기독교진화론”, 즉 유신진화론의 여러 이론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다룬 후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맺는다(박형룡b, 1977: 287-288).

“이상은 진화론과 기독교를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몇 부분을 거론한 것이다. 우리는 그 노력의 기교함과 주도함에 탄복할 바 없지 않으나, 그 어느 것이나 정통적 과학과 정통적 신학에게는 승인되기 어려운 점이 많이 있는 데서 또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진화론이 자연계와 정신계에서 엄연한 사실로 확증된 다름에는 모르겠거니와, 진화론이 아직도 불완전한 가설로 남아있는 오늘에, 구태여 진화론을 기독교에 끌여 들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이 덤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위 중재적 조화적 이론은 필요치 않은 것이다 [. . .] 오늘에 이미 태동된 소위 기독교진화론과 같은 다난무익한 이론을 형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2.3 함석헌의 유신진화론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들로부터 보수 신학을 배웠던 박형룡에 비해 일본에 유학해서 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內村鑑森)로부터 교파로부터 자유로운 기독교를 배웠던 함석헌은 진화론적인 현대과학에 대한 거부반응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진화론은 역사의 사실과 의미를 밝혀주는 학문의 대세였다. 그래서 그는 김교신이 창간한 잡지『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라는 글을 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이 당시의 함석헌에게 기독교와 진화는 서로 결합할 수밖에 없는 두 개의 필연적인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진화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온 은총의 표현으로 이해한다(함석헌, 1937: 7).

“진화란 복잡화의 과정이다. 간단에서 복잡으로-이것은 진화의 과정을 일관하는 원리이다. 왜 복잡화할 필요가 있느냐. 진화의 현상에 대하야 필요를 찾는 것은 학문에 의하면 우둔한 일인지 몰으겠으나 진화의 배후의 하나님의 손을 찾는 우리게는 그는 긴한 일이다. 대체 신은 왜 만물을 지었나? [. . .] 신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금할라야 금할 수 없는 사랑의 흐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고로 이는 은총이다. 그렇다. 만물은 신의 은총에서 나온다. 고로 만물은 ‘있어서 있는 자’로서의 신의 표현이다. 저는 그 무한성을 ‘다’(多)에서 발표할 수 밖에 없다. 생물의 복잡화는 제한 없는 것으로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신의 명령에 의한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와 신학이 자리를 잡아가던 1920-30년대에 유신진화론의 문제는 의외로 한국 보수신학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평양신학교에서 조심스럽지만 긍정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미국 장로교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교인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했거나 그 영향을 받은 미국 선교사들이 변증학을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진화론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한, 진화론을 창조론적으로 해석한 유신진화론도 신학적으로 수용하려는 유연한 태도를 가졌다. 그러나 이렇게 신학과 과학을 조화시키려는 프린스턴 변증학의 태도는 한국 크리스천 사이에 서로 다른 경향을 낳았다. 전형적인 장로교 신자이며 한국 보수신학의 대부가 된 박형룡은 미국 유학 시절 프린스턴의 입장을 받아들였으나, 한국에 돌아온 후 한국 장로교의 보수신앙의 토양에 적응하면서 점점 유신진화론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성경의 진리를 보수하고 변증하는데 유신진화론 같이 적극적으로 신학과 과학을 조화시킬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반대로 교파신학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한 함석헌은 성경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서술하고 해석하는데 현대과학의 주류인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유신론적 해석을 시도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 시기의 한국 기독교는 아직 유신진화론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거나 찬반양론으로 나뉘어서 논쟁을 했다기 보다는 상당히 자유로운 상황에서 반진화론과 유신진화론의 공존을 허용했다고 할 수 있다.

3. 1970-80년대까지 유신진화론을 둘러싼 진영대립

3.1 유신진화론에 대한 거부: 개신교 보수주의와 창조과학회(KACR)

해방이후 1959년까지 전개된 한국 장로교 분열의 소용돌이에서 서울에 다시 대한 예수교 총회신학교를 세우고 보수신학의 깃발을 높이 든 박형룡은 1972년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에 대한 평가를 놓고 이미 1930년대에 선보였던 반유신진화론적 입장을 더욱 극단화한다. 그는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버나드 램(Bernard Ramm)이나 에드워드 카넬(Edward J. Carnell)의 입장을 ‘신복음주의’(Neo-evangelicalism)라고 비판하면서 이들이 유신진화론을 옹호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다(박형룡, 1997b: 110-111; 장동민, 1998: 116).

“성경은 하나님께서 명령의 말씀으로 만물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말하는데, 진화론을 끌어다가 창조기간을 수백만 년으로 만들면서 이것이 성경적 보도에 배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억설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창조 6일의 이러한 계산을 시도한지 오래지만 복음주의자로 자칭하는 사람들이야 이럴 수 가 있는가? 보수주의 입장에서도 창조 6일을 여자적(如字的)으로 보지 않는 자들이 있음이 사실이지만 진화론을 받아들여 가지고 장기창조를 말하는 보수주의자는 일찍 없었다. 여기서 신복음주의자는 보수주의자가 아님을 자증함이 분명하다.”

1970년대 이후 한국 보수신학의 대부 격인 박형룡의 입장은 한편으로 교파를 초월하여 보수적 신학자나 목회자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이미 형성되어 있는 근본주의 신학의 경향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한 예로 같은 해 박형룡이 교장으로 있었던 총신대학교의 조직신학자 서철원은 창조과학자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의 「진화론과 현대 기독교」를 번역해서 해방 이후 재창간된 『신학지남』에 게재했다. 그는 이 번역의 <역자주(註)>에서 진화론을 비롯한 현대학문이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단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대부분의 큰 교단들이 진화론을 수납하여 진화론에 신학을 적합시켜 온 지는 이미 오래 되었”으며 “심지어는 복음주의 교단들까지 진화론을 수납하여 진화를 하나님의 창조의 방법이라고 할 만큼 진화론과 타협하였”음을 비판하면서 유신진화론과 보수신학이 조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서철원, 1972: 50).


박형룡과 그의 신학적 후계자들의 영향아래 보수적인 장로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파에서도 유신진화론을 ‘기독교’ 유신론이 아닌, 자연주의적 진화론의 일종으로 보는 견해가 확산되었다. 한국교회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반유신진화론과 친창조과학의 경향은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The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KACR)의 설립과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 학회를 설립한 사람들은 1960-70년대에 미국에서 유학한 과학자나 공학자들로서 현재 한국의 각 대학에서 안정된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미국의 ‘창조과학연구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ICR)와 긴밀한 협조아래 수많은 세미나와 강연 그리고 저술활동을 통해 한국 교회와 크리스천의 과학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쳐왔고 80년대 이후의 모든 ‘창조-진화’논쟁을 주도했다. 김영길, 「자본주의 사회와 개혁주의 문화관: 진화론과 창조론」, 『미스바』 7호 (1982. 2); 쥬영흠, 「천지창조와 창조론」『월간목회』 81호 (1983.5); 조인서, 「창조론의 최전선에서」, 『빛과 소금』 20호 (1986.11); 양승훈,「과학적 창조론 비판에 대한 소고」, 『한국과학교육회지』 7권 2호 (1987); 윤순희,「창조론에 입각한 자연과학개론서 집필에 참여한 김해리 교수」, 『목회와 신학』 13호 (1990.7); 송현옥, 「열려지는 창조론 창조과학 국제심포지엄」, 『목회와 신학』 28호 (1991.10); 듀엔 기쉬 외, 「특집: 창조론의 새로운 접근」, 『목회와 신학』 29호 (1991.11); 임이수, 「진화론의 사생아들」, 『활천』 465호 (1992.6); 이웅상, 「화석에 나타난 진화론의 허구성」, 『빛과 소금』 90호(1992.9); 조덕영, 「진화론과 과학-다윈은 과연 옳았는가」, 『통합연구』 7권 4호(1994).


KACR의 핵심주장은 이미 조지 프라이스와 모리스 등 의해 제시된 대로 지구의 나이를 1만여년 내외로 보는 젊은지구설과 노아의 홍수에 의해 전지구적 대격변이 일어났고 현재의 모든 지층이 형성되었다는 격변설(Catastrophism)이다. KACR은 유신진화론을 창조론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며 창세기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KACR의 활동을 통해 한국 기독교는 반진화론의 과학적 뒷받침을 얻었고 반진화론은 이제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논의에서 광범위한 평신도의 관심사가 되었다. KACR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기원과학』(Origin)이란 책의 결론은 창조과학운동의 기본입장을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결로만 보고 유신진화론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KACR에 의하면 철저히 상호배타적인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결에서 창조론이 과학적으로 더 타당한 이론으로 입증되었다(한국창조과학회, 2000: 274).

“생명의 기원에 관한 학설로는 진화론과 창조론으로 대별할 수 있다. 진화론은 유물론적, 무신론적 이론으로서 생명이 원자에서 출발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저절로 우연히 생명체가 되었다는 것이요, 창조론은 생명체가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적인 설계에 의하여 특수 창조되었다고 본다. 이 두 이론은 모두 다 그 독특한 성격 때문에 실험을 통하여 사실 그대로를 증명할 수는 없다. 따라서 생명체의 구조나 기능 또는 화석과 같은 과학적 자료를 근거로 어떤 모델이 과학적으로 더 타당성이 있고 논리에 맞는지 판별하여야 한다. 생명의 기원을 생물학적, 열역학적, 수학확률적, 화석학적, 지구과학적인 측면에서 검토해 본 결과 생명체가 우연하게 저절로 발생했다는 진화론보다는 창조주의 설계와 지혜의 산물이라는 창조론이 더 과학적 논리에 맞고 타당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더 나아가서 KACR의 래디칼한 한 회원은 유신진화론을 “유신론적 유물론”처럼 모순된 이론으로 규정하면서 여기에 “간격설, 날-연대설, 진행적 [점진적] 창조론 등”을 모두 포함시킨다. 즉 창조과학이 지지하는 젊은 지구설 이외의 거의 모든 창조론을 유신진화론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유신진화론에 대한 싸움은 “영혼을 죽이고 살리는 처절한 영적전투”이며 말세의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심각한 영적 투쟁이다(임번삼, 2002: 5).
“이들[유신진화론자]은 성경의 기적들을 부인하며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진화론적으로 창조했다고 믿는다. 이러한 유신진화론이 오늘날 기독교계로 깊숙이 침투하고 있어 우리의 각성이 요구되고 있다. 말세의 교회에 ‘양의 가죽을 쓴 이리’가 들어온다면 그 중 하나는 이 유신진화론이라고 나는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이처럼 장로교 보수신학의 신학적 토대 위에서 한국창조과학회는 왕성한 활동을 통해 1980년대 이후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한국의 보수적인 개신교인이 진화론뿐만 아니라 유신진화론을 적대적으로 대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 전체가 유신진화론을 적대시한 것은 아니었다. 개신교 자유주의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입장이 바로 그것이다.

3.2 유신진화론의 수용: 개신교 자유주의와 로마 가톨릭 교회

한국 개신교의 신학적 스펙트럼에서 진보주의 내지 자유주의에 속하는 진영은 흔히 기독교장로회와 감리교로 평가된다. 1920년대에 프린스턴에 유학했던 송창근과 김재준에 의해 평양중심의 보수적 장로교에서 갈라져 나온 기독교장로회는 신학의 자유를 교회의 모토로 하여 서울에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를 세웠고 감리교는 초기부터 전통문화나 현대과학에 대해 장로교보다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한 예로 감리교 감독 무어(Moore)는「반진화론적 입법에 대하야」라는 글을 감리교 신학잡지『신학세계』에 게재하면서 미국 텍사스 주의 반진화론법 제정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무어, 1929: 27-34).
1970년대에 개신교 자유주의 진영에서 유신진화론에 대해 가장 먼저 입장을 밝힌 신학자는 바르트와 틸리히 신학을 거쳐 종교다원주의의 대변자가 된 김경재이다. 그는 1971년에「창조론과 진화론의 대화」라는 논문을 자유주의 진영의 대중적인 신학잡지『기독교사상』에 기고했다. 이 논문에서 김경재(1971: 106)는 “다아윈 당시 진화론이 기독교 교회신학의 전통적 창조설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배척된 이후” 기독교가 진화론을 회피하게 된 것을 불행하게 여기면서 창조론과 진화론적 실재론이 이율배반적인 모순관계에 있지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김경재(1971: 117)에 따르면 창조론과 진화론은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면에서 같은 실재관을 공통적으로 나누고 있는데 그것은 창조(진화) 과정을 ‘의미’의 추구와 형성의 과정, 불가역성을 본질로 갖는 완성을 향한 역사적 진전과정으로 이해”하기 때문이지만, 반면에 진화론이 추구하는 “우주의 보편적인 완성은 이성의 항목이라면 그와 동시에 소망하는 개체의 완성에 대한 신앙은 신앙의 항목이기에 이 점에 있어서도 기독교 종말론과 진화론의 종국에 관한 이해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김경재가 말하는 진화론은 이미 목적론적으로 해석된 진화론이지만, 그의 의도는 한국교회의 대체적인 경향에 반대하여 생물학적 진화론과 기독교 신학의 접근과 대화를 시도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감리교에서는 대부분이 신학자들이 유신진화론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가운데 감신대 교수이며 어거스틴 전문가인 선한용(1997: 70)은『기독교사상』에 기고한「창조냐, 진화냐」라는 논문에서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과학과 종교의 협력을 촉구한다.

“우리는 과학을 종교화하거나 종교를 과학화하는 잘못을 피해야 하겠다. 과학과 종교가 서있는 각각의 영역과 제한을 받아들여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한 차원에서만 보려고 하는 편협한 입장을 버릴 때, 과학과 종교는 서로 협력하여 이 지구상에서 같이 사는 우리 인간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 자유주의와는 다른 맥락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1980년대부터 유신진화론에 수용적인 입장을 보였다. 1980년부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발행하는 신학 및 목회 잡지인『사목』에 유신진화론을 옹호하는 글들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비오 12세 때부터 진화론을 유신론적으로 조화시키고자 노력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통해서 다시 한번 여기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분명히 하게 된 것이다. 1980년 서강대 교수이며 예수회 수사인 W. 버내스키(1980: 36)는 「가톨릭은 진화론을 부인하는가」라는 논문에서 테이야르 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을 업적을 언급하면서 진화론을 수용한다.. 그는 비록 진화론과 전통적인 신학을 조화시키는데 몇 가지 문제를 인정하지만, 양자의 일치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학과 진화론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이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인간과 인간이 사는 공간을 이해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며 “인간에 관한 지식에 공헌하고 있는 진화론은 구원의 역사인 하나님과 인간 간의 위대한 대화 안에서의 인간본성의 역할에 관한 명백한 관념을 우리에게 제공해 줌으로써 종교와 신학에 협력”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버내스키의 견해는 마침내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96년에 공식적으로 승인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96년 10월 22일 교황청 과학원 재설립 60주년을 축하하면서 바티칸의 과학원 회원들에게 ‘계시와 진화’에 관한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이 메시지에서 비오 12세의 회칙 Humani generis(1950)를 재확인 하면서 “인간과 인간의 소명에 대한 신앙교리와 진화 사이에는 아무 대립도 없다”(김종수, 1997: 48)고 선언한다. 그 이유는 회칙 제정 이후 50년 동안의 과학연구의 결과 “여러 학문 분야의 잇따른 발견으로 연구가들이 점차 이 이론[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다는”(김종수, 1997: 49)데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과학자 공동체의 장기적인 검증과정을 통해 인정된 이론을 사실로 인정할 수 있다는 과학관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진화론이 관찰자료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되는 이론이지만, “자연철학의 일부개념”도 포함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과학으로서 다양한 진화론은 한편으로는 “진화과정에 대한 진전된 여러 설명”과 관계되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물론적, 환원론적, 관념론적 해석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김종수, Ibid.).
따라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을 영혼이 없는 단순한 생물체로만 보는 유물론적 진화론을 부정하고 “형이상학적 인식의 경험, 자아인식과 자기반성의 체험, 도덕적 양심과 자유의 경험, 또는 심미적, 종교적 체험”(김종수, 1997: 50)을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계획안에서 인정하는 진화론을 긍정한다. 이 점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는 현대과학의 성과를 존중하면서 기독교의 진리를 주장하는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인다고 할 수 있다.

4. 1990년대 후반의 새로운 논쟁

4.1 유신진화론의 학제간 연구

1990년대 후반에 한국의 유신진화론 논쟁에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태까지의 유신진화론은 신학자 일부나 교회가 유신진화론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수용하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현대의 진화생물학과 신학과 철학에 대한 학제간의 연구를 통해 유신진화론을 확고하게 주장하고 전파하는 그룹이 형성된 것이다. 이 그룹의 이름은 <종교와 과학 연구회>이며 전 한양대 화학교수인 김용준과 호남신학대학의 조직신학 교수인 신재식 신재식이 유신진화론을 보는 관점은 그의 논문 「창조-진화 논쟁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의 전개와 전망」, 『신학이해』25호 (2003.5), 127-161 참조. , 서울대학에서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장대익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이 함께 독회와 세미나 개최를 하면서 최근 서구에서 연구되고 있는 유신진화론을 수용하고 세워 나가고 있다. 이 그룹의 중심인물 중 하나인 장대익은 진보적인 복음주의 잡지인 『복음과 상황』의 지면을 통해 창조과학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면서 유신진화론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이렇게 명백하게 유신진화론을 자신있고 집요하게 언론매체를 통해 제시한 예는 한국에서의 유신진화론 논쟁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라고 하겠다. 그의 자신감의 배경에는 대학생 때부터 창조-진화 논쟁에 참여하여 IVF, 라브리 등의 기독교세계관 운동을 거쳐 대학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함으로서 기독교와 과학 모두를 연결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을 닦아온 경험이 깔려 있다.
그는 1997년 12월 「기독교와 진화론, 화해할 수 없는가」라는 글을 통해 교황 바오로 2세의 메시지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기독교와 진화론의 화해 가능성을 타진”(장대익, 1997: 140-142)하는 “조화주의적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기독교가 진화론을 거부해 온 이유를 다음 세 가지로 열거한다. 그 세 가지는 첫째, 진화론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모욕했다는 이유, 둘째, 종족간의 투쟁과 경쟁을 승인하는 사회다윈주의의 살벌함에 대한 반감, 셋째, 무조건 성경을 사실적으로 읽는 문자주의 성경해석이다. 장대익(1997: 143)은 이 세 가지의 이유가 기독교의 편견이라고 본다. 만일 이 편견을 수정하거나 포기하고 “만약 신적 행위가 자연적, 그리고 역사적인 과정들 안에서 그리고 그 과정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된다면, 우리는 성경이 가지는 신적 권위와 인간적 권위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유신진화론은 과학자와 신학자가 자기의 역할분담에 충실한 공동연구 프로그램의 성과로 나타난다.

“결국, 생물학자는 생물학적 사건에 대한 자연적 원인을 찾고 사건들 간의 패턴을 찾는 반면, 신학자는 동일한 일련의 사건들을 하나님의 목적과 그것의 성취로서 기술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서 그는 창조과학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은일의 주장인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진화론이 과학이 아니라면, 과학은 없다”고 정면으로 응수한다. 그는 반드시 ‘증명’되어야 과학이라는 이은일의 주장에 대해 논리실증주의의 ‘검증가능성’(verifiability)의 기준만 가지고는 오늘날 어떤 과학도 성립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즉 진화론도 반진화론(창조과학)도 자신의 이론이 보편타당하다고 주장하면 그 어떤 것도 경험에 의한 확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20세기 후반의 과학철학도로서 포퍼(Popper)가 제시한 과학적 명제가 되려면 그 명제를 경험적으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의 기준 역시 엄격하게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장대익이 진화론이 더 과학적이라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는 과학철학자 태가드(Taggard)의 기준을 빌려서 과학과 가짜과학 사이의 기준을 진화론과 창조과학의 경우에 적용해 볼 것을 권한다. 태가드에 따르면 과학은 ⓛ경험적 확증을 추구하며 ②대안적 이론과의 관련 하에서 이론을 평가하며 ③ 매우 포괄적이며 단순한 이론을 사용하며 ④ 새로운 사실을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한다. 반면에 가짜(사이비)과학은 ① 경험적 문제를 무시하며 ② 대안적 이론을 무시하며 ③ 단순하지 않은 이론들, 많은 임시방편적 가설을 사용하며 ④ 적용에 있어서 정체현상이 발생하여 교설(dogma)처럼 기능한다(장대익, 1999: 145.). 그는 이 기준을 적용하여 창조과학이 왜 열등한 사이비 과학인지를 네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창조과학은 “하나님이 원하는 일은 발생한다‘는 법칙과 “그 사건을 하나님이 원했다”는 보조가설을 사용하여 모든 사실을 설명하려한다. 그 결과 창조과학은 각각의 사건마다 그 사건에만 적용되는 보조가설을 필요로 한다. 즉 임시방편의 가설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 둘째, 다윈 이후 진화론이 많이 변화했다는 이유로 진화론의 신뢰성에 대한 비판은 타당성이 없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교리가 아니라, 과학이론이므로 계속 새로운 이론에 의해 수정되고 보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장대익, 1999: 145-146.). 셋째, 진화론과 창조과학은 모두 대안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더 많은 과학자들에게 진화론이 더 많은 사실들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보인다. 따라서 진화론이 창조과학을 대안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장대익, 1999:146.). 넷째, 진화론의 핵심원리인 대진화(macro evolution)는 직접 관찰되지 않지만, 이론으로서 많은 성공적인 예측과 설명과 조작이 가능하다(장대익, 1999: 146-147). 결국 장대익의 주장은 진화론이 그 자체로 완전히 증명되지는 않지만, 창조과학보다 상대적으로 더 성공적인 과학이론이므로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신학적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장대익이 유신진화론을 창조과학보다 더 신뢰하는 이유이다.

4.2 유신진화론 패러다임의 거부

장대익의 도전에 대해 한국창조과학회 측에서는 고려대학 의대교수인 이은일이 답변에 임한다. 그러나 그의 응전은 단 1회에 끝나고 좀더 이론적인 논쟁을 기다렸던 여러 독자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장대익에 대한 이은일의 반박은 한마디로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고 하나의 무신론적인 과학패러다임이므로 진화론을 유신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우연의 논리에 의존하기 때문에 유신진화론도 하나님을 창조주가 아닌, 수동적 관찰자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게 진화론의 패러다임은 창조론의 패러다임에 의해 전면적으로 교체되어야 하지, 진화론에 유신론적 해석을 덧입히는 유신진화론도 허구위에 세운 해석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진화론과 신앙의 조화를 시도하기 전에 우선 진화론이 진정 과학적인 사실인지 더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화론의 많은 지식이 모두 거짓일 수 없지만, 진화라는 전체 틀은 아무도 증명할 수 없는 가설일 뿐입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이 진화론과 신앙이 조화된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우선 무신론적 진화론과 유신론적 진화론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사람도 언젠가 새로운 생명체로 진화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에서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저절로 오랜 시간 후에 진화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은일,「진화론을 과학적 사실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 형제에게」,『복음과 상황』통권 84호(1998. 12), 119. 이은일은 장대익의 반론에 더 이상 <복음과 상황>을 통해 응답하지 않고 다른 기독교 언론매체를 통해 창조과학을 옹호하는 글을 써 나간다.

결국 창조과학의 입장에서는 진화론 자체가 사실이 아닌 믿음의 체계이기 때문에 유물론적 믿음 위에 창조신앙을 결합하는 유신진화론은 마치 ‘둥근 사각형’이란 개념처럼 모순이 된다. 그래서 창조과학자들은 유신진화론자들과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을 중지하고 계속 대중적인 강의와 홍보에 전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참고: 쥬영흠,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쟁투」 『교회와 이단』 (2002.1-7); 임번상, 「창조론과 진화론을 종합한 유신진화론의 유혹」, 『빛과 소금』 (2002.3); 이은일, 「창조론이 뿌리내려야 한다」, 『빛과 소금』(2002.4) 유신진화론자들이 진화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미래의 인간진화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인다면, 창조과학자에게 이런 해석은 인간창조에 대한 성경의 계시를 무시하는 동시에 과학적으로도 근거 없는 상상에 불과한 억측으로 받아드려질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유신진화론과 창조과학의 논쟁은 이렇듯 평행선을 그리면서 또 다른 미래의 대결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5. 닫는 말

필자는 이 연구를 통해 한국의 유신진화론에 대한 논의가 약 80년에 걸쳐 전개되어 왔음을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제시했다. 그것을 위해 필자는 ① 1920-30년대 ② 1970-80년대 ③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세 국면을 구별하고 그 시기마다 논의된 내용을 주로 약술했다. 그 논의에 대한 필자의 서술은 그 논의들이 성립된 배경과 논의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집중했다. 종합해 보건데 한국에서의 유신진화론에 대한 논의는 교파의 차이와 교파분열의 구도와 그 맥락을 함께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본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의 보수주의 개신교파가 분열하는데 진화론과 더불어 유신진화론에 대한 입장의 차이도 함께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한국에서 유신진화론에 대한 입장은 대체로 개신교 보수주의 대 개신교 자유주의 및 로마 가톨릭 교회라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1980년 이후 창조과학운동이 개신교 보수주의의 입장을 대변했다면 1990년대 후반부터는 교파의 차이를 넘어 유신진화론을 옹호하고 연구하는 전문가 그룹이 등장했다. 앞으로의 한국에서 유신진화론 논의는 창조과학운동의 젊은 세대와 <종교와 과학 연구회>의 그룹에 의해 주도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할 측면은 1970년대 이후 여태까지의 논의에서 개신교 보수주의가 유신진화론을 하나의 창조론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두 입장이 전혀 접촉점이 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비생산적인 논의가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예일대에서 우주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우종학(1999: 48-52) 이 제안하는 것처럼 유신진화론을 유신론에 대한 하나의 해석으로 인정하고 그 해석들의 과학적이고 신학적인 타당성을 가리는 태도가 더 생산적인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리라고 생각한다.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1) 진화론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타당한지, 즉 경험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지를 검토해야 하고 (2) 진화론을 유신론적 세계관에 수용하는 일이 얼마나 성공적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한국에서 이에 대한 검토가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논문이 유신진화론의 타당성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는데 하나의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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