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 452

적극적 저항과 평화주의

얼마 전에 제가 참여하고 있는 어느 모임에서 평화주의 전통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재세례파들과 관련된 간단한 역사를 비롯해서 평화주의와 비폭력의 입장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평화주의, 정당한 전쟁, 그리고 거룩한 전쟁 세가지 입장으로 나뉘는 견해들에 대해 토론도 해보았습니다. C. S. 루이스의 책 중에 '영광의 무게'라는 책을 보면 '나는 왜 평화주의자가 아닌가'라는 에세이가 나옵니다. 그의 논점은 결국 원수를 사랑하고 왼뼘을 맞으면 오른빰을 대는 것은 나에게는 적용될 수 있지만 가족이나, 사회, 국가를 이루는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이 강도를 만나 당하고 있는데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면 보고만 있는다면 그것은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결과라는 ..

할일은 쌓여있는데...

심사할 프로포잘들을 읽고 있는데 참 안 읽힙니다. 다음주에 워싱턴 디씨 근처에서 리뷰 미팅이 있어서 그 전에 다 소화를 해야 하는데 진도가 안 나갑니다. 점점 논문 심사도 많아지고 프로포잘 리뷰도 해야하고... 세금으로 공부했고 세금으로 지금도 여유롭게 연구하고 있으니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해야하는 일인데 귀찮고 힘들다는 생각도 듭니다. 날도 추워서 움츠러 드는 것도 같고.. 자 잘 읽어봅시다. ------- 뻥튀겨서 프로포잘 쓰고 연구비 받는 몰지각한 기업가 얘기들을 권간사님이 쓰셨네요 트랙백 해야쥐! 아, 프로포잘 읽기가 지겨운 이유는 눈이 반짝 뜨이는 프로포잘들도 있지만, 똑같은 거 얘기하는 재미없는 프로포잘이 많아서인거 같습니다. 뻥튀겨서 돈 버는 것과는 다르게, 소프트 머니로 자기 월급을 주는 연..

[독서모임]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 5,6,7장

두번째 모임에서 책의 뒷부분을 가지고 토론을 했습니다. 저자들의 핵심 주장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회변혁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다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겠는데 왜 그런 주장을 했는지 그 동기가 약간 이해가 되었습니다. 6.7장은 목회자들에게 주는 메세지라고 할 수 있지만 나름대로 교회에 대한 그들의 진단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결국 교회는 교리를 가르치거나 어떤 원리를 '가르침'으로써 그에 동의하는 합리적 이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구성되기 보다는 하나님의 원리대로 사는 사람들을 보고 경험한 다른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에 속하고 변화됨으로써 생명력을 갖습니다. 산상수훈에 지적으로 동의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삶을 보고 모종의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그를 따..

비 내리는 LA

오늘 거의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쨍쨍한 날씨만 보다 가끔씩 흐린 날이 되면 왠지 우울해지는 켈리포니아 스타일에 익숙해 진지 오래. 오늘처럼 비가 주욱주욱 내리면 대략 난감입니다. 퍼붓는 비를 몸으로 감당하는 사람들과 엉금엉금 기어가는 자동차들 속에서 나도 빗속의 풍경이 됩니다. 컴퓨터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보며 심사할 프로포잘들을 읽는데 왠지 한국 생각이 났습니다. 비오는 날에는 공부를 안했던 기억도 나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비오는 걸 그리도 좋아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이런 날에는 감미로운 가요나 아련한 재즈가 나오는 클래시한 까페에서 커피를 씹으며, 창밖 너머 기억의 세계로 서서히 걸어들어가 보는 것도 안성마춤일 듯 합니다. 그런 여유는 과로사가 걱정되는 삼,사십대에게는 과분한 것일 수 있겠으나 그..

내가 사는 세상은 어디인가

내가 사는 세상은 어디인가 얄팍한 잡담들과 애써 시선을 끄는 가벼움이 난무하는 인터넷의 세상인가 너무나도 멀어 상상조차 되지 않는 별들의 세상인가 우울한 소식이 연일 들려오는 한민족의 세상인가 귀가하는 파티족들의 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짙어가는 밤, 잠못들어 홀로 세는, 오감으로 느껴지는 이 익숙한 공간이 그 세상인가 나는 종종 헷갈린다. 답을 찾으려 여기저기 들쑤시다 더 짙어지는 밤을 보면 망연히 주저앉아 지친 정신을 달랜다.

[독서모임]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 1-4장

지난 번 모임은 발제자도 못 오시고 책구입도 늦어져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오늘 2번째, 그러니까 첫번째 모임으로 1,2,3,4장을 나누었습니다. 저자들은 국가를 더 기독교적으로 만드려는 노력을 콘스탄틴주의로 보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대신 그들은 진정한 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요약하자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요더의 세가지 유형의 교회를 예로 듭니다. 복음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껍질만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행동주의 교회나 개인적 회심에 그치고 마는 회심주의 교회를 넘어서 하나님나라의 공동체에 속해서 새로운 백성으로 살아가는 고백교회가 그들이 제시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개혁주의세계관을 비판하는 저자들의 논조를 살펴보고 여러..

한적한 시골 하와이

간만에 하와이에 왔습니다. 코나 빅아일랜드는 왠지 여행객이 많나 봅니다. 렌트카들이 전부 예약이 끝난 곳이 많아서인지 비싼 가격에 덜덜거리는 차를 빌려 검은 용암으로 뒤덮인 벌판을 가로지르고 약간 산길을 오르면 인구 몇천명 밖에 안되는 와이메이아로 올라왔습니다. 제주도를 연상시키는 산자락에 소들이 풀을 뜯고 지형 탓에 잔 비가 자주 뿌리는 여기 작은 마을에 정도 들었습니다. 한두 주 쯤 조용히 휴가를 보내며 틀어박혀 있어도 괜찮다 싶습니다. 15분 정도만 내려가면 옥빛으로 잔잔하게 덮힌 태평양의 해안이 내려다 보이고 고운 모래로 넓직한 해안가를 자랑하는 하프나 비치도 가까이 있습니다. 물론 이 시골 구석에도 한인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매번 관측을 오면 한번씩 들러 갈비를 먹곤 합니다. 관측 첫날밤은 항상..

고대 아테네의 물시계 - 민주주의와 의사표현

지난 여름 아테네에 갔을 때 보았던 물건들 중에 기억 남는 것이 몇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고대 아테네의 아고라 광장 옆에 있던 박물관에서 보았던 물동이처럼 생긴 기구였다. 영어로 Klepsydra라고 불리는 이 기구는 간단히 말하자면 시간을 재는 도구다. 기원전 5-4세기 경에 아테네의 법정에서 쓰였던 도구인데 간단히 말해서 변론자들에게 일정한 시간을 주기 위한 도구다. 두 물동이로 구성된 간단한 장치인데 윗 물동이에 물을 가득 부으면 하단의 구멍을 통해서 아래 물동이로 물이 흘러 내린다. 약 6.4리터의 물이 다 빠져나가려면 약 6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공평하게 6분의 시간을 양쪽의 변론자에게 주기 위한 장치랄 수 있겠다. 화술이 좋은 사람이 주욱 길게 말해버리면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