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한적한 시골 하와이

별아저씨의집 2009. 1. 23. 08:09
간만에 하와이에 왔습니다.

코나 빅아일랜드는 왠지 여행객이 많나 봅니다. 

렌트카들이 전부 예약이 끝난 곳이 많아서인지 비싼 가격에 덜덜거리는 차를 빌려 

검은 용암으로 뒤덮인 벌판을 가로지르고 약간 산길을 오르면 인구 몇천명 밖에 안되는 와이메이아로 올라왔습니다.

제주도를 연상시키는 산자락에 소들이 풀을 뜯고 지형 탓에 잔 비가 자주 뿌리는 여기 작은 마을에 정도 들었습니다.

한두 주 쯤 조용히 휴가를 보내며 틀어박혀 있어도 괜찮다 싶습니다. 

15분 정도만 내려가면 옥빛으로 잔잔하게 덮힌 태평양의 해안이 내려다 보이고 고운 모래로 넓직한 해안가를 자랑하는 하프나 비치도 가까이 있습니다. 물론 이 시골 구석에도 한인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매번 관측을 오면 한번씩 들러 갈비를 먹곤 합니다. 


관측 첫날밤은 항상 분주하고 힘들기도 합니다. 오후 1시부터 영상으로 미팅을 하고 관측 준비에 들어가서 해가 질 때까지 바쁘게 데이타를 구합니다. 이번에는 여러 프로젝트가 섞여서 그만큼 준비할 것들이 많았는데 오후 긴 시간이 다 소비되었군요.

해가 지면 돔을 열고 망원경을 준비시킵니다. 그리고 해가 지평선 밑으로 12도 정도 내려가는 시간이 되면 본격적으로 사이언스 대상들을 관측하기 시작합니다. 

하와이의 겨울밤은 꽤나 깁니다. 10도 정도되는 위도이기 때문에 해가 6시 20분 쯤 져서 아침 6시 50분 쯤 뜨는데 거의 12시간 망원경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관측이 끝나면 매우 피곤하지요. 

왜 줄줄이 관측얘기를 써대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어젯밤 중간에 잠시 사발면을 하나 먹었는데 낮에 한국식당에 남겨온 깍뚜기랑 먹으니 정말 그 맛이 죽입니다. 

대형망원경은 굉장히 다양한 장치들로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작은 장치하나가 고장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저녁에 카메라 중 하나가 문제가 생겨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까운 망원경 시간 때문에 사람들이 긴장하기도 하고 열받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이럴때 나오는 행동을 보면 바로 그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삶의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초연하게 대처하는 경우도 있고 불만으로 가득차는 경우, 즐겁게 그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경우, 오히려 흥분해서 문제해결에 몰두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저도 관측 경험이 많아지다 보니 초연한 태도를 많이 배우게 됩니다. 그 데이타 없어도, 이거 망해도 살 수 있다는 그런 초연함이랄까. 

인생이 그런것 같습니다. 뭐 하나에 매달려 그거 없으면 못산다는 태도가 있는 반면, 더 넓게 더 길게 인생을 보고 허허허 웃을수도 있습니다. 한국나이로는 이제 4자가 붙기 시작해서 인지 혹은 그만큼 에너지가 부족해서 인지는 몰라도 세상이 약간은 다르게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원래 잠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이 밤을 세우는 관측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합니다. 5시간쯤 자고 잠이 깼는데 오늘은 제대로 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바람많고 흐린 하늘아래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들을 보며 상념에 잠기다 와야 겠습니다. 둘째날은 훨씬 여유로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