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48

레이져 빔을 밤하늘에 쏘다.

하와이에서 주말을 보내고 있다. 휴가가 아니라 출장을 온 것이라서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신나는 표정의 여행객들에 묻혀 하와이에 오는 것이 그리 나쁘진 않다. 코나 공항에 내려 렌트가를 받아 와이메아로 올라왔다. 이번 관측은 이틀 밤에 걸쳐 전반부만 시간을 받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쉬운 관측이다. 관측 프로그램에 따라 하룻밤을 반으로 나누어서 전반부(first half night)와 후반후(second half night)로 따로 배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이 바로 그런 경우다. 우리가 관측하려는 은하들이 이른 밤에만 보이기 때문에 전반부 관측이 끝나면 다음 팀에서 망원경을 넘기고 1시쯤에는 숙소로 가서 잠을 잘수 있다. 그러니까 밤을 샐 필요가 없는 만만한 관측이랄까. 물론 후반부 관측을 하게..

과학이야기 2009.05.04

과학을 하는 맛.

거의 1년 가까이 끌어오던 논문이 드디어 출판되게 되었다. 이 논문에 대해 나름대로 몇가지 의미부여를 해 볼수 있겠는데 그 중 제일 힘들었지만 통쾌했던 것은 레프리(심사위원)를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최근 몇년간 저널에 내는 논문마다 혹평이 가득 담긴 레프리의 첫 리포트가 돌아오곤 했다. 작년 여름엔가 제출한 이번 논문의 경우에도 오리지날한 내용이 없다고 출판불가하다는 혹평이 담긴 짧은 리포트가 돌아왔다. 물론 논문자체가 거부된 것은 아니어서 레프리와 논쟁할 기회는 갖게 되었다. 그러나 워낙 강한 어조의 일방적인 주장이었기에 동료들은 아예 이 저널을 포기하고 다른 저널에 다시 제출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건 받아들일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지 모르는 그 레프리는 결국 이 필드의 전문가 중 한 사람일테고 그가 ..

카테고리 없음 2009.04.22

부활절 메세지 - 죽는 것과 열매 맺는 것

이번 부활절 예배의 메세지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가르침이었다. 긴 여행 뒤에 골골한 몸을 붙들고 꼭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메세지에 대한 묵상도 늦어버렸다. 7월 말이면 십년 동안의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모든 메세지들이 그 컨텍스트에 맞추어 귀에 들어온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수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은 사실,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빗대어 말한 것이라고 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 그 길을 가야만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의 길이 주어진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말씀을 전하신 그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 길은, 예수님이 결국 걸어내신 그 길은 그의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는 길이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나리타 공항에서 쉬고 있습니다. 운동화에 운동복차림이라 서울사람들 기준으로는 제 모습이 민망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서 도쿄까지 일반석이 만석이라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 받았는데 더 민망할지도 모릅니다. 옷차림이 별로면 받는 서비스 수준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흔히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아무리 형편없는 옷차림이라도 비즈니스 좌석에 앉으니 서비스가 좋더군요. 거지와 왕자가 서로의 옷차림을 맞바꾼 얘기가 생각납니다. 거지로 옷차림을 바꾼 왕자는 사람들의 무시하는 눈초리가 사실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았겠지요. 반면 왕자로 옷차림을 바꾼 거지는 사람들의 우러러보는 시각이 무척이나 불안하고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보이는 나와 실재의 나는 비슷한 면도 다..

기도의 집, 강도의 소굴

방문해 볼 교회를 찾을 시간이 없어 지인들이 있는 신촌의 하.나.의 교회에 갔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한 주, 설교말씀은 한 주간의 예수님의 행적을 훝는 내용이었다. 그 중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좇아내는 장면이 나왔다.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물론 교회에서 돈거래를 하지 말거나 뭘 팔지 말라는 얘기가 촛점은 아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뭔가 유익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강도의 소굴이 될 수 밖에 없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누구나 더 많이 갖기를 바라기 때문에. 8월말 쯤 한국에 귀국을 하기로 했다. 교회를 정하는 문제가 쉽지 않게 다가온다. 교회를 정할 때, 우리는 얼마든지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데 일조하기 쉽다. 사업상 유익한 사람들을 만나기 쉬운 교회, 정치인들에게 ..

닦으면 뭐든지 새것처럼 된다

서울에 오면 목욕탕에 들러 묵은 때도 벗겨내고 광도 냅니다. 지저분한 구두를 닦아달라고 부탁하고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놓여있는 구두들 중에서 내 구두를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잘 닦여 내 구두인지 알아볼수가 없었습니다. 와, 이렇게 새것처럼 되다니... 너무 새것처럼 보여서 못알아봤다고 했더니 닦으면 뭐든지 새것처럼 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닦으면 뭐든지 새것처럼 됩니다. 지저분했던 구두를 생각하며 새것같은 구두를 보니까 열심히 닦지 않았던 게으름이 계면쩍습니다.

죽으면 안돼! 엄살은...

요즘 날씨는 무지 좋은데 여유있게 보낼 시간이 없군요. 주말에 컨퍼런스로 떠나기 전에 제출할 프로포잘이 4개나 되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컨퍼런스 전에 레프리 리포트 받은 페이퍼를 고쳐서 새로 제출하려고 했는데 안 될 것 같네요. 과로사로 죽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오늘 저녁은 잠깐 브레이크를 갖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