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362

라이덴에서 맞는 주일

라이덴에서 맞는 주일,시차때문에 일찍 깬 이른 새벽부터 블랙홀 논문들을 읽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천문학, 그중에서도 몰랐던 사실들이 빠르게 밝혀지는 이 분야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자 흥미로운 무대입니다. 몇년만 논문을 읽지 않으면 뒤쳐지기 쉬운 분야에서 논문들을 읽을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박사과정 시절엔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논문들을 읽으며 모르는 내용들은 참고문헌을 죄다 뒤져가며 공부하고 그렇게 연구결과들을 섭렵하면서 한 주제를 점점 꿰둟어 보는 내공을 쌓아갔는데, 커리어가 흘러가면서 매니저같은 일이 점점 많아지니 그 시절의 그런 호사를 누릴 기회는 많지 않다고 변명하면서도 쌓아둔 논문들을 뒤늦게 읽으면서 참 부끄럽습니다. 대부분 작년 하반기에서 올해 나온 논문들인데 그사이 논란되던 관측결과들엔 ..

암스테르담에서 하루

하루 묵고 가는 암스테르담에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처음 만나는 분들과도 유쾌한 대화와 식사를 했습니다. 과학상식의 오류에 맞서 과학을 지키는 일은 한다는 분들의 연락을 받고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는데 어쩌다 마음이 편해졌는지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불러주고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저는 자뻑증에 빠져 또 열심히 수다를 떨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밤거리를 보며 경제논리와 인간성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호기심은 잠깐이었고, 동유럽에서 온 여성들이 공공연히 상품화되는 모습에 자본주의는 결코 자본의 논리앞에 불평등을 고칠 수 없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요일 오전, 샌드위치 하나를 먹으며 어슬렁 어슬렁 꽃시장과 카날과 광장을 ..

쌀쌀한 늦은 밤

쌀쌀한 늦은 밤 한산한 까페에 음악이 크게 흘러나온다. 늦은 퇴근 길을 서두는 행인들이 스쳐가는 창밖을 보며 밤과 음악 앞에 잠시 생각에 잠긴다. 막, 끝낸 연구제안서를 이메일로 회람하고선 편한 맘으로 내일 있을 행사 관련 일처리를 하고 통화를 하다. 뭔가 진행되고 굴러가는 걸 보면 흐뭇하다. 아무래도 나는 일 중심의 사람인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는 추억을 부르고 사랑을 부른다. 한편, 다가오는 긴 겨울이 주는 쓸쓸함에 외로움에 마음이 막막해지면서도또 한편, 사계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삼십대의 어느 밤, 인생 길에서는 무한한 고독과 외로움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절절히도 깨달았을 때, 그 긴 겨울의 고독의 밤에 나는 비로소 인생을 제대로 목격했는지도 모른다. 누가 남을 것인가. 애지중..

폴킹혼 강의 준비

신에 대해 배워야 하는 많은 것들은 오직 위험을 감수하고 보다 인격적인 형태의 만남을 받아들일 때만 가능하다. - 폴킹혼 그렇습니다. 신에 대한 탐구는 지적은 작업을 통해서 그리고 과학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진정으로 배우려면 위험을 감수하고 인격적 관계에 뛰어들때 가능한 것이겠습니다. 마치, 사랑을 책으로 배울 수 없고, 행복과 고통을 함께 수반할 위험을 감수하고 인격적 관계에 뛰어들어야 진정으로 사랑에 대해 배울 수 있듯이 말입니다. 수요일 저녁에 새물결아카데미에서 강의할 내용을 준비하다가 존 폴킹혼의 명문을 마주합니다. (그런데 이 책 누가 번역한 거야? 저는 제 번역이 훌륭하다고 결코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래도 이 문장 번역은 괜찮습니다)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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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내고 조바심을 낼 때는 오히려 주시지 않는 경우가 많고, 마음을 비우고 겸허한 마음으로 맡기면 놀랍게도 허락해 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아마도 종종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우상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울 줄 안다면 가져도 되는 것이라는 뜻이겠습니다. 어느 재단에 연구보고를 하러 갑니다. 처음부터 5년을 관측하고 측정해야 결과가 나오는 연구과제를 제안했는데 3년의 연구비만을 주어서 갸우뚱하게 한 과제입니다. 물론 많은 연구비를 통해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연구를 가능하게 한 것에 무척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래도 5년해야 되는 연구를 3년만 지원하겠다니 어쩌란 말인가라는 생각은 여전히 듭니다. 그래도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나름대로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하니 잘 보고해야겠습니다. 연구비에 목..

2013년 성탄절

성탄절이 가고 있습니다. 그 맑고 환한 밤 중에 뭇 천사 내려와….이 찬송가의 가사가 몇 주째 마음에 꽂혀 있습니다. 맑고 환한 밤..밤이 어떻게 환할 수 있었을까? 보름이었을까? 아니면 별이 그렇게 많았을까? 그날의 베들레헴은 그리 호들갑스럽지 않은 밤이었을 것입니다. 성탄예배에서 칸타타를 보았습니다. 가끔 눈물이 고였던 이유는 칸타타에 대한 감동이나 잉카네이션의 신비 보다는 아마도 10년 이상 성가대를 했던, 칸타타와 성탄절에 대한 추억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랐습니다. 희, 경, 미, 어린 시절 그들이 그립습니다. 십대와 이십대를 한껏 채웠던 열정과 사랑과 감동들은 기억조차 어려운 희미한 추억의 조각이었다가 불쑥, 사십대 중반의 눈가에 눈물로 고입니다. 누가복음을 읽었습니다. 그는 누구였을까..

과신대 기초과정2, 세번째 세미나를 마치고

과신대 기초과정2, 세번째 세미나를 마치고 과.신.대 모임에서 기초과정2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3시간 넘게 토론으로 진행된 3번째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이번 주제는 과학과 신앙을 보는 4가지 입장을 살펴보고 각 입장의 차이점과 장단점들을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예에 적용해 보고 서로의 생각을 들으면서 과학과 신앙을 어떻게 봐야할지 우리의 생각을 치밀하게 다듬는 시간이었습니다. 토론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저는 재밌는 건지도 모르지만 토론의 방향을 끌어가면 다양한 생각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빙고~! 하는 감탄을 속으로 내질렀습니다. 갈등, 독립, 대화, 통합 등 4가지 관점은 이안 바버가 제시한 유형론이고 존 호트의 책을 통해서 대화 대신 접촉이라는 관점으로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갈등론 크..

갈릴레오의 파도바에서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달을 처음 관측했다는 파도바에 학회차 왔습니다. 베니스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유서깊은 도시입니다. 어제 자정이 넘어 호텔 방에 들어 오니 길 건너편에 성 안토니오 성당이 내다 보입니다. 성 안토니오가 살고 죽은 도시라 파도바는 그의 도시로 불리기도 했답니다. 성 안토니오 성당의 10시 미사에 갔습니다. 성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이탈리어로 진행되는 순서에 따라 진지하게 미사에 임합니다. 낮은 소리로 이어지는 이탈리어 가운데 파드레, 예수, 등 몇마디 단어 밖에 들을 수 없지만 사도신경과 주기도문도 드리고 성당 벽의 프레스코와 조각들 그리고 스테인레스글라스를 보며 나름 집중해 봅니다. 오늘 본문은 나사로 이야기 같습니다. 나자로와 마르따, 마리아가 계속 등장합니다. 조각난 단어..

추구자의 여정

부활절을 한 주 앞 두고 베네치아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립니다. 성 마리아로 시작하는 이름의 성당 정면엔 마리아를 중심으로 위로는 승천한 예수의 모습과 아래로는 제자들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웅장한 돔 아래로 나를 내려보는 조각과 그림의 인물들이 뭔가 조용히 속삭이는 듯 합니다. 당신은 어디에나 계시니 서울이든 베네치아든 혹은 어떤 이름의 성당이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유명 대학들 로고에 들어가는 단어 몇개 정도 읽을 수 있는 나는 중세의 커다란 그림들 아래 씌어진 라틴어를 볼 때마다 언어를 공부하고 싶단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고난주간의 본문을 길게 읽나 봅니다. 어느 복음서인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대목을 얼핏 알아들었습니다. 개신교와 기독교를 구별 못하는 많은 사람..

태극기 집회 나가라고 설교하는 목사들의 교회

태극기 집회 나가라고 설교하는 목사들의 교회 (2017.2.7) 대형교회 목사들이 탄핵반대 태극기 집회에 나가라고 설교 때마다 목소리를 높인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주의 종들처럼 보이지가 않네요.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유언비어 수준의 이야기에 기초한 논리를 강요하듯 던져내는 설교. 이런 설교가 일방적으로 외쳐지는 교회에 계속 나가야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나봅니다. 아마도 박차고 나와야 하겠습니다. 안그러면 내 영혼이 조금씩 좀먹고 썩어서 팍 죽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설날에 드리는 신년예배. 양가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2017년, 가장 떠오르는 단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는 본문이 떠올라 그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엘리야를 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