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암스테르담에서 하루

별아저씨의집 2017. 11. 11. 21:13
하루 묵고 가는 암스테르담에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처음 만나는 분들과도 유쾌한 대화와 식사를 했습니다. 과학상식의 오류에 맞서 과학을 지키는 일은 한다는 분들의 연락을 받고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는데 어쩌다 마음이 편해졌는지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불러주고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저는 자뻑증에 빠져 또 열심히 수다를 떨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밤거리를 보며 경제논리와 인간성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호기심은 잠깐이었고, 동유럽에서 온 여성들이 공공연히 상품화되는 모습에 자본주의는 결코 자본의 논리앞에 불평등을 고칠 수 없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요일 오전, 샌드위치 하나를 먹으며 어슬렁 어슬렁 꽃시장과 카날과 광장을 지나며 관광객 코스푸레를 좀 하고는 점심 무렵 반 고흐 뮤지엄에 갔습니다.

가이드를 해 주신 분 덕분에 반 고흐의 일생을 따라 그의 작품과 작품세계를 슬쩍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힘겨운 예술가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그림을 팔려고 노력했던 일상을 넘어 그가 그림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3차원의 사물이 보이는 그대로 2차원 캔버스에 옮겨질 수는 없습니다. 사물 그대로가 아니라 사실 작가에게 보이는 대로 그려질 뿐입니다. 마치 과학은 자연이라는 실재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해석이듯, 굵은 선과 인상파들의 기법으로 담은 해바라기와, 아몬드 꽃피는 나무와, 까페와, 언덕 위의 교회는 모두 그가 보고 바라는 세상을 담은 메세지입니다.

관객에게 해석을 맡겨버리는 포스트모던은 아무래도 최소한의 실재성을 믿는 과학자에겐 힘겹습니다. 실재와 주관 그 사이 어디즈음엔가 답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반 고흐가 그리던, 실재에 뿌리를 둔 그의 이상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실재를 다 드러내지 못하는 과학과 더불어 과학에 담기지 않는 세상을 믿고 바라듯 말입니다.

파리와 프랑스 남부로 옮겨간 그의 삶은 그의 그림에 담긴 밝은 색상을 통해 엿보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걷고 사색하고 숨을 쉬는 산책의 공간과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살아야 합니다. 자연이 주는 영감은 바로 경제논리에 지친 우리 일상에 쏟아붓는 산소와 같은 것입니다.

비가 그친 암스테르담은 아름다와졌습니다. 잔잔한 카날들 위로 쏟아지는 햇살에 비친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부드럽게 휘어진 거리를 따라 여유있게 서 있는 모습이 여기가 유럽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예술가는 선지자입니다. 비록 그들이 던지는 메세지가 해독불가하더라도 그들은 끝없이 만들고 표현합니다.

그러고보면 과학자는 그저 호기심에 휘둘린 아이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끝없는 탐구심이 끌어가는 과학자의 삶에서 그 호기심이 말살된다면 그는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예술가와 과학자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 둘이 모두 끊임없이 발휘하는 상상력일 것입니다.

짧게 암스테르담에서 보낸 시간에 오늘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백년 전을 살았던 고흐를 만나고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나를 만납니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이 영감이 조금이나마 더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애써 기억을 굵은 선에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