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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달을 처음 관측했다는 파도바에 학회차 왔습니다. 베니스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유서깊은 도시입니다.

어제 자정이 넘어 호텔 방에 들어 오니 길 건너편에 성 안토니오 성당이 내다 보입니다. 성 안토니오가 살고 죽은 도시라 파도바는 그의 도시로 불리기도 했답니다.

성 안토니오 성당의 10시 미사에 갔습니다. 성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이탈리어로 진행되는 순서에 따라 진지하게 미사에 임합니다. 낮은 소리로 이어지는 이탈리어 가운데 파드레, 예수, 등 몇마디 단어 밖에 들을 수 없지만 사도신경과 주기도문도 드리고 성당 벽의 프레스코와 조각들 그리고 스테인레스글라스를 보며 나름 집중해 봅니다. 오늘 본문은 나사로 이야기 같습니다. 나자로와 마르따, 마리아가 계속 등장합니다.

조각난 단어들로는 신부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지만 전세계 순례자들이 찾는다는 이곳 성당에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에 담긴 복음을 생각합니다. 성채를 받는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이들은 무엇을 신앙하는 걸까 상상해 봅니다. 500백년 이상 같은 곳에서 미사를 드린 그 수많은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신앙한 걸까요?

낮게 깔리는 오르간 소리가 성당안에서 아름답게 공명합니다. 듣다가 찬송가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만유의 주재, 존귀하신 예수, 인자가 되신 하나님, 나 사모하여.... 인자가 되신 하나님을 내가 사모한다는 구절에서 울컥 깊은 감정이 밀려옵니다.

과학자의 시각에서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비웃을 수도 있겠습니다. 비과학적이라거나 비이성적이라거나 종교행위에 불과한 겉치레라거나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욕망을 이용한 속임수의 측면이 있다거나. 그렇게 우주를 다 이해한다는 듯 이성의 높은 잣대로 신앙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내려다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으로 보여도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마음과 헌신은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부모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렇고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그렇고 흠모하는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그렇습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 비스무리한 신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되는 그 분에 대한 신앙도 그렇습니다.

끝이 느려지면서 낮게 떨어지는 이탈리아어를 듣는 내내, 불가해한 그 내용들은 그저 상상력을 자극할 뿐입니다. 그 상상력은 기존에 내가 가진 생각과 시각과 지식들을 재구성합니다. 언어적 대화와 비언어적 대화는 어떤 차이일까요. 한편 한국말로 대화하며 모든 단어를 알아듣는다해도 그 안에 담긴 실재를 정말 다 이해할 수 있는 걸까요. 성서를 읽을 때마다 인간의 언어로는 다 담길 수 없는 불가해한 신앙의 요소가 있음이 먼 이국 땅 이탈리아어로 드리는 미사 가운데 홀연히 가슴에 와닿습니다.

내 안에는 두개의 언어가 존재합니다. 이성과 과학의 언어와 신앙과 초월의 언어. 이 두개의 언어는 incommesurable하지만 나는 아마도 bilingual이겠습니다. 그리고 그 두 언어가 담는 내용은 다만 실재의 다른 면들일 뿐입니다.

수천년의 교회사에 담긴 신앙은 오늘 내 안에서 진화합니다.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를... 나는 이 땅에서 영원한 순례자입니다.

20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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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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