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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한 주 앞 두고 베네치아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립니다.

성 마리아로 시작하는 이름의 성당 정면엔 마리아를 중심으로 위로는 승천한 예수의 모습과 아래로는 제자들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웅장한 돔 아래로 나를 내려보는 조각과 그림의 인물들이 뭔가 조용히 속삭이는 듯 합니다.

당신은 어디에나 계시니 서울이든 베네치아든 혹은 어떤 이름의 성당이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유명 대학들 로고에 들어가는 단어 몇개 정도 읽을 수 있는 나는 중세의 커다란 그림들 아래 씌어진 라틴어를 볼 때마다 언어를 공부하고 싶단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고난주간의 본문을 길게 읽나 봅니다. 어느 복음서인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대목을 얼핏 알아들었습니다.

개신교와 기독교를 구별 못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이 씁슬하기도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는 언제나 나의 작은 세계 안에 갇혀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배운 척 아는 척 하는 나도 누군가에게는 씁슬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여행을 많이 하면 무신론자가 된다죠. 부모가 가르쳐 주고 동네 사람들이 믿고 사는 세계가 전부인 줄 알았다가,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며 다른 믿음과 다른 가치,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사실 충격을 받습니다. 그 경험은 종종 내 좁은 세계의 알껍질을 깨뜨리는 망치가 됩니다.

그렇다고 여행을 금지하고 가택연금이라도 시킬 수는 없습니다. 거꾸로, 넓은 세상을 보며 세계관과 신앙의 폭이 넓어져야 합니다. 한번도 이 드넓은 세상에 대해 제대로 가르친 적도 없이 세상은 악하다며 교회 안에 가두어 두는 교육은 결국 무신론자를 길러내는 일에 일조할 지도 모릅니다. 동화처럼 이상적인 세계가 아닌 실제 삶으로 부딪히는 세상을 경험하면서 알껍질이 깨지는 경험은 오히려 우리의 신앙 여정입니다.

아무도 보는 자가 없는 낯선 도시에서 종종 믿음을 시험해 봅니다. 내 삶의 가장 밑바탕을 채우는 토대는 과연 무엇입니까. 파이프 오르간이 흐르는 고요한 성당에 앉아 수백년 전부터 여기서 예배드렸을 크리스쳔들을 생각해 봅니다. 내 삶은 얼마만큼 그들과 다릅니까.

이 땅에 전쟁이 범람합니다. 언제나 내 마음엔 죄된 본성이 속삭이는 정욕의 드라이브가 있고 남과 비교하게 되면 홀연히 솟구치는 상대적 박탈감의 분노가 있으며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누리고 살려는 수치스런 욕구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뉘고 싸우며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거짓과 폭력은 이기적 욕구들의 채찍에 온 세상을 삼켜버렸습니다. 화학무기로 희생된 민간인들의 끔찍한 사진들이 안방까지 섬뜩하게 찾아옵니다. 모든 전쟁은 사랑의 이름으로 치뤄졌다지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은 어쩌면 영원히 그치지 않을 듯 합니다. 당신이 처음 세상을 만들 때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세상의 시간과 공간이 나에게는 허무한만큼 당신에게 의미있는 것입니까. 혹은 알 수 없는 창조의 불가사의함 앞에서 나는 그저 어린아이 같이 어리둥절하고 있는 것 뿐일까요.

부활절은 앞두고 언제나 처럼 평화를 구하며 기도합니다.
내 마음에 악과 죄를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길, 이성과 지혜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이 땅에 당신의 사랑의 감화를 주시길, 피로 물든 세상에 평화와 안식을 주시길, 당신을 찾는 모든 추구자들이 그 긴 여정에서 지치지 않게 해 주시길.

20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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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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