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362

한적한 시골 하와이

간만에 하와이에 왔습니다. 코나 빅아일랜드는 왠지 여행객이 많나 봅니다. 렌트카들이 전부 예약이 끝난 곳이 많아서인지 비싼 가격에 덜덜거리는 차를 빌려 검은 용암으로 뒤덮인 벌판을 가로지르고 약간 산길을 오르면 인구 몇천명 밖에 안되는 와이메이아로 올라왔습니다. 제주도를 연상시키는 산자락에 소들이 풀을 뜯고 지형 탓에 잔 비가 자주 뿌리는 여기 작은 마을에 정도 들었습니다. 한두 주 쯤 조용히 휴가를 보내며 틀어박혀 있어도 괜찮다 싶습니다. 15분 정도만 내려가면 옥빛으로 잔잔하게 덮힌 태평양의 해안이 내려다 보이고 고운 모래로 넓직한 해안가를 자랑하는 하프나 비치도 가까이 있습니다. 물론 이 시골 구석에도 한인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매번 관측을 오면 한번씩 들러 갈비를 먹곤 합니다. 관측 첫날밤은 항상..

고대 아테네의 물시계 - 민주주의와 의사표현

지난 여름 아테네에 갔을 때 보았던 물건들 중에 기억 남는 것이 몇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고대 아테네의 아고라 광장 옆에 있던 박물관에서 보았던 물동이처럼 생긴 기구였다. 영어로 Klepsydra라고 불리는 이 기구는 간단히 말하자면 시간을 재는 도구다. 기원전 5-4세기 경에 아테네의 법정에서 쓰였던 도구인데 간단히 말해서 변론자들에게 일정한 시간을 주기 위한 도구다. 두 물동이로 구성된 간단한 장치인데 윗 물동이에 물을 가득 부으면 하단의 구멍을 통해서 아래 물동이로 물이 흘러 내린다. 약 6.4리터의 물이 다 빠져나가려면 약 6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공평하게 6분의 시간을 양쪽의 변론자에게 주기 위한 장치랄 수 있겠다. 화술이 좋은 사람이 주욱 길게 말해버리면 분..

2009년을 맞으며

1월부터 주욱 늘어서 있는 출장계획들을 보며 꽉찬 느낌으로 새해를 맞습니다. 새 해 첫 날, 아내와 함께 히브리서를 읽었습니다. 톱에 짤리고 목이 베이고.. 고난을 당했지만 믿음을 지킨 증인들의 이야기가 주욱 이어집니다. 구름같이 허다한 예수의 증인들 있으니 모든 무거운 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 그 찬양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의 이름을 주욱 나열한 후에 그들은 약속한 것을 받지 못했다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기록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한번 더 이어지고 나서 또다시 그들은 약속한 것을 받지 못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멀리서 그저 도래할 메시야를 내다봤던 그들. 그러나 그들은 그래도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완성될 그의 나라를 내다보는 우리도 같은 ..

성탄절에

벤쿠버와 한국을 연이어 다녀왔더니 성탄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동안 썰렁해진 블로그를 그래도 찾아오시는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어 뭔가 글을 올리고 싶었지만 빠듯한 일정을 보내드라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뿐 아니라 고민거리가 생겨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한국에는 갑자기 일이 있어 잠시 들어갔었는데 여러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때문에 들어갔던거라 알아볼 것들도 알아보고 구체적인 생각들을 해 보느라 마음이 꽉 차버렸습니다. 성탄절입니다. 이제는 맑고 따듯한 캘리포니아의 성탄절이 익숙합니다. 아침에 교회가는 길에 비가 내려, 홈리스들이 걱정이 되더군요. 오늘 드리는 헌금은 혹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일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모로 마음이 분주합니다.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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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초겨울 날씨가 왠지 익숙합니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들, 밥한끼 먹으로 식당에 들어온 한 노인의 모습이나 귤을 싸주는 상점의 주인아저씨의 표정이나, 태평양 이쪽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양들이 낯설듯 하지만 왠지 익숙합니다. 역시 여긴 30년을 보낸 고향일테니까요 퇴임을 4년 앞둔 노교수님이 그러더군요. 50대가 넘어서 주변의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니까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노벨상을 타면 뭐하는가 삶의 다른 부분들이 망가지면.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노교수님의 조언이었을테지요. 제 중심 깊숙히 죄된 속성들을 봅니다. 주의 은혜를 갈구합니다. 어리석은 세상의 풍조들을 이겨내고 빈그룻처럼 허탄한 삶을 살지 않게.

왜 자꾸 딜레이되는건데!!

아직도 벤쿠버 공항입니다. 6시반 비행기가 40분 늦어지더니 한시간 반 더 늦어졌습니다. 캘거리 공항에서 오는 비행기가 눈폭풍 때문에 출발이 지연되었다가 드디어 떳답니다. 7시 45분 쯤 도착하면 8시 45분에는 보딩을 할 수 있다더니 8시 45분이 되니까 정비에 문제가 있다는 군요. 다른 비행기로 교체해서 11시에 출발한답니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다시 또 12시 50분에 출발한답니다. 우~~~~ 이거 뭐 벌써 미국 입국 심사를 했으니 다시 나갈수도 없고 공항 안의 가게는 모조리 문닫았고... 다행히 음식을 시켜준다는군요. 정말 꽝입니다. 이번에도 유나이티드로 표를 끊어서 돌아가는 비행기는 에어 캐나다인데 거참 우연이 또 겹칩니다. 어메리칸을 안타면 꼭 문제가 생긴다니까요. 지치고 배고파 할말도 안나옵..

두 교회

벤쿠버 공항에서 잠시 인터넷을 뒤지고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바로 미국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입국심사를 캐나다 공항에서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친절한 심사관을 만나서 농담도 나누고, 아내는 비자만료가 내년 4월로 되어 있는데도 새로 받은 H1B, H4B 서류를 바탕으로 2011년까지 체류기간을 줘서 까다로운 문제들이 한 큐에 해결되었습니다. 여권도 둘다 내년 4월에 유효기간이 끝나기 때문에 체류기간을 보통 거기 맞추어 주었었는데 이 아저씨는 미국출입을 자주 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 짚으면서 새로 I94를 작성하는게 어떻겠느냐고 하더군요. 내 경우에야 외국에 나갈 일들이 있으니까 새로 여권을 만들어 체류기간을 다시 받으면 되지만 아내는 일부러 출국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아주 잘 되었습니..

벤쿠버에서 양승훈 교수님과

십여 년 만에 벤쿠버에 왔습니다. 세계에서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벤쿠버, 그러나 12월의 날씨는 남부 켈리포니아에서 온 우리를 덜덜 떨게 합니다. 롭슨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넘쳐납니다. 이런 도시의 느낌은 맨하탄이나 뮌헨이나 도쿄나 벤쿠버나 다 같습니다. 양승훈교수님과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창조과학회와 관련된 얘기들도 듣고 본인이 1997년 부터 2003년 까지 겪었던 심적 부담에 대해 그리고 젊은지구론을 버린 이후 느꼈던 해방감과 하지만 아직도 창조과학회 1세대 동역자들에 대해 느끼는 짙은 동지애에 대해 들었습니다. 사실 한국의 창조과학자들 중에 양승훈 교수님만큼 공부를 한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예전에 웨슬리가 했던 얘기였습니다. 결국 글을 읽고 공부하는 학자는 자정능력이 있는 것입니..

추수감사절도 지나고

며칠 잘 쉬었습니다. 몇 가정이 모여서 조촐하게 저녁도 같이하고 한 해 동안 감사했던 것들도 나누었습니다. 어차피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는데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중요할 듯 합니다. 블로그에 한동안 글이 없어 찜찜했습니다. 왠지 빚진 마음이랄까 의무감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뭔가 끄집어 내기가 어려웠던 기간이었던 듯 합니다. 엘에이에 한동안 비도 오고 그것도 주룩주룩. 한 해가 다 가는것 같아 아쉬움도 있고 미래에 대한 떨림도 있고 그랬습니다. 오랜만에 길게 클래식 음악도 들었습니다. 뭔가를 생산해 낸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닌듯 합니다. 연구결과를 내는 것도 그렇고 뭔가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도 그렇고 좋은 관계들을 쌓아내는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남는 것은 결국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기억..

LAX에 갇혀서

아침 일찍 엘에이 공항에 나왔는데 비행기가 취소되었다. 주로 어메리칸 항공을 이용하는데 어쩌다 다른 항공을 타게 될 때는 꼭 문제가 생긴다. 물론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피닉스로 가는 직항이 없어서 사우스웨스트편 티켓을 샀는데 저렴한 가격이라 좋았지만 이렇게 될 줄이야. 두 편이나 캔슬이 되어서 세시간 이상 공항에 갇혀있어야 한다. 슬쩍 노트북을 열었더니 인터넷이 연결된다. 그렇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지.. 이번 여행은 왠지 밀려가는 것 같다.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피닉스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고 세미나도 하기로 되어 있는데 왠지 100% 완벽하게 준비를 못하고 있다. 마음이 다른데 가 있는 것일까. 공항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면 무척 재밌다. 다양한 옷차림, 다양한 인종, 다양한 오리진, 다양한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