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고대 아테네의 물시계 - 민주주의와 의사표현

별아저씨의집 2009. 1. 15. 16:51
지난 여름 아테네에 갔을 때 보았던 물건들 중에 기억 남는 것이 몇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고대 아테네의 아고라 광장 옆에 있던 박물관에서 보았던 물동이처럼 생긴 기구였다. 

영어로 Klepsydra라고 불리는 이 기구는 간단히 말하자면 시간을 재는 도구다. 기원전 5-4세기 경에 아테네의 법정에서 쓰였던 도구인데 간단히 말해서 변론자들에게 일정한 시간을 주기 위한 도구다. 두 물동이로 구성된 간단한 장치인데 윗 물동이에 물을 가득 부으면 하단의 구멍을 통해서 아래 물동이로 물이 흘러 내린다. 약 6.4리터의 물이 다 빠져나가려면 약 6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공평하게 6분의 시간을 양쪽의 변론자에게 주기 위한 장치랄 수 있겠다. 

화술이 좋은 사람이 주욱 길게 말해버리면 분명 그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 장치는 변론 시간을 제한하는, 그러니까 공평한 발언 기회를 주기 위한 장치이다. 전설에 따르면 유창한 변론자는 윗 양동이의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지는 것에 맞추어 변론을 마쳤다고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 

아고라 광장에 서서 나는 한참동안 이 물동이를 생각했다. 약자에게서 발언의 기회를 빼았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 사회적 약자들도 공평하게 같은 시간의 발언권을  얻을 수 있는 사회. 민주주의의 기본이 아닐까.

인터넷 아고라 광장에서 활동하는 미네르바라는 필명의 시민이 구속되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다. 전기통신법이라는 아주 우스운 법을 어겨 구속영장이 신청되었고  국익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건의 무게(?) 때문에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하긴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힘을 발휘하는 나라니 뭘 더 바라랴만 이번 사태는 민주주의에 대한 우스꽝스럽고 심각한 장애라는 것이 나의 사견이다. 인터넷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라는 해석에 나는 동의하는 편인데, 미네르바 사태와 더불어 함께 벌어지고 있는 언론관련 법/정책들이 한국사회를 퇴보하게 할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