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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ity Today 에 실렸던 프란시스 콜린스 박사와의 인터뷰 기사가 이번 한국판 10월호에 실렸습니다. 번역을 부탁받고 원고를 넘겼는데 약간 편집이 되었더군요. 아무래도 프란시스 콜린스 박사의 입장이 한국교회에 부담스러운건 사실인가 봅니다. 여기 제가 번역한 원고를 올립니다. 

진화, 성경, 그리고 자연이라는 책 - 프란시스 콜린스와의 대화

대담자: W. 기버슨

번역: 우종학

프란시스 콜린스는 과학사를 통틀어 가장 대담한 시도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다. 그는 최근에  바이오로고스 재단(BioLogos Foundation)을 설립하였는데 이 재단은 자연의 영역과 영적 영역, 양자의 진리탐구를 지원하며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관점 사이의 조화를 추구한다. 콜린스는 2006년에 출판된 그의 책, “신의 언어 (The Language of God): 과학자가 제시하는 믿음의 증거”라는 책에서 신앙과 과학이 조화를 이룬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아주사 퍼시픽 대학(Azusa Pacific University)에서 컨퍼런스가 열리는 동안 칼 기버슨이 콜린스를 만났다.

칼 기버슨은 다윈 구하기 (Saving Darwin): 기독교인이 되면서 진화를 믿는 방법의 저자이며 바이오로고스 재단의  실행부위원장이다. 그는 골든 대학 (Gordon College)와 이스턴 나사렛 대학 (Eastern Nazarene College)에서 강의하고 있다.

역자 우종학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 무신론자, 기독교과학자에게 따지다 (IVP)”, 역서로 쿼크, 카오스, 그리고 기독교 (SFC), “현대과학과 기독교의 논쟁 (살림)”등이 있으며 오랫동안 신앙과 과학에 대한 글쓰기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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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성경과 진화, 둘 다를 진진하게 받아들입니다. 진화와 신앙 사이의 조화를 자연스레 얻게 되었나요?

: 그래요. 정말 그랬죠. 제가 27살에 기독교인이 되었을때 처음 나갔던 교회는 채플 힐 (Chapel Hill) 근교의 작은 마을에 있던 꽤나 보수적인 감리교회였어요. 그 교회에는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믿고 진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분명 많았을거에요.

하지만 저는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서요. 왜냐하면 제 경우에는 영적 세계관을 갖게 되기 전에 이미 과학적 세계관을 접했기 때문이죠. 일단 신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가 모든 진리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그렇다면 원천적으로 갈등이 있을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되었습니다

: 당신은 마치 이 문제로 갈등하는 근본주의자들과는 반대의 모습을 갖고 있는것 같습니다. 저도 분명 대학시절에 그런 갈등이 있었지요. 저와 같은 근본주의자들은 성경 문자주의에 대해 대단한 확신을 갖고 자랍니다. 그리고 나중에 진화론을 접하게 되죠. 그래서 그들은 이미 갖고 있던 성경에 대한 헌신을 가지고 이 새로운 문제를 보게 됩니다. 어떤 성경적 이슈가 있다는 걸 알기 전에 성경을 해석하게 되는 것이죠. 진화를 충분히 확신하고 있는 당신의 경우에는 기원을 다루는 내용이 성경에 나올때, 마치 오늘날 우리가 지동설을 부정하는 듯이 보이는 성경 구절들을 대할 때 취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겠군요. 우리는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에 성경에 그런 구절들이 있다는 것 조차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 그래요. 하지만 지동설에 비하면 진화는 기독교인들이 편하게 받아들이기가 훨씬 어렵다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진화는 우리 생물적 본성에 대해 말합니다. 그래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가 혹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가라는 주제에 비하면 진화는 신의 형상이라는 개념에 훨씬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물론 지동설은 매우 잘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지식인들이 지동설을 반대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공통조상이론이나 진화론 전반은 어떻습니까? 현재 과학적 증거가 얼마나 확실하다고 보십니까?

:진화의 증거는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거의 하루 단위로 증거가 더 압도적이 되고 있지요. 특히 이제는 DNA를 가지고 다윈의 이론이 제시한 긴 세월동안 진화가 했던 역할들을 디지탈 기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윈은 자신의 이론을 입증해 줄 이런 강력한 증거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그는 DNA의 존재를 몰랐지요. 여러 다양한 방향에서 진화는 깊이 있게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서로 일관된 관점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엄청난 설명능력을 갖고 있기때문에 생물학의 핵심이 되는 것이지요. 진화없이 생물학을 하려는 시도는 수학없이 물리학을 하려는 시도나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습니다.

: 그러나 진화와 물리학을 비교하는 것은 속임수가 아닌가요? 진화는 설명능력의 조각조각들이 짜여진 거대하고­­­ 복잡한 융단과 같습니다. 하지만 진화라는 거대한 융단에는 많은 구멍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얽혀있긴 하지만 분명히 구멍들이 있지요. 가령, 진화에는   공통조상이 필요한데 공통조상에 대한 화석증거가 없습니다. DNA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추론하는 것 외에는 공통조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일반인들은 이런 얘기를 듣습니다. 생명의 나무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에 따르면 하나의 공통 조상이 있고 이 모든 생물체들이 그로부터 나왔다. 하지만 이런 내용에 대해 대부분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가정을 통해 추론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듣고 의심을 품는 것은 이해할만 합니다. 퍼즐 맞추기를 하는데 아직도 수많은 빈조각들이 있다는 것이 우려되지 않습니까?

: 한번도 본적이 없다고 해서 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심해야 할까요?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물리학의 많은 내용들도 추론된 것들입니다. 진화론의 일관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강조되는 빈틈들이 전반적인 진화이론의 뼈대에 실제로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화석이 만들어지는 것이 극도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도 어느 특정한 생물의 화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많은 포유류 동물의 DNA 염기서열을 기초로해서 우리는 이제 포유류 공통조상의 유전자 서열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인류와 모든 포유류를 후손으로 남긴 생물의 DNA 염기서열을 우리가 실제로 볼수 있다는 것은 숨막히는 일입니다.  DNA 염기서열 자체가 하나의 화석 기록이지요.

일반인들에게는 진화에 많은 복잡성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밝혀내지 못한 많은 세부사항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전혀 문제가 없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실수입니다. 그러나 공통조상에서 갈라져나왔다는 것과 긴 시간을 거쳐서 점진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자연선택이 생명체들의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합니다. 이런 점들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습니다. 진화는 다음 주, 내년 혹은 수십만 년 뒤에 버려지게 될 그런 이론이 아닙니다. 진화는 사실이지요

: 정확히 그점에 대해 반대로 얘기하는 반진화론자들의 놀라운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화는 커다란 속임수라는 것입니다. 진화에 대한 확실한 근거는 전혀없으며 과학자들도 점점 진화를 포기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진화를 포기한 진화론자들이 있나요?

: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저도 제 자신을 생물진화 연구에 관심있는 신앙인으로 규정합니다. 만일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저도 들어봤겠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제 생각에 그런 주장들은 전혀 근거없는 주장들입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진화는 하나의 음모이며 곧 밝혀지고 말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확산시키는 손쉬운 방법입니다. 익스펠드 (Expelled)라는 영화에도 바로 그런 아이디어가 담겨있습니다. 진리를 축소시키려는 음모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죠. 그런 견해는 과학의 본성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든지 간에 과학 커뮤니티 안에 몸담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학이 그런 음모를 유지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반기를 들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뒤집고 전복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진화를 뒤집어 엎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노벨상을 타게 되겠지요.

그런 음모가 실제로 30초 이상 존재한다는 입장, 창조론자들이나 지적설계론자들과 같은 과학 영역 밖의 사람들이 취하는 그런 입장은 과학사회의 현실과는 완전히 모순되는 입장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모욕입니다.

: 디스커버리 연구소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기에 속한 지적설계과학자들은 진짜 과학연구를 한다고 하는데요?

: 그들이 무엇을 연구할지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지적설계는 실제로 반증가능한 가정들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과학은 그 본성상 무엇이 정답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어떤 특정한 관점에 의해 구속받지 않아야 합니다.

: 하지만 완전히 공평하지 않은 건 아닌가요? 그들의 반격은 아마도 당신이 지금 과학이라고 기술한 내용은 하나의 신화일 뿐이다 라는 것이 될 듯합니다. 과학이 정말 그렇게 포용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현실을 보면, 실제로 실험실에서 검증되지 않는 폭넓은 많은 이론적 아이디어들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하나의 구조나 패러다임 안에서 연구를 하고 그 패러다임 안에서 조각들을 맞추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 패러다임 자체를 별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 패러다임의 영향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기도 하지요.

지적설계론자들은 자연적 진화라는 패러다임 안에서 연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거죠. “글쎄, 우리도 비슷한 연구를 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려하는 모든 것이 자연주의적 패러다임에 들어맞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을겁니다. 우리는 그 패러다임 밖으로 나가서 뭔가 다른 것이 있는지를 찾아 볼 겁니다”

때로는 패러다임이 오도한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줍니다. 가령, 천체에는 변화가 있을 수없다는 패러다임은 수세기 동안 새로운 별에 대한 데이타를 간과하게 했습니다. 당신같은 사람들이 자연에서 설계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가능성을 배제하는 패러다임 아래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설계론자들은 말합니다.

: 맞아요, 우리는 패러다임을 사용해서 연구하고 체계화합니다. 그러나 우리 연구목적 중의 하나는 이런 패러다임들을 뒤집어 엎는 것입니다. 만일 실험자가 연구를 하고나서 ‘이봐, 잠깐만. 여기 이 데이타들은 진화가 틀렸다고, 뭔가 설명하지 못한다고 제시하고 있어”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흥미진진한 연구의 단초가 될 것입니다. 그런 아이디어는 간과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배적인 패러다임과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죠.

: 미국사회에서 일어나는 반진화주의의 지속성에 대해 논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아리스토텔레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개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고로 부터 얻는 지식과 경험으로부터 얻는 지식에 대해 논했지요. 그는 또한 다른 종류의 지식에 대해 주목했는데 그것은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모두는 사회그룹에 속해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주장을 합니다. 저는 진화를 믿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처럼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얘기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유전자 연구를 해본 적도 없고 화석을 발굴해 본적도 업습니다. 그런 칼 기버슨이라는 사람이 진화에 대해 실제로 무엇을 알겠습니까?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이 진화가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내가 덜 신뢰하는 사람들이 진화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과학사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복잡한 사회적 권위의 망을 헤집어서 어떤 주장은 받아들이고 어떤 주장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지를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자격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서류상으로 보면 훌륭한 창조론자들과 지적설계론자들의 자격은 당신이나 나의 자격과 비슷합니다. 당신과 마이클 베히 (다윈의 블랙박스 라는 책의 저자로 대표적 지적설계론자중의 하나: 역주)를 비교해 봅시다. 둘다 박사학위가 있습니다. 둘다 연구도 했고 논문도 출판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콜린스 위에 베히를 놓고 이렇게 말한다고 해봅시다.  "이 사람의 주장은 듣기좋아. 그런데 저 사람의 주장은 별로 맘에 들지 않아. 그런데 베히말고 콜린스의 주장을 들으라고? 글쎄, 내가 왜 그래야만하지?"

콜: 글쎄요, 그것은 우리 문화가 드러내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특히 미국사회가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구의 나이라든가 진화가 사실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과학 데이터가 제시하는 내용과 많은 사람들이 믿는 내용 사이에 차이가 나는 이유입니다.

데이타에 의해 결정되는 내용에 대해서 무엇이 옳으며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가 무엇인지를 알고싶다면 그 질문에 답하며 평생을 보낸 전문가들에게 찾아가서 "그 문제에 대해 합의된 견해가 있습니까"라고 물을 겁니다. "지구의 나이는 얼마입니까?"라고 묻는다고 합시다. 누가 그런 연구를 합니까? 바로 지질학자와 우주론자들입니다. 그리고 방사선연대측정을 하는사람들입니다. 화석을 다루는 사람들 등등입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묻습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문제입니까?" 당신은 그 문제는 해결되었다는 대답을 듣게 될 것입니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5천만 년입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식으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우리사회는 양분화되어 있어요. 많은 경우에, 과학을 가이드하는 물질주의자들의 관점을 물질 세계 이외의 모든 것을 배제하는 지배적인 세계관으로 가정하기 때문이지요. 우리 교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심을 갖고 있습니다.

과학적 합의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반응은 사실들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과학의 주장 뒤에 깔려있다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무신론적 세계관에 대한 것이지요. 그들은 그 무신론적 세계관에 대해 염려하고 두려워 하기 때문에, 숨겨져 있다고 믿는 그 유물론적 관점에 의해 채색되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거부할 자세가 되어 있는 거지요. 그래서 그들은 귄위있는 다른 소스를 찾는 것입니다. 가령, 지구의 나이가 몇천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성경문자주의자들 말입니다. 

칼: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이 당신의 주장을 받아들을 정도로 당신의 자질에 인상을 받던가요? 당신의 강연 뒤에 사람들이 창조론입문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강연 중에 창조론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은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콜: 강연 한번 듣고 나서 "그래요, 당신이 옳아요. 내가 지난 18년 동안 배운 모든 것이 틀렸소" 라고 말하는 걸 저도 원치 않습니다. "오, 이 사람은 바로 진화론자들 중 하나이구나. 그들에 대해 경고를 받은 적이 있지. 이제부터는 듣지 않겠어."라고 하면서 귀를 막아버리기 보다는 이 주제를 놓고 씨름하려는 사람들을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젊은이들을 끔직한 지경에 몰아넣고 있어요. 보수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면서 진화는 사실이 아니라고 배운 많은 젊은이들이 매주 저에게 이메일을 보냅니다. 그들은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인간의 기원에 대해 거짓말을 한 교회가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지를 알아내려고 그들은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진리의 하나님을 그런 고상한 거짓말로 섬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의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그런 일에 휩쓸려 왔습니다.

칼: 근본주의 교회들에서 강연했을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던가요?

: 사람들이 일어나서 나가버리기도 했죠. 꽤나 불쾌해 진것이 확실한 사람들이 마이크 앞으로 나와서 마치 내가 악마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암시하기도 했죠. 또한 무신론 과학자들 커뮤니티로부터도 별로 기분좋지 않은 이메일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심술궂은 반응은 신자들로부터 옵니다. 기독교신자라는 사람이 진화과정에 대해 그런 주장을 한다는 사실에 격분된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저는 확실히 양의 탈을 쓴 늑대이고 악마와 결탁한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몇번 파문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카톨릭신자도 아닌데 말이에요.

 

칼: 신학자 친구 중의 하나가 이 문제에 대해 고뇌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손에 성경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거야." 우리가 교회 교육을 보다 심각하게 다룰 필요가 있는것 같습니다. 신도들은 성경을 스스로 읽도록 격려받습니다. 그러나 그러다보면 모종의 오해가 따를수 밖에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창세기를 읽으면서 아담과 하와를 실제로 인류종족의 생물학적 부모로 생각합니다.

당신의 어린시절 얘기가 담긴 책, 하나님의 언어를 최근에 다시 읽었어요. 그 중 몇몇 이야기들은 당신의 성품에 어떤 특징을 불어넣기 위해 그저 만들어낸 이야기일뿐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읽고 실제로 그런일이 있었다고 믿었지요.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 자연스런 방식입니다.

콜: 우리모두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저는 신자들의 제사장됨을 믿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 성경적이지요. 분명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는 것 이상의 책임이 따릅니다.

호기심 많은 신자들은 더 깊은 내용을 원할 겁니다. 그러나 더 깊은 탐구를 하려면 성경 속에서  찾는 일 이상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다른 책, 자연이라는 책을 통해서도 우리는 탐구해야 합니다. 이 두 책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때 둘 중 한 권을 믿을 수 없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개인적으로 또한 문화적으로 그리고 솔직히 크리스쳔으로서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칼: 그러나 그 수준의 세련됨을 확보하려면 교회교육에 엄청난 짐이 될텐테요. 복음주의 교회가 그런 사역을 감당할거라고  상상하기는 어렵군요.

콜: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그 짐을 젊은세대들에게 떠넘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무게에 점점 눌려서 결국 믿음을 잃게 되는 지점까지 이르게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많은 교회들이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창세기의 의미에 대해 가르치는 완전히 문자적인 내용을 고수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 주일학교와 홈스쿨 교과과정에서 그 점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들입니다.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교회가 노력해오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교회는 하나님의 자연의 책에 반대되는 관점에 공을 들여 온 것이지요. 이것은 불필요하고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현재의 과학적 세계관과 영적 세계관의 싸움은 하나님이 만들어내신 싸움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낸 싸움이라는 걸 깨닫게 될거라는 희망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화평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Posted by 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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