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혼잣말로 하는 여행

별아저씨의집 2013. 4. 14. 22:00

2층 객실 창밖에 정면으로 보이는 벚꽃은 반이상이 떨어졌다. 


올봄은 야릇하게 날이 추워 벚꽃의 절정은 이미 4월 첫주로 마감했단다.



주말이 되면서 날이 많이 포근해 졌다. 


가모가와 강에 흐르는 맑은 물이 새삼스럽다.


어릴적 어느 시골에서 물고기 잡고 놀던 냇물처럼 


잔잔히 햇빛을 반사하는 강을 보며 강둑을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가모가와 강을 살포시 넘는 산조도리 다리를 한껏 맵시를 낸 젊은이들이 걷고 있다. 


봄은 연인들의 계절이라지만 씩씩한 싱글들도 아름답다. 


강둑에는 강물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총총히 박혀 한가로운 봄날 오후를 그려내고 있다.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의 배경은 결코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자신의 편협한 기준으로 판단하고 경멸할 대상이 될뿐,


아, 그 불완전한 자신감의 충만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북쪽 쿠라마 지역에도 벚꽃은 이미 내리막이었다.


기브네 슈라인에는 마침 전통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기모노와 전통의상을 갖춘 신랑 신부가 커다란 일본 양산 아래 한걸음씩 천천히 행진을 한다.


점잖게 차려입은 가족들이 점잖게 그 뒤를 따라 건물안으로 입장한다. 


잠시 경내를 한바퀴 돈 사이,


닫힌 유리문 너머 슈라인의 몽크는 뭔가를 펼쳐들고 읽고 있고 


내객들은 고개를 조아려 절제있는 모습으로 기도를 한다. 



이스탄불에서 본 모스크건, 밀라노에서 본 성당이건,


시끌벅적한 한국의 교회당이건, 


언제 종교가 복받으려는 사람들에 기대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동행한 나가오 상은 그들이 전통의례를 한껏 즐기고 있는거라 했다. 



물의 신을 모신다는 기브네 슈라인 앞  냇물을 내다보며 


나베우동으로 요기를 했다. 


하이힐의 차려입은 여인들이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내린다. 



쿠라마 산사를 향해 짧은 산행을 했다. 


주말을 맞아서인지 쿠라마 경내는 마침 연주회와 무슬 시범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노인들로 구성된 합주단은 전통 음악일 듯한 곡조들을 흘려내고 있었고


본당 앞 돌마루에서는 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합기도 같은 무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절도..


하이, 짧게 끊어지는 일본인들의 대답처럼 그들의 몸에 벤 절도는 내게 잃어버린 기억을 불러왔다. 


그러고보면 어린시절에 배운 것들을 많이 잊고 잃어버렸다. 


싱가폴에서 자랐다는 누군가는, 싱가폴 사람들이 바나나라고 했다. 


겉은 동양인이지만 속은 백인이라고.


나도 바나나가 아닐까? 


흠.. 그러기엔 내 얼굴이 좀 검다. 하. 


  

멀리 앞산을 내다보며  자리잡은 조용한 경내엔 아직 남은 벚꽃나무들이 나들이 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차를 마시러 들어간 절 앞의 아담한 찻집에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대학 때 혼자 다녔던 여행 기억들이 떠오른다. 


찻집에서 조용히 혼자 풍경과 생각에 잠기던 기억들이...


창 밖 단아하고 깔끔한 산사의 모습이 피아노의 선율에 한가로이 흔들거린다. 


거기서 나는 젊은 시절 얘기를 한 듯 하다. 



산다는 것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


그것이 의미있든 의미없든 


시간은 장소와 사람 사이를 흘러가며 추억이란 이름으로 기억될 


인생을 그린다. 



쿠라마 야외온천에 몸을 담갔다. 


동네 목욕탕 크기밖에 안되는 작은 온천이었지만 


잣나무가 빽빽히 들어찬 앞산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물에 잠기는 것도 그럴듯 했다.


바람에 산이 춤을 춘다. 


발꿈치와 머리로 기댄 내 몸도 덩달아 흔들거린다. 


앞산이 말을 걸어오는 듯.



넓은 창으로 덮여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작은 기차를 타고 교토로 돌아오는 길엔 졸음이 쏟아졌다. 


앞자리에 앉은 4명의 중년 여인들은 자그마한 소리로 쉴새 없이 인생을 논한다. 


다가섬과 경계, 그 어디쯤, 그들이 얼마나 가까운지는 모르겠으나


주말, 함께 나들이 할 동네친구라도 함께함은 기쁨이 아니겠는가.


내 친구들로부터 나는 어디까지 멀리 간 것일까. 



작품집에 담긴 단편들을 다 읽었다. 


슬펐다. 


세상엔 왜 그리 어두운 이야기들이 많은 것일까?


그리고 그 짓눌린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무엇일까? 


한국사회는 왜 이리 변한 것일까? 


그리고 나는 그 사회에서 그 이야기들을 외면하며 


철저히 기득권을 지키는 공사다망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쏟아져 나온 도시의 청춘들이 붐비는 카와라마치 거리에 


90은 되어 보이는 키 작은 노인이 길가 손잡이를 잡으며 겨우겨우 한 걸음씩 옮기고 있다. 


말끔한 차림이지만 외로움이 묻어나는 그 노인의 걸음은 마치 장님이 한걸음 한걸음을 떼는 것 같았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내게 그 뒷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노인의 좁디좁은 어깨위로 부모님이 오버랩되는 건 나이들었다는 증거일까



낯선 도시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이방인의 눈으로 내 삶의 이방인이 되어본다. 


거기엔 잃어버린 천국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간절함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끝없는 물음이 담겨있다. 



그의 나라는 과연 이 땅에 무엇을 도래시킬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