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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사이언스플라자] 과학과 과학윤리

별아저씨의집 2012. 7. 26. 10:30

매일경제 사이언스플라자 2012년 7월 칼럼


과학과 과학윤리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교수



정의감에 불타던 대학원 시절, 중간고사 감독을 하다가 부정행위를 하는 두 학생의 답안지를 찢어버린 일이 있다. 지금은 학부모가 돼 있을 그들은 그때를 어떻게 회상하고 있을까? 뼈저린 교훈을 얻은 사건으로 기억할까 혹은 다들 하는 부정행위인데 자기들만 걸렸던 재수없던 사건으로 기억할까? 돌아보면 조금 심했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정행위들을 보면 오히려 그들에게 미안할 정도다.


총선이 끝난 지난 5월 학술단체협의회는 표절 의혹이 제기된 19대 국회의원들 학위ㆍ학술논문이 표절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중 두 사람 논문은 복사 수준인 표절이라고 한다. 지난주 인사청문회에서는 인권위원장 논문 7개가 표절이라는 의혹이 쏟아졌다. 과거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이 정도면 우리나라는 표절공화국 수준이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던 이명박 정부가 실세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도덕적으로 완벽히 무너진 정권이 돼 버렸으니 국민은 논문표절 정도는 하찮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도덕성과 정직함이 요구되는 학계에서 표절이나 조작과 같은 부정행위가 만연해 있다면 그것은 과학 발전과 국가 미래에도 치명적 약점이 된다.



과학은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 실패를 통해 밝혀진 오류와 실수는 과학 발전에 토양이 되지만 연구자 개인이 그 실패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논문 조작 유혹에 직면할 수 있다. 수많은 연구비와 노력을 들인 연구에 대한 책임감과 훌륭한 결과가 가져다 줄 명예를 생각하면 그 유혹의 무게도 짐작할 만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실과 사기를 구별하는 것이 어렵듯이 과학에서도 사실과 사기의 경계는 종종 모호하다. 실험이나 관측에는 항상 오차가 존재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모종의 불확실성도 내포돼 있다. 어떤 결론을 입증할 과학적 증거라는 것이 수학의 증명처럼 명백하지 않을 때가 다반사고 경험적인 자료들을 종합해서 일종의 해석을 내려야 하는 사례가 즐비하다.


그래서 과학에도 명백한 사기가 존재한다. 가짜 자료를 만들어 원하는 결론을 만들어 내거나, 의도적으로 자료를 취사선택해 원하는 해석을 유도하는 일도 일어난다. 20세기 과학 사기극으로 꼽히는 필트다운 화석은 유인원과 인간을 연결하는 진화의 중간고리로 여겨졌지만 결국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고 과학을 불신할 필요는 없다. 과학은 비교적 자기정화 과정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연구팀이 동일한 결과를 내고 후속 연구에서 통일된 결론이 나오는 등 긴 검증 과정을 거쳐야만 과학계는 그 결과를 수용한다. 그 과정에서 과학 사기는 밝혀지게 마련이다.


후속 연구를 통해 새로운 자료가 나오면서 기존 결론이 뒤집히는 일이 과학계에서는 일상이다. 작년 9월에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입자가 발견됐다는 뉴스가 과학계에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1년이 채 안 된 지난 6월 결과를 발표했던 연구팀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실험에 측정 오류가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결과를 철회했다.


오류와 실수를 찾는 과학 발전 과정에는 엄격한 연구윤리가 요구된다. 의도적인 과학 사기는 결국 밝혀지겠지만 커다란 사회비용을 치러야 한다. 부와 명예가 연구 목적이 되다 보면 과학자들은 논문 조작 같은 유혹에 부딪힌다. 그러나 과학자의 도덕성은 그 사회의 도덕성과 궤를 같이하게 마련이다. 학생 시절부터 익숙한 부정행위나 정부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양방향의 인과관계가 아닐까. 


과학의 토대가 되는 도덕성과 연구윤리는 부정행위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결코 세워질 수 없다. 국가과학 미래를 볼 때 노벨상보다 더 급한 것은 우리 사회의 도덕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