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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사이언스플라자] 미래는 과학을 겸손하게 한다

별아저씨의집 2012. 6. 27. 12:37

매일경제 사이언스플라자 6월 27일자 칼럼


미래는 과학을 겸손하게 한다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우리는 17세기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기억한다. 이단재판에까지 회부되었던 지동설이 당대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이유는 종교적 이유뿐만 아니라 과학적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태양이 아침에 동쪽으로 떠서 저녁에 서쪽으로 지는 것을 매일매일 목격하는 사람들에게 사실은 태양이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일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케플러는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운동을 면밀히 밝혀냈으며 그 결과는 지금도 케플러의 법칙으로 불린다. 밤 하늘 행성들의 움직임을 관측한 방대한 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상적 경험에 위배되는 것 같은 지동설이었지만 결국 정설로 자리잡았다. 지동설을 부정했던 17세기의 역사를 보며 우리는 그 시대의 과학수준이 형편없다고 여기기 쉽다. 우주의 변방에 지나지 않는 태양계를 넘어 137억광년이나 되는 우주 시공간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배운 우리는 17세기 사람들의 무식함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수준에 이른 21세기 과학은 물론 자랑할 만하다. 우리는 빅뱅우주론과 진화론을 논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을 최소화했으며 달기지 건설을 비롯한 우주개발 논의도 한창이다. 생명과학의 발전은 생명의 신비를 하나하나 풀어내고 있고 줄기세포를 비롯한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수많은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다. 우주와 생명과 인간의 기원이 과학을 통해 죄다 밝혀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만 미래를 내다보자. 몇 백년 후의 과학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400년 후 후손들은 21세기의 과학을 어떻게 평가할까? 상상을 초월할 만큼 더 과학이 발달했을 그 미래의 역사책에 21세기의 과학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지동설을 부정했던 사람들을 우리가 비웃듯 그들도 우리를 무식한 야만인으로 보지는 않을까? 

과학이 위대한 것은 가변성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발견은 과학의 원동력이 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새로운 데이터와 새로운 이론은 과학을 변화시킨다. 바로 그 가변성 때문에 과학은 보다 실재에 가깝게 다듬어지고 완성되어 간다. 그러나 과학이 실재를 완벽하게 구현해 내려면 무한한 세월이 걸릴지도 모른다. 이성과 과학의 힘에 한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논쟁의 대상이 되겠지만, 분명한 점은 오늘의 과학을 완성품으로 여기는 것은 오산이라는 것이다. 20세기 초 별의 죽음을 연구하던 독일의 슈바르츠 쉴드는 밀도가 무한대가 되는 블랙홀이 존재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우주의 괴물 같은 블랙홀이 존재하도록 자연이 허락했을 리가 없다는 믿음을 가졌던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블랙홀을 거부했다. 블랙홀이 우주의 주요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져 그 연구가 일상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역사상 블랙홀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한 존 미셀의 연구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블랙홀이 받아들여지기까지 3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과학자들은 가끔 오만에 빠지기도 한다. 마치 오늘의 과학이 영원한 과학일 것으로 착각할 때도 있다. 때로는 과학의 가변성을 잘 알고 있는 과학자보다 일반 대중이 더 열렬히 과학을 우상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수많은 과학의 내용들 중에는 천동설처럼 폐기될 내용도 분명 존재한다. 긴 세월 동안 거부되었던 블랙홀처럼 수면 밑에 감춰진 수많은 보물들도 또한 미래에 과학 안에 담겨질 것이다. 몇 백년 후의 후손들이 갖게 될 과학지식을 생각하면 우리는 오늘의 과학지식에 우상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는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배우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며 미래는 과학을 겸손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