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글] 복음과상황 98년 9월호 시리즈 3. 과학과 신앙 - 우종학

별아저씨의집 1998. 9. 1. 14:57

 지난 두편의 글에서 필자는  빅뱅우주론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그것이 가지는 기독교 신앙적 함의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번호에서는 그러나 우주론과 기독교신앙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는 입장이 갖는 문제점들에 대해 살펴보고 전체글의 결론을 내리려한다.

 빅뱅우주론과 기독교신앙의 직접적 연결의 문제점 과학과 신앙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는 견해는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여 자연을 통해서 신을 알수 있다는 자연신학적 접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성을 과신하는 경향을 가진다. 또한 자연과학의 전제라고 할수 있는 합리성(rationality)과 명료성(intellegibility)에 대한 믿음을 지나치게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과학을 통해서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알아낼 수 있고 그 정보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는 낭만적인 과학관은 20세기 현대물리학의 도움으로 폐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대상으로 이성을 도구로 사용하는 과학을 통해서 사물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있다는 믿음은 그 전제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지 않은 채 또 하나의 우상적 모습으로 현대사회 안에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현재의 우주론 모델로는 빅뱅이론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과학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서 다른 모델이 빅뱅모델을 대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한다. 예를 들어서 빅뱅우주론을 대체할 새로운 우주론이 등장하여 학계의 정설로 정착된다면 그리고 그 우주론이 시간의 시작이라는 것을 배제하고 우주가 영원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이론이라면 어찌될 것인가? 만일 그렇게 된다면 시간의 시작이라는 것이 신의 존재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던 많은 기독과학자, 철학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된다. 기독교 신앙을 입증하는 과학적 이론들이 무너질 때 많은 무신론 과학자들은 그런 이론을 주장했던 과학자들을 비웃을 뿐만 아니라 그 신앙 자체를 비웃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한다. 이러한 비웃음은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던 현상들을 신의 영역(God in the gap)으로 설명했다가 나중에 그 현상들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을때 익히 터져왔던 비웃음들이다. 


과학적 패러다임이 변한다는 것은 토마스 쿤 이후에 널리 인식되어왔다. 과학적 지식의 절대성과 관련하여서 과학에 대한 상대주의의 도전은 현재 거대한 이슈로 떠올라 있다. 필자는 여기서 과학적 지식이 상대적 진리인가에 대해 논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상대적 지식이라는 시각에서건 절대적 진리라는 시각에서건 현존하는 이론들이 새로운 이론으로 바뀌어가는 구조만큼은 분명하며 그런 의미에서 현존하는 우주론의 불완전성을 말해주기에는 충분하다.

두번째로, 우리는 우주론이 기독교신앙과 잘 맞는 부분 뿐만아니라 그렇지 않은 부분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그러나 우주론을 통해 과학과 신앙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는 사람들은 이런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우주론은 우주의 시작뿐만아니라 우주의 미래를 다루는 연구이기도 하다. 우주가 시작한다는 점에서 빅뱅우주론은 기독교 신앙과 연결될 수 있는 장점을 갖지만 우주의 먼 미래에 대해서는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현재의 빅뱅 우주론에서는 시공간의 기하학적 모형에 따라 우주의 미래가 세가지로 나누어지며 이를 크게 두 가지로 보면 닫힌 우주와 열린 우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닫힌 우주의 경우에는 우주가 종말을 맞이하게 되지만 열린 우주의 경우는 우주의 미래가 끝없이 계속된다. 물론 아직 열린 우주모형과 닫힌 우주모형중에 어느 것이 맞는지는 더 기다려봐야한다. 빅뱅우주론의 열린 우주모형이 무한한 크기의 우주와 무한한 미래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기독교 종말론에 미칠 지대한 영향을 생각해 본다면 우주론과 기독신앙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에 대해 조심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우주모델에서 예측하는 우주의 먼미래와 기독교 종말론을 연결하는 것도 또 하나의 커다란 과제인 셈이다. 


존 러셀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우주론을 받아들이려면 단지 잘 맞는 부분만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수용해야 한다" 그의 입장은 지난 3월호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학과 과학을 직접적으로 연결하기 보다는 그 둘사이에 간접적인 다리를 놓아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빅뱅우주론의 시간이 0이라는 개념이 신이 존재의 원천이며 그 사실만으로도 신의 개념에 대한 필수적이고 충분한 설명이 제공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창조교리의 정체를 완전히 밝힌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주가 우발적 (contingent)이라는 철학적 주장과 신이 창조주라는 신학적 주장에 다리를 놓을 수 있으며 우발성에서 시작하여 우발성의 특정한 형태로서의 과학적 범주인 유한성, 특히 시간의 유한성에까지 다리를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주의 나이가 시작점을 갖는다는 빅뱅이론이 창조교리에 대한 직접적 증거는 아닐지라도 그 교리를 확인하는 증거로 사용될수 있다고 본다.

세번째로 생각할 것은 인류법칙(antropic principle)을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인류법칙이란 것은 우주가 현재 모습을 갖게되기까지 매우 특정한 조건들이 필요하였으며 이는 현재의 인류가 존재할 수 있기 위함이라는 것이고 이를 기독교적으로 보았을 때는 창조주의 설계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법칙 자체가 코페르니쿠스 법칙과는 상반되는 개념이라는 것에서 먼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인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왔고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이후에 태양이 중심이며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을 뿐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후 우리은하 내에서도 태양과 지구의 위치가 은하중심에 있는것이 아니라 중심에서는 매우 먼 변두리에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우리은하 자체도 은하단을 구성하는 많은 은하들중에서 한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뿐만아니라 허블망원경이 올라간 이후(물론 그전부터) 우주가 얼마나 넓은가가 점점 더 알려지기 시작했고 인류의 물리적인 우주의 중심성은 영원히 상실되었다. 


그런데 인류법칙은 물리적인 우주가 인류의 탄생을 위해서 진화되어 온것이라고 설명하는 셈이니 다시 인류를 우주의 중심에 놓는 것이며 이는 코페르니쿠스 법칙에 위배되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코페르니쿠스 법칙이 시공간적의미에서만 우주 중심성의 탈피를 의미한다고 할 수도 있다. 또한 구속사적 의미에서 본다면 전 우주가 인류를 위해서 역사해왔다고 보는 것이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물리적인 의미에서는, 우주가 현재 모습을 갖게되기에 필요한 특정한 조건들이 단지 인류의 탄생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또 하나의 틈새의 신 God of the gap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글을 맺으며

우리가 읽는 성경과 자연이라는 두 책의 내용이 서로 모순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우리가 두 책에서 정보를 얻는 방법은 매우 유사하다. 성경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정보를 얻을 때는 신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자연이라는 책에서 정보를 얻을때는 과학을 사용한다.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던 성경이라는 책과 자연이라는 책이 모순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던 예들은, 사실 두 책 사이의 모순이 아니라 두 책을 읽는 방식인 신학과 과학사이의 모순이었다. 하나님의 일반계시로서의 자연과 특별계시로서의 성경은 둘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현현하는 계시이며 그 둘은 결코 모순될 수 없다. 


문제는 자연의 사실들을 해석하는 방식인 과학과 성경의 말씀을 해석하는 방식인 신학에 있다. 과학과 신학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으며 그러한 변화에는 한쪽의 패러다임이 바뀜을 통해서 다른 한쪽의 패러다임이 바뀌기도 하였고 동시에 두 개의 패러다임이 바뀌기도 하였다. 그리고 물론 앞으로도 계속 바뀌어 갈것이다. "과학이 신학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자연의 사실들(facts)과 성경의 말씀들(words) 중에 어느 하나도 거부할 이유를 전혀 갖지 않는다. 그보다 우리는 사실들과 말씀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점검해봐야할 필요를 갖는다. 그 이유는 건전한 과학과 건전한 성경해석은 항상조화롭기 때문이다.(Hugh Ross)" 


성경과 자연, 두 책이 결코 모순을 일으키지도 않지만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은 교황 바울 2세의 글에 잘 나타나있다. "과학은 오류와 미신으로부터 종교를 정화할수 있으며 종교는 맹목적 숭배와 잘못된 절대성으로부터 과학을 정화시킬수 있다. 과학과 종교는 각각 서로가 더 번영할수 있는 더 넓은 세계로 서로를 끌어당길수 있다.

우리에게는 두가지 책이 주어져있다. 우리는 결코 어느 한 책도 포기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두 책을 분리시켜서 보는 권리도 부여받지 않았다. 우리는 두 책을 조화롭게 그리고 동시에 보아야하며 그래야만 두 책을 모두 제대로 읽는 셈이된다. 광활한 우주의 아름다움은 그 하나하나가 그것을 존재케 하신 분의 위대함을 드러낸다. 그 아름다움은 'how'라는 차원에서 우주를 더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확연하게 드러나며 그것이 그가 하신 방식이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주가 어떻게 기원하였는가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앞에서 논의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감탄을 자아내는 수많은 그림들이 거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림들로 그분을 증명해 내거나 속박하기 보다는 그분의 다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드러낸 작은 그림들로서 그것들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