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과학이라고?
우종학
코페르니쿠스의 고민
카톨릭 사제들과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코페르니쿠스는 책상 한쪽 구석에 팽개쳐놓은 과학교과서를 다시 집어들었다. 이제는 헤질대로 헤진 그 페이지를 다시 펼치자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달, 그리고 행성들이 공전하는 익숙한 그림이 나타났다. 바로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는 '천동설'의 그림이었다. 이제까지 그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 그림은 틀린 것이었다. 지구를 중심에 놓고서는 도저히 태양과 행성들의 운동을 제대로 설명할수가 없었으며, 오히려 지구가 태양주위를 공전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너무도 자명했다. 그러나 자신이 회원으로 있는 카톨릭 교단에서는 성경에 기초해서 지구가 절대 움직일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지동설이 맞다면 성경이 틀린것일까? 아니야 성경이 틀릴리가 없지. 지구가 움직일수 없다는 그 성경해석이 틀린거야. 하지만 지구가 태양을 돌고있다고 말하면 그들은 내가 성경이 틀렸다고 주장한다고 생각할거야" 실제로 코페르니쿠스가 이렇게 고민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그의 고민이 너무나 쉽게 그려진다. 어릴때부터 밤하늘을 사랑했고 과학잡지에 난 우주에 관련된 기사는 무조건 모으곤 했던 나에게도 '코페르니쿠스의 고민'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배우는 성경의 지식과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의 지식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때마다 나는 내 믿음이 부족하거나 과학이 틀렸다고 생각했었다. 어린 마음에 그런 고민을 끄집어 내놓을 용기도 없었겠지만 과연 그런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답을 얘기해 줄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이런 경험이 나만의 것일까? 아니,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면서 이런 경험을 하였으리라. 우리의 신앙에 커다란 부담을 줄 위험성?갖는 이런 경험의 부분적 원인은 한국기독교계의 과학에 대한 반지성적 태도와 무관심에 있다고도 볼수 있다.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며 오히려 반지성적인 경향을 갖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러한 토대위에서 가르쳐지는 신앙을 배우는 사람들이 어찌 성경과 과학이 충돌하는듯 보이는 모순을 겪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기독교과학자들에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크 놀(Mark A. Noll)이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복음주의권 과학자들을 비판한것과 같이 20세기의 기독과학자들은 자신의 학문의 영역을 신학이나 다른 사상의 영역과 연관해서 연구하려는 자세보다는 자신의 학문의 영역을 분리시키는 이원론적인 자세를 취하눼? 그들은 성경과 과학이 모순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논쟁들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교회에서 무시당할때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찾아갈수 있는 '기독교과학자'가 없는 실정인게다. 그렇게 자란 학생들이 어른이 되면 교계 전체가 비지성적 혹은 반지성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이같은 현실은 나에게도 앞으로 풀어나가야할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나는 세번에 걸친 글을 통해서 현대우주론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빅뱅우주론과 우리가 가진 기독교신앙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나름대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성경과 과학에 대한 우리의 안경을 점검해야 하는일이 우선이다.
기독교와 과학을 동시에?
"과학과 성경의 관계는 무엇인가? 자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얻은 지식은 성경을 공부하여 얻은 지식과 양립할수 있는가? 지성적인 활동과 신앙은 서로를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는가? 혹은 서로 모순되는 것인가? 아니면 아무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것인가? 과연 초자연적인 존재(the supernatural)가 실재하는가? 그렇다면 자연(the natural)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어떻게 기독교의 하나님이 이러한 논의에 포함될수 있을까? 인간은 누구인가? 훌륭한 과학자이면서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 이러한 질문들은 과거에서 현재까지,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인이건 인류가 던져온 흥미있는 질문들이며 오랬동안 논란과 견해차이를 담아온 문제들이다.
1. 기독교와 과학은 독립
나는 여기서 이러한 문제들에 접근하기 위한 토대로서 '기독교와 과학' 혹은 '성경과 자연'에 대한 3가지 입장을 살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입장은 과학과 기독교를 두 개의 독립된 영역으로 나누는 분리주의적 입장이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로서의 성경과 일반계시로서의 자연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할수 있게하는 두가지 책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오랜 전통이다. 그러나 현대의 복음주의 기독교계는 이러한 전통에 남아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면을 가지고 있다. 그이유는 이성으로 설명할수 없는 성경의 많은 것들을 버렸던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오히려 근본주의로 치우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일반계시로서의 자연이라는 책을 버린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편으로는, 고대 헬라의 자연철학자들이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목적론적, 우주론적 논증들을 시도했던 것과는 달리 자연과학이 세분화되고 심화된 오늘날에는 과학자들이 'why'라는 문제에 답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과학은 사실을, 종교는 가치를 다룬다'는 분리주의적 입장으로 퇴보하여 'how'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과학자사회는 성경이라는 책을 버린 셈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기독교와 과학의 분리, 나아가서는 성경과 과학이 모순되는듯 보이는 것들을 방치하여 신앙과 과학이 대립되는 구도를 갖게하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왔다. 그결과, 오늘날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신앙과 과학(혹은 학문)이 분리된 이원론적 오류속에서 표류하게 되었다.
2. 기독교와 과학의 직접적 연결
2.1 성경으로부터 과학을: 창조과학과 코페르니쿠스의 실수 두 번째의 입장은 기독교와 과학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또다시 두가지로 나누어 볼수가 있는데 그 하나는 성경이라는 특별계시를 통해서 자연을 이해하려는 입장으로 창조과학을 꼽을수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해보면 지구의 나이가 만년정도가 되기 때문에 지질학이나 생물학의 연구에서 이러한 전제가 들어가야한다는 것이다. 즉, 성경의 해석을 통한 지식이 자연과학 연구의 제약조건(constraint)이 된다. 그러나 이 입장은 지동설이 갈릴레이 시대의 교계의 성경해석(지구가 움직일수 없다는)과 위배되기 때문에 받아들일수 없다던 입장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있다. 그것은 진화론 자체가 과학적으로 또한 신학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과학사를 보면, 성경에 나오는 자연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을 과학의 전제로 굅??있었던 많은 기독과학자들이 그 전제 때문에 오히려 과학적 사실에 이르는데 방해를 받았다. 이러한 예가 코페르니쿠스에게서 나타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중심에 있고 지구가 그 주위를 공전한다는 지동설을 제안했지만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이 태양주위를 돌때 정확한 원궤도를 따라 공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천동설에서 필요했던만큼의 복잡한 설명을 도입해야만 했고 천동설보다 정확도도 떨어질수 밖에 없었다. (원궤도가 아니라 타원궤도에 의해 행성들이 공전한다는 것은 이후 케플러에 의해 밝혀진다.) 원궤도에 대한 그의 믿음은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당시 성경을 해석하던 톨레미적 우주관에 있었다. 비록 그가 지구는 움직일수 없다는 톨레미적 우주관의 하나의 틀을 깨트리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그 틀 안에 남아 있었다..
2.2 자연으로부터 기독교를
기독교와 과학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는 입장중에 두번째는 하나님의 두 번째 책, 즉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어가려는 입장으로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의 입장과 비슷한 경향을 갖는다. 이러한 입장은 특히 현대 우주론을 통해 신의 존재가 증명될수 있다는 입장을 예로 들수 있으며 최근의 지적설계운동도 이런 맥락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과신하며 과학적 물질주의(scientific materialism)에 빠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과학을 통해서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드러난다고 해도 이것을 기독교의 인격적인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과학이 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창구가 되겠지만 과학이 신을 증명해 낼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티븐 호킹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그는 과학이 발전하여 우리가 모든 물리법칙을 완벽하게 알아낸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이해할수 있을 것이며 결국 신의 마음 (the mind of God)을 알게 될 것이라는 대단한 희망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신의 존재를 우리의 이성과 우주의 시공간안에 속박하는 것이며, 물리법칙에 따라 한번 세상을 만들어 놓은 이후에는 아무것도 간섭할수 없는 무력한 신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티븐 호킹은 이신론(deism)적인 관점을 갖는다고 할수 있다.)
3. 기독교와 과학의 간접적 연결
세 번째 입장은 기독교와 과학을 통합적으로 봐야하지만 기독교와 과학의 직접적인 연결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며 대신 기독교와 과학을 간접적으로 연결시키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기독교와 과학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는 입장보다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작으며 간접적인 연결이라는 점에서도 다양한 형태를 띄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입장의 예로 미국의 신학-자연과학센타의 로버트 러셀(Robert John Russell)을 들수 있다. 그는 "나는 당대의 과학과 성경적 신앙을 연결하려는 이 학자들의 시도를 존경한다. 그러나 이러한 직접적 연결은 과학자사회와 신학자사회의 방법과 언어 사이에 놓여있는 깊은 장벽들을 간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과 인문과학으로부터 내려진 결론들이 과연 신학적 질문에 답하는 혹은 반증하는 직접적 증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라고 언급한다. 요약해보면, 이 세번째 입장은 종교와 과학을 분리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임이지만, 과학적 결론은 다양할 수 있으며 그것이 신앙과 연결되는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증거(eyewitness)가 아니라 간접적인 증거(character witness)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입장이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대표적 견해들이다. 분명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계시와 자연계시 두가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두가지를 분리해서 신앙 따로,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식 따로인 이원론적 경향을 극복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 둘을 통합해서 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두 책을 어떻게 보아야할것인가에 대해서는 마지막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다음호의 글에서는 현대우주론이 기독교신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통합적인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