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
과학지식의 절대권력이라?
가끔씩 TV를 보다보면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를 듣는 장면이다. 어떤 현상을 분석하거나 그 원인을 따져보는 데에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그 방면의 전문가가 나와서 의견을 제시하는 장면이 포함되고 그 전문가의 말에 모종의 절대성이 부여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디어디의 의학박사가 나와서 한마디 점잖게 하거나 무슨무슨 박사가 나와서 이래저래 설명하는 내용들을 방청자들이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받아들이는 장면을 상상해 보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 '방면'이란 것이 과학일때 설명하는 과학자의 분석과 결론에 실리는 '대중적 믿음'의 정도는 한층 강해진다. 이것은 과학적 지식이 일반인의 삶과 얼마나 분리되어 있는지를 말해주며 또한 지식의 권력성과 지식을 선택하여 원하는 지식에 권력을 부여하는 언론의 힘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나도 과학이라는 우상을 경배하고 그 우상의 절대성을 설파해야할 제사장적 역할을 해야할 것 같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것에, 과학적 지식이라는 것에 절대성을 부여할 수 없음을 나는 먼저 말하고 싶다. 이것이 신앙의 눈으로 과학을 보는 우리의 첫 단추가 되어야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과학에 절대권력을 부여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반대로 과학을 쓰레기로 여기는 어떤 기독교인들의 비지성적 태도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과학은 절대권력을 가진 또 하나의 우상이 되어서도, 아무 가치가 없는 쓰레기가 되어서도 안된다. 과학은 천지의 창조주께서 그 창조물들을 그분을 대신해서 다스리며 그 창조물들을 통해 창조주를 더 알게 하기 위해 주신 귀한 도구이다. 양쪽의 극단적인 어리석음을 피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독교인 전문가, 즉 기독교적 관점으로 과학적 지식(혹은 기타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해석할 수 있는, 그리고 물론 세상사람들의 '대중적 믿음'도 부여 받을 수 있는 그런 전문가들이다. 나는 목회자 뿐만 아니라 각 방면의 기독교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 한국교계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절대적 믿음을 부여할 우상도, 그렇다고 결코 쓰레기일수도 없는 현대 우주론에 대해서 지난 호에서 다룬 통합적 관점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빅뱅우주론은 말이지..
우주가 초기에 한 점이었고 대폭발을 통해 팽창해 왔다는 설명을 '빅뱅우주론(the Big Bang)' 혹은 '대폭발우주론'이라고 부른다. 이 이론은 시간이 0이라는 시점에 우주가 대폭발 을 통해 팽창을 시작하였고 계속된 팽창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는 하나의 모델이 다. 정상우주론(the steady state universe)의 내용이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하다는 것에 반해서 빅뱅우주론은 시간이 탄생한다는 점과 시간과 공간과 물질과 에너지가 시간이 0이라는 시작점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인과론(cause and effect)에 따라 대폭발을 일으키게 한 원인이 있어야한다는 점에서 매우 다른 철학적,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론의 계산결과, 아인쉬타인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즉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는 초기에 한 점이었고 폭발을 통해 팽창해 왔다는 이론적 결과를 얻은 셈이다. 그후 1968년에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몇몇 과학자들은 우주에는 시간과 공간의 시작점인 특이점(singular point)이 존재한다는 특이점 정리(singularity theorem)를 발표했다. (특이점이란 것은 모든 물리법칙이 성립되지 않으며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의미한다.) 이후 빅뱅우주론은 1992년, NASA에서 발사한 COBE(Cosmic Background Explorer)위성의 우주배경복사의 관측결과로 강력한 관측적 증거를 얻게되어 그 위력을 떨치게 되었다. 1983년에 구스(Allen Guth)는 인플레이션 빅뱅 모 델(inflation big bang model)을 발표하였으며 이 모델은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우주론 모델이다. 이제, 빅뱅우주론을 통해서 우주의 시작 즉, 특이점이 있다는 사실은 학계 내에서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인쉬타인의 실수?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탄생이라는 의미심장한 기술에 대한 과학자들의 입장은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특히, 특이점의 도입이 우주의 4차원 시공간을 초월하는 어떤 다른 원인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다시 말하면, 자연을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존재(supernatural being)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에서 많은 과학자들(특히 무신론자들)은 특이점의 도입을 피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빅뱅우주론에 반대하며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의 호일(Fred Hoyle) 같은 정상우주론자들의 노력이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반상대론을 발표한 아인쉬타인도 특이점의 문제를 피하기 위해 팽창하는 힘을 상쇄시킬 우주상수를 도입하였으며,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 허블의 관측을 통해서 증명되자 우주상수의 도입을 자신 의 최대의 실수라고 고백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는 인격적인 신을 인정하지는 않았지 만 우주의 '시작의 필요성'(the necessity of a beginning)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탁월한 천문학자인 버비지(Jeffrey Burbidge)는 1992년에 수행된 COBE위성의 우주배경복사 관측을 '빅뱅그리스도교의 초대교회'에서 나온 실험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자신이 정상우주론을 선호하며 정상우주론이 끝없는 사이클이 반복되는 흰두교의 윤회적 세계관을 뒷받침한다고 언급했다. 스티븐 호킹도 이후의 연구를 통해 특이점 문제를 피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는 우주에 양 자역학적 모델을 적용시켜 특이점을 필요하지 않는 모델을 수학적으로 구상하였다.
그러나 주류 우주론자들은 수정된 빅뱅이론인 인플레이션 모델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창조의 순간은 모든 물리 법칙의 한계를 넘어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있 다.
빅뱅우주론의 기독교 신앙적 논의
빅뱅우주론은 과학자뿐 아니라 철학자와 신학자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우주의 기 원이 물리법칙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과학과 기독교신앙을 직접적으로 연결 하려는 입장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지지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직접적인 연결 에 우려를 표명하는 견해들도 주의를 끌고 있다..
우선 빅뱅우주론이 초월적 존재를 암시하고 우주의 설계자(designer)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 는 직접적인 증거라고 보는 과학자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는 우주론적 논 의(cosmological argument)를 통해서 기독교 교리인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n ex nihilo)의 증거를 빅뱅모델에서 찾고 있다. 시간이 0이라는 점에서 모든 시간과 공간과 물질과 에너지 가 탄생되었다면 이것은 결국 무에서부터 우주가 탄생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크레이 (William Craig)는 "만일 신의 존재도 시간도 공간도 없는 완전한 무의 상태였더라면 어떻게 우주가 존재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인가" 라는 관점에서 우주의 탄생의 원인이 있으며 거기서 더 나아간 철학적 논의를 통해서 그 원 인(cause)이 인격적인 신일 수 밖에 없음을 보이고 있다.
천문학자이었고 목사인 로스(Hugh Ross)박사는 그의 '창조주와 우주(The Creator and The Cosmos)'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시간은 원인과 결과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차원(dimension)이다. 만일 시공간 정리 (space-time theorem)가 말해주는 것처럼 우주의 시작과 동시에 시간이 시작되었다면, 우주 의 원인(cause)은, 우주의 시간이라는 차원에 대해 완전히 독립적이며 그 시간 이전에 존재 하는 어떤 차원에서 우주를 움직이고 있는 존재이어야 한다." 이 논의는 신이 우주 자체와도 같지 않으며 우주안에 속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대중적인 의미의 신적 개념을 배제하는 깊은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다.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
빅뱅우주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천문학적인 사실이 신의 존재의 증거라고 보는 입장의 또 하나의 커다란 이슈는 신의 설계(design)와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에 대한 논의이다.
인류원리라는 것은 우주의 모든 것(시작과 역사와 조건과 내용)이 현재의 인류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 그것을 유지시키기 위해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관점으로 보면 사 실 현재의 우주가 존재하기 위해서 그리고 현재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즉 수많은 특정한 상태와 특정한 값이 필요하며 그 중에서 하나 라도, 그리고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우주는 현재의 모습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러 한 조건의 대표적인 예로 우주의 밀도를 들 수 있다. 우주의 밀도가 조금 작았더라면 은하 나 별이 생성될 수 없고 물론 지구와 같은 행성도 만들어질 수 없다. 반대로 밀도가 더 컸 더라면 태양과 같은 별이 생성되기 전에 우주는 팽창을 멈추고 다시 수축을 시작하여 종말 을 맞게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물리법칙에 사용되는 상수들(예를 들어 중력상수나 전 자의 양성자의 질량비등)이 정확히 그 값을 갖지 않고 약간만 달랐더라도 우주는 현재와 같 은 모습을 가질 수 없다. 이러한 예는 우주의 거대구조(large scale structure)뿐만 아니라 지구와도 관련된다. 지구와 태양사이의 거리가 1억5천km에서 달라졌더라면 혹은 지구의 자전 기울기가 지금보다 더 기 울거나 덜 기울었더라면 혹은 지구의 알베도(Albedo)나 대기 중 산소의 비율이 달랐더라면 지구는 생명체가 존재하고 유지되기에는 부적합한 장소가 된다
우주가 현재의 모습을 갖게되기에는 상당히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주가 왜 만들 어졌는가라는 목적론적 질문(teleological argument)에 답을 준다고 많은 유신론자들은 생각 한다. 즉 우주는 인류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인류가 유지될 수 있는 거주지가 되기 위해서 변화해 왔으며 이것은 결국 초월적인 설계자의 design에 의한 것이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빅뱅우주론과 기독교신앙을 직접 연결하려는 관점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 다.
다음호에서는 그러한 위험성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과학과 신앙을 통합적으로 봐야하 는가에 대해 다루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