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기독교 서적

문익환 평전

별아저씨의집 2004. 8. 30. 04:43

2004년 8월 29일

자신을 철저하게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었다.
아침에 책을 잡아 삼백 페이지가량 주인공이 내 나이쯤 될 때까지를 숨돌릴 틈 없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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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동안 유학생활을 하며 때로는 경제적 쪼들림에, 때로는 이방인의 삶에, 때로는 고향과 두고 온 문화에 대한 그리움에 나 자신은 말그대로 욕구불만 상태였다.

그렇게 내 삶을 추동하던 '하나님의 나라'라는 대학시절의 이상은, 이념으로 불타던 열정들이 현실사회속에서 무너져 내렸던 것을 경험한 변절자들의 삶에서처럼 나에게도 머나먼 추억이 되고 말았다. 기독학생운동 동기들의 술안주감으로 전락한 그 이상에 대한 기억마져도 희미해진 여기 부유한 땅에서 첫 해를 보내고 났을 때 나는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변해가는 듯한 자신이 두렵다는 일말의 감각은 그래도 가지고 있었다.

좋은 차와 넓은 집과 안락한 살림들과 그리고 경제적인 여유... 그 잡신이 15분마다 텔레비젼에서 포교를 하며 창밖의 풍경과 길거리의 볼거리와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와 심지어 내 은밀한 공부방 책상 위 컴퓨터까지 장악하여 sinful nature에 충실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 익숙한 속삼임에 '그래'라고 반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건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닌 듯.

꼭 그 이유가 내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그리고 나눠쓰기만 하면 충분히 빈곤한 나라의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부를 옹색하니 움켜지고 있는 나라라는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 만은 아닐것이다. 나는 서른이 한참 넘었고 부양할 가족이 생겼으며 아무리 늦어도 돈에 눈을 뜰 시기를 넘겼다. 이상으로 살던 시인의 젊음을 버렸고 현실을 봐야하는 말수가 적어진 세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내가 살던 옛 동네에선 밤 열두시를 넘겨서까지 재봉틀을 돌려대는 재봉사들과 긴 원단을 개고 자르는 재단사들을 매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어머니 아버지의 삶이기도 했다. 동네에 내팽겨쳐진 아이들이 자동차의 위험을 놀이 삼아 좁은 골목길을 까만 때 낀 얼굴로 휘젓고 돌아다니는 모습이나 무너져가는 다세대 주택에서 말그대로 생존하고자 몸부림치는 일상들과 70대의 할머니의 노동품 파는 거친 삶을 뼈저리게 볼 수 있었다. 잡신의 유혹이 덜 했던건 아니라고 쳐도 분배의 모순의 현장을 그래도 틈틈히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나의 본원적 욕구에 간간히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었다. 

곁에 두고 보지 못하면 희미하게 잃어버리는 된다는 건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나약함일까? 나는 잡신의 모든 숭배자들처럼 삶의 security를 찾아 안정된 직장이라던가 개인의 미래를 지켜줄 것들을 경배하느라 정녕 장님이 되었다. 월급이 좀 더 오르거나 다른 수입이 생겨 걱정없이 의료보험료를 낼 수 있다던가 책 몇 권을 고민없이 사 볼 수 있다던가 외식을 좀 더 할 수 있다던가 하는 고작 그런 바램이라든지, 언제 어디가서 물건을 사야 더 싸게 살 수 있는 지 하는 생각에 맘을 빼앗겼다. 어떻게 하면 한 편이라도 연구논문을 더 낼 수 있을까하는 자기중심적 고민은 그래도 수준 높은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좁은 한국에서 넓은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그리고 국내외선 비행기를 꽤 자주타며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살게 되었다. 그러나 진정 내가 살고 있는 우주는 너무나 좁았다. 고대나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이었던 철학가들이나 근대의 과학자들의 삶과 사상이 때로 위안을 주지만 그것은 역부족이다. 나는 말 그대로 미로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나 중심의 좁은 우주, 그것은 바로 벗어날 수 없는 미로다.

문익환목사는 '역사는 꿈을 통해 부활한다'고 했다.


역사는 꿈을 통해 부활한다....
역사는 꿈을 통해 부활한다....
92년 도서관 앞 민주광장에서 5년 안에 통일이 될거라고 외치던 늙었지만 젊음보다 쟁쟁하던 문익환 목사님의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쎌모임에서 시편을 PBS하다가 공동번역성경을 읽던 나는 죽은 언어를 사용한 개역성경과 달리 언어가 도드라져나와 순식간에 눈 앞에 펼쳐지던 자연을 목도하게 된 경험을 했다. 알고보니 그것은 문익환 목사님의 번역이었다. 그런 두 편의 짧은 기억 속에 있던 그 분의 삶을 책으로 보며 나는 내 자신을 한없이 부끄러워해야 했다.

민족의 일꾼을 길러내기 위해 온 가족이 응당 학비를 대는 그런 공동체에서 그리고 꿈을 가진 인물들 속에서 자란 문익환에게는 이미 운명의 무게가 주어져 있었다거나 지금과는 달리 민족의 독립이라는 커다란 역사의 숙제 앞에서 오히려 목숨을 걸만한 가치있는 일들이 있었다라는 변명들을 해 보지만 그것만으로 상대적 덜 풍요함에 대한 욕구불만으로 가득 찬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씻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에게는 삶의 척도가 너무나 분명했다. 그가 부활시킨, 부활시킬 역사처럼 그의 꿈은 분명했다.

아, 메마르던 시절에 그에게는 찾아가 그 내심을 달랠 지인들이 있었다는 것 마져도 나는 한없이 부러워할 수 없는 것일까?

미로를 벗어나는 길은 분명해 보이는데 자신은 왜 이렇게 연약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