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라는 단어에는 공산주의라는 단어처럼 빨간 딱지가 붙여져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진화는 성경과 배치되는 개념이고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는 반기독교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진화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생각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치 착한 공산주의가 말이 안되듯이.
진화가 과학적 사실인지 아닌지, 진화이론이 과학적으로 엄밀한지 혹은 가설에 불과한지에 대한 과학적 이슈들을 떠나서 그리스도인들이 진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조금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여러가지 다른 내용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 하나하나를 제대로 짚어보고 왜 그렇지 않은지를 풀어가는 것이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진화에 대해 갖는 반감을 제거해 주는 길이 될 것이다.
카톨릭 신학자로 진화에 관련된 신학을 하고 있는 존 호트는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진화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를 풀어주는 유익한 책인데 그가 다루는 첫번째 질문이 바로 왜 '진화'가 종교적으로 문제가 되는 개념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존 호트는 6가지의 이유를 든다. 1) 진화는 성경의 해석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 처럼 보인다. 가령, 창조기사는 6일 동안 창조가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반면, 생물진화는 수백만년의 기간을 거쳐 일어난다. 2) 다윈의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은 신의 역할을 감소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3) 인간이 하등한 생물에서 진화했다는 것은 인간의 유일성이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인다. 4) 진화에서 우연성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은 신의 목적이나 섭리와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5) 진화는 우주에서 목적을 빼앗고 인간의 생명에서 의미를 빼앗는 것처럼 보인다 6) 인간이 진화했다면 원죄나 타락의 개념과는 배치된다.
분명히 이런 점들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도 진화라는 개념에 거부감을 갖는다. 그러나 이 6가지 이유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실 진화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우선, 창조기사와 진화의 스토리가 갈등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창조기사의 해석에 대한 문제이다. 사실, 창세기 기자는 누가 창조주인가에 관심이 있지, 창조의 방식, 순서 같은 문제는 별로 관심이 없다. 21세기의 과학교육을 받은 우리는 뭔가를 만든다고 할때 그 과정과 원리에 매우 관심이 많지만 그 시각을 갖고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경이 의도하지 않은 바를 읽어내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그래서 성경을 인과론을 밝혀주는 텍스트로 읽고 그에 따라 창조가 6일 동안에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건전하지 못하다.
두번째, 자연선택이 진화를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면 신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다. 그렇게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근대과학이 성립하기 전, 자연현상의 탈신화화가 일어나기 전에나 할 수 있는 얘기다. 선한 자와 악한 자에게 지금도 공평하게 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역할은 어떤가? 대기이론의 원리에 따라 비가 오는 것인데 그럼 신의 역할은 줄어든 것인가? 그렇게 따지면 현재 자연을 운행하는 신의 역할은 너무나 너무나 왜소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자연법칙, 인과관게를 통해서 일하는 신의 역할이 사실 더 크다. 금강산이나 그랜드 캐년도 풍화작용과 지질학적 과정을 사용해서 신이 만든 작품이다. 신이 자연법칙을 사용하지 않고 마술사처럼 직접 뭔가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중력법칙을 통해서 너무나 멋지게 달과 행성들을 움직이고 계시지 않는가? 자연현상들을 어떤 인과관계로 설명하면 신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전근대적인 생각이요, 신을 마술사 정도로 보는 마술사적 신관이라고 비판 받을수 밖에 없다.
세번째, 인간이 보다 하등한 생물에서부터 진화했다면 인간의 존엄성, 유일성이 무너진다는 주장이다. 동의하기 어렵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침팬지와 상당히 비슷하다. 유전자도 거의 같다. 인간의 존엄성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독특하고 유일하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흙에서 사람을 만드는 것은 괜찮고 덜 복잡한 생물에서 사람을 만드는 것은 안된다는 것일까? 사실, 과학을 조금더 공부해오면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가령, 우주의 초기에는 수소와 헬륨밖에 없었다. 인간이나 생물의 몸을 구성하는 주된 성분인 탄소는 원래 없었다. 그러다가 별의 내부에서 헬륨이 타면서 탄소가 만들어지고 별이 폭발하면서 죽으면 그제서야 우주공간에 탄소가 퍼지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 만들어진 별과 행성들에서 드디어 탄소를 기반으로 한 생명체들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결국 별 먼지에서 부터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수 있다. 하등한 동물에서 만들어진 인간이 존엄성을 가질수 없다면 먼지에서 만들어진 인간은 존엄성을 가질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사실 별로 의미가 없다. 인간이 존엄성을 갖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색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유일성을 갖는 존엄한 존재인 것은 인간의 정신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에서 주어진 것이다.
네번째와 다섯번째는 같은 맥락이다. 진화에서 우연성이 강조되는 것은 마치 목적이나 섭리와는 배치되는 것처럼 보일수 있다. 왜냐하면 우연한 것은 뭔가 의도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진화가 우연히 일어나서 인간이 만들어졌다면, 인간은 하나님이 계획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신은 얼마든지 우리 눈에 우연하게 보이는 것처럼 사건을 통해서도 목적을 이룰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제비뽑기 같은 사건이다. 사실 과학에서 사용하는 우연이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다양한 가능성 중에 하나가 실현되었다는 뜻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가 일어나는 방식이 우연적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신은 목적과 섭리를 가지고 진화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섯번째, 인간이 진화했다면 원죄나 타락은 어떻게 설명하는가의 문제다. 아담의 죄를 통해 들어온 원죄는 생물학적으로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즉 인간이라는 존재가 죄인이 되는 것이지 아담의 피를 통해 원죄가 유전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때문에 진화가 꼭 원죄나 타락과 배치되는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