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들르는 서점에서 인문학 신간 코너를 보다가 재밌는 책 제목을 발견했습니다.
'우주에는 신이 없다' 어느 심리학자가 쓴 책이 막 번역되어 전시되어 있는데 400 페이지 가까운 두께의 압박과 '만들어진 신'과 비스무리한 표지에 유혹을 금치 못하고 책을 들고 빈 의자를 찾았습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쓰여진 1부는 그래도 읽어줄 만 했습니다. 크리스천들의 삶에서 보이는 현상들을 중심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그의 얘기는 일리가 있고 또한 다른 무신론자들의 비판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겸허하게 들어야 할 얘기들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 2장부터는 그리 건질만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과학을 토대로 우주에는 신이 없다는 주장을 한 책인데요. 과학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특히 우주의 초기에 관련된 문제 그리고 최초의 생명체에 관련된 문제를 기술하는 부분은 비전문가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군요.
책의 전체를 통해서 계속 창조론자들을 비판하는데 그가 비판하는 창조론은 '젊은 지구론' 입니다. 우주의 나이가 6천년이라고 믿는 입장 말입니다. 재밌게도 그는 오랜 지구론이나 진화적 유신론의 입장도 소개하는데 그런 입장들은 성경을 그대로 읽지 않고 과학과 조화시키려는 껴맞추기식이라는 입장으로 호도하는군요. 성경신학을 얼마나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성경에 대한 이해는 샘 헤리슨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단편적이고 단순한 텍스트 읽기에 기초합니다. 그래도 왠만한 교회다니는 사람보다 자신의 성경지식이 더 많다고 자신만만해 하는군요.
'지옥가기 싫어서 믿는 기독교 신앙'과 같이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의 나라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얄팍한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사실 그의 책임이 아닐수도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책의 내용 중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창조론자들은 행성이 완벽한 원궤도를 그리고 있고 일정한 속도고 공전한다고 주장한다고 기술한 내용이었습니다. 케플러가 행성의 움직임을 관측해 밝혀낸 이래, 우리 모두는 행성이 타원퀘도를 그리며 돌고 있고 공전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창조론자들이 케플러의 법칙에 반대되는 그런 주장을 한다니 말도 되지 않습니다. 정말 심하군요.
지구나이가 6천년이라고 믿는 창조론자들이 심각한 문제를 떠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관측된 사실조차 부정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우주의 오래된 역사를 믿지는 않지만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관측된 사실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명백하게 관측되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가 없지요. 물론 그 관측된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창조론자들은 과학에서 관측되는 사실을 자신들의 틀, 즉 젊은 지구와 우주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을 관측적 사실도 부정하는 사람들로 폄하하다니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예시하는 다른 내용들이나 논리들에 대한 신뢰감이 팍팍 떨어지는 대목입니다.
물론 창조론자들 중에 실제로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마찬가지로 무신론자들 중에 수학적 증명을 통해 신이 없음이 증명되었다거나 명백한 실험결과에 의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신론자들이 다 그렇게 주장한다고 오도하며 그래서 무신론자들의 주장에 먹칠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혜를 얻어볼까 해서 몇시간 투자했는데 꽝이었습니다. 무신론을 믿는 심리학자들의 책은 대체로 저를 실망시키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