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생각해 봐'를 읽다가 무척 시와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거기 나온 몇편의 시에서 맞부딪힌 감동과 그리고 그 장을 쓴 국어선생님이 던진 메세지가 왠지 시집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토요일, 오랜만에 교보문고에 갔다. 문을 들어서자 바로 앞 전시대에 2010년 이상문학상 소설이 보였다. 집어 들었다.
박민규를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그의 작품은 씁쓸하면서도 현실로 바로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그의 수상작, '아침의 문'을 읽다. 잘 쓴 작품이다. 자살과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설정도 그랬고 '문'이 상징하는 바도 그랬다. 나는 불현듯 오랜동안 잊고 있던 한국이라는 현실에 쑤욱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마치 어느 딴 세상에서 표류하고 있다가 눈을 뜬 것 같은... 그래 소설엔 그런 힘들이 있다. 소설을 읽는 것은 현실을 만나는 또 하나의 길이다.
시집을 한 권 사고, 소설을 한 권 사고, 그리고 김두식 교수가 새로 낸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란 책을 샀다. 한국 교회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에는 거의 대부분 동의하기에 새 책에서 그가 무슨 얘기를 할까 궁금했다.
까페에서 첫 석 장을 읽다. 그래. 동의한다. 오히려 그의 필체가 부드러운게 불만스럽다. 그의 책들을 통해서 읽혀지는 그의 사상적 위치는 대략 분명하다. 리차드 니버의 다섯가지 유형으로 치자면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 쯤이 아닐까. 평화주의 전통이나 반콘스탄틴의 입장들을 보면 말이다. 이 책의 4장에서 콘스탄티즘을 다루고 있는데 아직 읽진 않았다. 물론 그의 입장은 세상을 버리고 수도원으로 들어가자는 입장은 아니다. 사회에 대한 복음의 책임에는 깊은 관심이 있지만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의 입장에는 경험적 한계를 느끼는 입장인 듯 하다. 어쨌거나.
궁금한 건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이었다. 8,9장으로 건너 뛰었다. 아니나다를까 그것은 바로 교회였다. 스탠리하우어워즈의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처럼 그는 교회의 교회됨의 회복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분명 귀기울여야 할 메세지다. 그러나 한편, 글쎄라는 반응이 꿈틀대며 올라온다. 타락한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을까? 오히려 청년들이여 죄다 교회를 옮겨라와 같은 메세지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식은 커피처럼 8,9장을 덮는 내 마음도 씁쓸했다. 물론 저자의 잘못은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