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채너티 투데이 2010년 1월호] 이 책을 말하다 :프란시스 콜린스의 '신의 언어'
주께서 생명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그 로고스를 들어보라 - 우종학
3년 전, 콜린스 박사의 책, '신의 언어'가 미국에서 출판되었을 때 나는 집으로 배달된 그 책을 부여잡고 단숨에 읽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 책에 나의 필이 확 꽂힌 이유는, 생물학계의 저명한 과학자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인으로 회심했다는 점, 더군다나 그 과정에 C. S. 루이스의 작품들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그래서 그가 루이스의 열렬한 팬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저술가로 꼽히는 루이스의 작품은 환타지 소설을 포함한 문학과 기독교 변증 뿐만 아니라 과학과 신앙에 대해서도 폭넓은 통찰력과 날카로운 분석을 제공한다. 콜린스 박사의 책은 어떨까? 책을 읽으면서는 나는 그가 풀어나간 이야기들에 하나하나 고개를 끄덕였으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어린시절 콜린스에게 신앙은 별로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교회 소년성가대에 보내면서 그의 부모가 어린 콜린스에게 했던 경고는 바로, 음악을 배울 좋은 기회이기는 하지만 신학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신앙에 귀를 닫고 자란 콜린스는 신의 존재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익숙하게 벌어지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불가지론자가 된다. 그후 예일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물리화학을 공부하던 그는 우주의 정교한 질서에 매혹되며 자연스럽게 자연주의에 빠져들면서 무신론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박사학위를 받을 무렵, 인생의 의미를 고민하다가 진로를 바꾸어 의대에 진학한다. 병원에서 그는 신앙을 가진 많은 환자들을 만나며 그들이 가진 믿음과 삶의 태도를 목격하고는 충격을 받는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그들의 신앙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과학자인 자신이 한번도 신앙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연구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은 콜린스는 기독교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그러나 무신론을 다지고 기독교를 반박하기 위해 시작한 기독교에 대한 공부는 점점 더 신을 믿는 길로 그를 인도했고 결국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신앙을 갖게 된다.
한 사람의 신앙여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언제나 신선하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과정을 그린 책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나는 '반항적인 회심자, C. S. 루이스 (IVP 역간)'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책은 서른이 되어서야 기독교 신앙을 갖게된 옥스포드의 저명한 영문학자이자 사상가인 C. S. 루이스의 정신적 방황과 신앙여정을 잘 그려낸 책이다. 루이스가 무신론자에서 불가지론자로 그리고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자로, 그리고 마침내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 믿게 된 그리스도인으로 변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고 심오하다. 진지한 회심의 과정을 거친 사람으로서 인문학자들 중에 루이스를 꼽는다면 자연과학자 중에는 콜린스를 꼽을수 있지 않을까? 그가 최고 권위의 생물학자라는 것이 나는 너무 반갑다.
무신론자였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콜린스 박사는 기독교신앙을 적극적으로 변호한다. 기독교에 대한 무신론의 공격이 만만치 않은 요즘, 생물학자인 콜린스 박사가 펼치는 신앙에 대한 변호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독자들에게 상당히 유익하리라. 그는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펼쳤던 것처럼 인간에게는 옳다고 여기는 어떤 도덕법이 있음을 상기시켜면서 그 바탕에 신이 존재함을 변호한다. 도덕법의 기원에 대해 사회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최소한 콜린스 박사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지식인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 왜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도 태클한다. 자신의 딸이 겪었던 불운한 성폭행의 경험을 솔직하게 밝히면서 악은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서 일어나며 고통이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카폰임을 역설한다. 도킨스와 같은 공격적 무신론자들이 던지는 비판에도 따끔한 충고를 던진다. 종교가 저지른 수많은 해악들을 보면서 종교가 사라져야 한다고 외치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콜린스는 녹슨 그릇을 보는 대신 거기 담긴 깨끗한 물을 보라고 권한다.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종교의 이름으로 악이 행해지기도 했지만, 종교가 인류 역사에 많은 긍정적 역할을 한 것도 분명하다. 결국 기독교를 제대로 보려면, 죄성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그런 인간을 용서하고 사랑한 하나님을 보야야 한다. 녹슨 그릇만 보고 거기에 담긴 맑은 물을 버리는 것은 결코 지혜롭지 못하다.
또한 그는 기적에 대한 논하면서 기적을 믿는 것이 과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베이지안 정리라는 확률이론을 가지고 결국,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열어두느냐 닫아두느냐에 따라 기적이 일어날 확률이 다르게 계산됨을 알기쉽게 설명해 준다. (분량이 길면 이 다음 부분은 빼도 될듯 합니다). 어떤 사건이 정말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인지를 따져보는 확률계산을 하려면 사전확률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 사전확률이라는 것은 알수 없는 경우가 많다. 주사위를 던지면 1이라는 숫자가 나올 확률은 1/6이지만 누가 아는가, 6면 전부에 1이라는 숫자를 써놓은 주사위를 누가 만들어놓았을지. 그런 주사위를 던진다면 1이라는 숫자가 나올 확률은 100%가 된다. 결국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우리가 알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며, 기적이 일어날 수 없다는 전제를 갖지 않는 이상, 기적은 드물게 발생할 수 있다.
21세기는 인류역사의 어느 시기보다도 과학이 발전한 시대이다. 과학적 사고와 지식으로 훈련된 사람들 앞에서 과학을 논하지 않고 신앙을 논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현대과학이 밝혀낸 우주와 생물의 역사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무신론자들의 비판으로부터 신앙을 방어하는 일에서 한걸음 나아가 콜린스 박사는 천문학과 생물학을 통해서 밝혀진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의 내용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 과학의 결론들이 가르키는 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과학의 결과들을 보니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는 무신론자들의 결론과는 정반대의 주장이다. 오히려 그는 태초에 우주가 시작되었다는 점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를 가르키며, 우주의 역사가 마치 인류를 만들어내기 위해 치밀하게 구성된 듯이 진행되어 왔다는 점이 창조주의 존재를 가르키고 있음을 설파한다. 생물학도 마찬가지다 지구가 우주중심에 있다는 고대의 우주관이 깨진 것처럼, 생물체들의 복잡한 구조를 보면 설계자의 작품임을 알수 있다는 나이브한 전통적 설계추론은 깨졌다. 그러나 생물들의 발현과정은 여전히 신성함이 깃든 수수께끼를 담고 있으며, 경이롭고 정교한 생명체들의 모습을 보면 그 생명들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섭리하시는 총지휘자,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한다고 말한다. 그가 긴 세월동안 연구하며 밝혀온 몇십억개에 달하는 유전자 서열의 지도는 바로 신이 생명체들을 창조한 설계도이며 창조때 사용된 신의 언어이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 초안이 발표되던 날, 클링턴 미국 대통령이 했던 연설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생명을 창조할 때 사용한 신의 언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려준 가장 신성하고 성스러운 선물에 깃든 복잡성과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그 어느때보다도 큰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기독교인 과학자가 이 말에 동의하지 않겠는가? 우주와 생명체의 역사를 과학으로 밝히는 과정에서 우리는 신의 창조를 더 깊이 배우게 되며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요함에 더더욱 놀라게 된다.
반면, 콜린스 박사는 기독교인 과학자로서 과학과 신앙에 대해 치우친 생각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자신이 경험했던 무신론을 과학이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과학은 필연적으로 무신론을 낳는다는 도킨스의 주장에 대해, 신이 자연 밖에 존재한다면 과학은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도 부정할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지적한다. "따라서 무신론자가 되기로 결정한 사람은 그러한 결정을 내린 근거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진화로는 어림없다." 그는 젊은지구론으로 대표되는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론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수많은 과학적 증거와 반대되는 주장인, 지구나이가 6천년이라는 젊은지구론 대신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많은 젊은이가 결국 믿음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또한 지적설계론에서 신의 설계의 증거로 제시되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과 같은 개념에 대해 과학적 반론을 가한다. 생물진화이론들이 자연주의에 빠진 무신론 과학자들에 의해 맹목적으로 주입되고 있다는 음모론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면 유전학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면서 신실한 신앙을 가진 콜린스 박사가 조심스럽게 제시하는 최근 생물학의 다양한 결과들에 마땅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양극화된 창조와 진화 논쟁대신 콜린스 박사는 과학과 신앙의 조화를 주장하며 새로운 용어를 제안한다. 창조-진화 논쟁의 오랜 상처때문에 창조, 진화, 설계라는 말들은 오해를 사기쉽다. 그는 생명을 뜻하는 그리스어 바이오(bio)와 말씀을 뜻하는 로고스(logos)를 합해서 바이오로고스라는 말을 제안하는데 이 말은 신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은 신의 의지를 표현한다는 믿음을 나타낸다. 우주와 생명체의 역사를 밝혀낸 과학의 내용들이야말로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과정을 보여주며 특히 유전자지도는 하나님이 생명체를 창조하실때 사용한 그분의 언어에 해당된다. 무신론적 진화론과는 정반대로 바이오로고스의 입장은 현대과학의 결과를 하나님이 창조과정에 사용하신 자세한 계획으로 받아들이라고 권고한다. 과학이 신을 위협한다는 판단으로 과학에 등을 돌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콜린스의 핵심주장이다. "성경의 신은 동시에 인간유전자 지도를 창조한 신이고 그리고 그 유전자 지도에 따라 생명체들을 창조한 신이다. 그 신은 교회에서도 그리고 과학실험실에서도 예배할수 있다." 신의 창조는 웅장하고 경이로우며 섬세하고 아름답다.
과학과 신앙에 관해, 그리고 창조-진화 논쟁 때문에 고민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과학과 신앙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유전학 분야의 최첨단에 서있는 세계적인 과학자, 그러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주로 고백하는 콜린스 박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현대 생물학의 지식과 함께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필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