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시의 두꺼운 책, 완전한 진리는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2부 (5-8장)가 주로 과학에 관련하여 세속적 세계관을 비판하는 내용을 다룬다. 5장에서는 생물 진화이론을 비판하고 6장에서는 지적설계론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방법론적 자연주의와 철학적 자연주의를 함께 비판한다. 7,8장에서는 다윈의 이론에 근거한 무신론적 세계관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있는지를 논하면서 다윈주의 세계관 자체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설파한다. 7장은 주로 진화심리학을 다루고 8장은 철학적 다윈주의를 다루면서 과학, 교육, 심지어 신학에까지 다윈의 이론이 어떤 폐해를 가져왔는지 훝어간다. 오늘은 7,8장을 간단히 비평하는 것으로 2부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하자.
진화심리학자들 중에서 인간의 정신은 그저 물질의 진화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신념을 갖는 무신론자들의 대한 피어시의 비판은 적절하다. 사회 전반에 깔린 무신론적 세계관의 파워와 그 영향력에 대해서는 동감한다. 피어시는 창조과학/지적설계론자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다윈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다양한 비판을 가하는데 사실 그가 사용하는 다윈주의라는 의미는 유물론에 가깝다. 그 유물론이, 인간과 생물의 기원도 신의 어떤 특별한 (그러니까 기적적인) 창조가 아닌 자연적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다윈의 생물진화 이론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다윈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비판하는 것은 무신론적 진화주의, 그러니까 유물론, 무신론이다. 만일 신이 인간과 생물을 자연적 과정을 통해 창조했다면 생물진화 이론은 얼마든지 유신론과 양립할 수 있다. 그러니까 생물진화이론 자체는 유물론/무신론이 아니다. 유물론/무신론의 비판에 대해서 반대할 크리스쳔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많은 창조과학자들과 지적설계론자들처럼 피어시도 다윈주의라는 용어를 매우 포괄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다윈주의라는 말로 때로는 과학이론으로서의 진화이론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진화심리학 밑바탕에 깔린 전제를 의미하기도 하고 세계관으로서의 무신론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험적 과학으로서의 생물진화이론과 철학적 무신론은 분명 다르다. 철학적 무신론을 받아들일수는 없지만 과학이론으로서의 진화이론을 받아들이면 안되는 이유는 별로 없다. 문제는 피어시와 같은 반진화론자들은 과학이론으로서의 생물진화이론 자체가 무신론적이라고 보는데 있다. 다시말하면 생물진화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필연적으로 유물론/무신론을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는다고 본다는 것이다. 진화이론을 받아들이면서도 유물론/무신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많은 크리스쳔 생물학자들과 또한 많은 불가지론자들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일방적인 가정이 바로 7,8장의 바탕에 깔려있다. 그래서 7,8장을 읽기가 그리 신나지가 않는다. 무엇이 기원이 되었든 유물론/무신론을 비판하면 되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유물론/무신론 세계관과 어떻게 싸울것인가하는 처방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사실에 있다. 진단이 그러니까 처방도 그럴수 밖에. 그래서 피어시와 같은 창조과학자들은 진화이론을 반대한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대로 진화이론이 과학적으로 부적합하다는 것이 입증된다고 해서, 가령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같은 조상에서 분화된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생성되었다거나 자연선택이나 유전자 변이가 종의 분화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밝혀졌다고 해서, 유물론/무신론적 세계관이 사라질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무신론자들이 생물진화이론을 무신론적으로 해석해서 유물론의 근거로 사용하는 논거는 약해지겠지만 그렇다고 유물론/무신론적 세계관이 힘을 잃거나 망할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유물론과 무신론의 세계관의 뿌리에는 인간의 죄성이 있고 수많은 다른 것들에도 지지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윈의 생물진화이론은 생물의 물질적 기원에 대한 이론일 뿐인데 그것을 받아들이면 정신도 물질에서 나왔을 뿐이라는 유물론을 받아들이기 된다는 가정은 인정하기 어렵다. 물론 피어시가 언급한 것처럼 다윈의 생물진화이론으로부터 그런 유물론을 도출한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다윈의 생물진화이론이 정신의 기원까지도 다룬다라고 보는 것은 반진화론자들의 오버라고 본다. 물론 반진화론자들이 다윈주의라는 말을 유물론으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크리스천 과학자들을 포함한 생물학자들이 방어하는 것은 그런 다윈주의가 아니라 생물진화이론일 뿐이다. 반진화론자들은 다윈주의라는 용어를 많이 쓰고 생물학자들은 진화이론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때로는 창조과학자/지적설계론자들이 헛깨비와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피어시가 7장에서 제시한 무신론 세계관에 입각한 진화심리학자들의 존재가 무척 껄끄럽기는 하겠다. 그러나 분명 진화심리학과 진화생물학은 다르다. 진화심리학이 생물진화이론에 기초를 둔 사회생물학에 한 뿌리를 둔 것은 분명하지만 진화심리학은 인류학이나 심리학에 가깝다. 그것은 생물학이나 지질학 수준의 과학적 엄밀성을 갖지 못한다. 가령, 강간이라든가 이타성이라든가 여러 인간행동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은 그럴듯한 추론에 가깝고 과학적 증거들을 확보하여 과학적 합의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물론 생물진화이론을 과학이 아니라고 보는 반진화론자들에게는 진화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이나 오십보 백보가 되겠다. 그러나 인간이 침팬지와 같은 조상에서 기원했다거나 자연선택과 유전자의 변이가 종의 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이론을 (그러니까 생물진화이론을) 받아들이는 생물학자들 모두가 인간의 정신과 문화도 그저 적응을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무신론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건 아니다. 피어시가 언급한 무신론 진화심리학자들의 충격적인(?) 주장들을 들어보면 마치 다윈과 진화생물학자들도 공범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생물의 진화이론이 인간 정신의 기원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저 더 지켜보아야 할 학문이다.
5,6장도 그렇지만 7.8장을 읽어보면 피어시의 진단이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적 세계관/유신론과 다윈주의/무신론/과학으로의 이분법이 그렇다. 단순한 그림은 물론 복잡한 그림보다 더 대중적인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과학과 관련된 영역을 보면 사실 양쪽 진영과 오버랩되는 많은 부분이 존재하고 또한 중립적인 많은 부분들도 존재한다. 그래서 이분법에 근거한 피어시의 진단은 toy 모델 같다. 개념파악에는 좋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먼 모델, 수업시간에 교육용으로 사용할 때는 편하지만 실제 연구에는 사용할 수 없는 단순한 모델이랄까.
마지막으로 7장에 나오는 한 부분을 옮겨서 위에서 설명한 내 논지를 마무리해 보자.
만일 다윈주의가 옳다면, 종교와 도덕은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가치의 영역에 속한 상층부의 비합리적 신념에 불과한 셈이다. 우리는 가치의 영역은 주관적이어서 이성적 검사에서 면제되기 때문에 때로 이것을 괜찮게 여기고 안심한다. 과학적 자연주의자들의 판매전략이 무척 유혹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과학이 설명할수 없는 도덕적, 종교적 정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겠다고 한다. 단 신학이 과학의 탐구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가 객관적 진리라는 주장을 포기하면, 그들의 신념이 비판을 면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허락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거래가 보장하는 안전이 거짓이라는 것이 아주 분명해졌다. 자연주의적 진화라는 지적 제국주의가 너무 거대해서 가치의 영역마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무모할 정도로 가치의 영토를 침략하고 있으며 한때 과학의 범위 밖에 있던 영역을 자기의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도덕적 행위, 인간 관계, 문화적 관습을 설명하려고 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종교마저도 자연선택의 산물로 규정한다.
자, 여기서 피어시가 언급하는 다윈주의는 뭘까? 전문맥을 보면 생물진화이론 같기도 하고 유물론적 세계관 같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물진화이론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이런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생물진화이론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기독교는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주관적 정서에 지나지 않는다는 신앙을 고백하게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피어시에 의하면 생물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과학적 방법론으로 연구하는 일은 당연히 가치의 영역까지 침범하여 유물론/무신론적 세계관을 퍼뜨린다. 동의하기 어렵다. 가치의 영역에서 귀중한 기독교적 가치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이유는 과학자들이 자연현상을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입각해서 연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죄성을 변명하고 합리화할 이론들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고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가치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세계관의 전쟁에서 유물론과 맞서 싸울 제대로 된 처방은 내리지 않고 오히려 과학을 탓하고 지적설계론으로 과학을 대신하자는 어처구니 없는 처방에 힘을 쏟기 때문에 무신론 세계관이 더 힘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