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눈에 띄는 책들을 몇권 짚어왔었다.
시월의 마지막 날, 완연한 가을날씨에 비가 내리는 창밖 모습이 차분히다. 모질게 음악이 듣고 싶어져서 처박혀 있던 오디오를 설치했다. 커피메이커에 사용하던 변압기를 빼내서 오디오와 전원에 연결하고 우리결혼생활을 함께한 오디오로 라디오를 틀었다. 아, 비내리는 모습을 보며 음악과 함께 차분하게 독서를 즐기는 토요일...
그때 짚어왔던 책들 중에 '과학과 신앙'이라는 책이 있었다. '서울대 자연계열 교수들의 간증집'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1997년 출판되었고 스물댓명의 저자들의 글이 실려있었다. 코스타에 오셨던 화학과의 김병문 교수라든가, 물리학과의 제원호 교수, 지구과학교육과의 최승언 교수 등등 익숙한 이름들도 눈에 띄었다.
대략, 간증집이 그렇듯, 신앙을 갖게된 이야기, 유학시절 이야기, 교수된 이야기, 등등이 비슷하게 펼쳐진다. 그중에는 전혀 개인적 간증을 담지 않고 자신의 전공분야와 신앙을 논한 글들도 꽤 있었다. 서울대가 내게는 낯설기 때문에 기독교수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 궁금해서 집어들었던 책이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서울대가 유별난 곳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은 뭐 그리 다르지 않다.
과학과 신앙의 양립관계를 다룬 몇편의 글이 고무적이었다. 90년대 말에 쓰여진 책이었지만 생물학 관련 전공의 교수들은 이미 진화론을 수용하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용이야 당연했겠지만 드러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가령, 생물학과의 이인규 교수는 30페이지 가량되는 '기독교의 창조론과 생물학의 진화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창조와 진화를 신학과 과학의 입장에서 각각 설명하고 진화론과 창조론이 이율배반적인 원리가 아님을 논한다. 생물 전공이외의 다른 자연과학 분야의 교수들도 젊은지구론이나 창조과학의 주장에 대한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물론 창조과학이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크리스쳔 과학자, 교수들의 입장은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이 책으로도 확인할수 있었다.
여러저자들의 글 중에 눈에 띄는 입장은 물리학과의 임지순 교수의 글이었다. 그는 과학과 신앙의 논쟁, 때로는 신앙을 변호하기 위한 논쟁조차도 불필요하고 위험한 경우가 많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그의 입장은 소위 과학과 신앙의 독립론에 가까와 보였다. 그는 심지어 신학의 다양한 이론들에도 관심이 없음을 표명하는데 그 이유는 그 이론들이 맞든 틀리든 간에 기독교 신앙에 본질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독자들이 '체험'을 통해서 예수를 구원의 주로 만나기를 독려한다. 전형적인 독립론의 입장이 아닐까 싶다.
다른 교수들의 신앙의 여정, 그리고 과학과 신앙에 대한 견해들을 살펴보는 일은 흥미로왔다. 물론 별로 깊이가 없는 글들도 있었다. 전형적인 간증집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읽어보시라 권한다. 그리고 신앙과 과학의 이슈들에 주된 관심을 갖는 분들은 이 책에서 여러 재밌는 글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물론 논의의 시점이 벌써 십년이 넘어 식상한 구석이 있을수 있겠다.
그런데 이 책, 절판이다. 책 이미지도 인터넷에 없다. 그러나 중고나 도서관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
열독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