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아무도 귀기울여주는 사람이 없을 때.

별아저씨의집 2019. 12. 19. 13:34



아무도 귀기울여주는 사람이 없을 때.

종종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직장 동료도 그리고 신앙 공동체에도 다들 자기 말만 할뿐 아무도 내게 귀기울여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면 더더욱 소리를 질러대며 내말을 들어보라 하지만, 사실은 맘속에 있는 얘기는 하나도 할 수 없는 법입니다.

부모에게 무심하게 대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이 그렇고 집에 와서 철저히 가장의 태도를 드러내지만 내면은 외로운 아버지들이 그렇고 커리어가 끊긴 채 가사노동에 파묻혀 종일 일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듯 느끼는 어머니들이 그렇습니다.

누구는 삭발을 할 수 밖에 없고 누구는 높은 탑에 올라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한계를 넘어 애써 자기 목소리를 내려합니다.

반대로 무슨 헛소리를 해도 졸개들이 추종하며 광란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허물어져가는 가부장제를 붙들고 그걸 종교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들이밀며 남편보다 목사를 사랑해야 하네, 빤쓰를 내려야 하네, 하는 자들도 있고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지만 삭발쇼를 하고 금식쇼를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말을 하는 직업을 갖다보니 항상 많은 사람들이 내 말에 귀기울여주는데 익숙합니다.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밖에서도 내말을 듣겠다고 초청하고 자리를 만들고 모여서 경청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합니다.

뭐라도 된듯 열심히 떠들며 다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상황에 익숙하다 보면 종종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을 잊게 됩니다.

외국 생활 10년이 그랬습니다. 아무도 내가 하는 얘기에 귀기울이지 않는 상황이 일상이던 시절말입니다. 한국어는 수준급이라도 외국어는 그렇게되기 어렵습니다.

언어뿐 아니라 외국인에다가 공유하는 문화가 적은 낯선 자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누군가 예의바르게 질문을 해 주기도 하지만 그런 질문은 나에게 귀를 기울이기보다 예의상 던진 말이라는 것이 곧 자명해 집니다.

오랜만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학회에 와서 며칠 지내다 보니 그 긴 터널 같았던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누군가에게 귀를 기울인다는 건,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고 궁금해 하고 알고 싶다는 건 그만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길 원하고 누군가와 대화가 통하길 원하고 누군가와 같은 생각 같은 감정 같은 경험을 나누며 뭔가 연결되길 원하는 것은 사랑받고 싶은 것입니다.

인간을 규정하는 가장 깊은 내면의 특성은 어딘가에 속하고 누군가와 사랑을 하는 연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남녀간의 사랑일 수도 친구간의 우정일 수도 학자들 간의 연합일 수도 있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잠시 들어온 카페에선 사람들이 수다를 떱니다. 가족과 친구와 동료는 무언가를 주고 받고 웃고 목소리를 높이고 다양한 표정으로 대화합니다.

누군가 내 말에 귀기울여 주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때 해야할 일은 목청껏 외치는 일이 아닙니다. 그때는 바로 자기 말에 귀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떠올려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내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그들에게 경청해 보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본의아니게 너무 많이 알려졌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다 떠밀려 하는 일, 그리고 신나게 하는 과학강연, 손가락가는 대로 쓰는 글, 그 모든 것들이 종종 나 자신을 속이는지도 모릅니다. 내면을 들여다 보면 얊팍하고 이기적이고 참을성 없고 욕망에 휘둘리는 자신인데, 겉으로 보면 말짱하고 신사적이고 교양있고 뭐라도 된듯 의기양양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자기자신에게 속는 일입니다. 사기를 당하거나 보이스피싱을 당하거나 전세금을 날리거나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일은 자기 자신에게 속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속으면 그 어느 누구도 알수 없기 때문입니다.

20대 중반부터 기도했던 한가지 내용은 자신에게 속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100점을 받게 해달라거나 1등하게 해달라거나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는 기도는 더이상 감히 할 수가 없지만 분명히 할 수 있는 기도는 바로 나 자신에게 속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화려한 무대에서 빛나는 조명을 받으며 대중 앞에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에 우쭐대거나, 칠흙같은 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우주적 무게 앞에서 나락없는 절망감에 빠져 들거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휩쓸려 방황하거나,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맞닥뜨려 한없는 분노가 미칠 때, 나 자신에게 속지 않도록 해 달라고, 그때 무릎을 꿇어 기도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왠지 그 기도를 해본 지 오래된 듯 합니다. 당신이 없는 것 같을 때 당신을 느낄 수 있는 힘은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요. 아무도 내게 귀기울이는 사람이 없을 때, 그때 당신은 어디 계시는 걸까요. 어쪄면 바로 그것이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이유가 아닐까요.

종종 길을 잃습니다. 이 낯선 곳에 내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지만 길을 잃는 걸 더이상 두려워 하지는 않습니다. 목적지에 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걷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방향을 잃은 길이라 하더라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빗길을 다시 나서야겠습니다. 저녁 약속 시간이 다가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