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2020년 새해 첫날

별아저씨의집 2020. 1. 1. 16:56
새해 첫날 문재인의 [운명]을 반쯤 읽었습니다. 어찌보며 인생은 우연한 만남이 이끌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과정은 운명입니다.

아무래도 변호사 이야기가 책에 많이 나오니 과거에 사법 정의가 얼마나 형편없었나 목격하게 됩니다. 오늘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많이 달라졌지만 지난 해 여러가지 검찰발 사태들과 비교해 보면 여전히 남아있는 사법 불평등과 부정이 오버랩됩니다.

2020년, 만으로 50세가 되는 해입니다. 생일까지는 아주아주 멀었기 때문에 여전히 40대라고 주장하겠으나 계절이 좀 바뀌면 어느덧 코앞에 다가올 것입니다.

100세 시대라는데 반백세의 고개를 넘는 시점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많이 생각하는 개념은 '사회적' 과학자입니다.

엉뚱하다 싶지만, 사회적 기업, 사회적 민주주의, 사회적 복음, 심지어 사회 생물학이 있듯이, 과학자도 '사회적' 이란 말을 붙일 수 있습니다.

CBS나 극동방송 같은 걸 보면 축복받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 성공하고 축복받은 사람들 이야기 말입니다. 자료조사를 하다가 매우 오랜 만에 보게된 그런 영상들을 접하며 든 생각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입니다.

나무랄 것은 없습니다. 가난하게 성장했다든지, 어렵게 공부를 했다든지, 역경을 딛고 이겨냈다든지,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고백하든, 훌륭한 스승을 만나 이끔을 받았다고 고백하든, 인재를 알아보는 복지가를 만나 도움을 받았다고 고백하든 스토리는 다들 비슷합니다.

아름답고 교훈되는 이야기입니다. 개천에서 용이나거나, 개인의 역량이 엄청나게 발휘되거나 놀라운만큼의 부와 성공을 쥐게 되거나, 누가 들어도 부러워할 만하고 참 대단하다하는 생각이 드는 스토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개인적이다.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경계를 넘어 그 무언가가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그 개인의 성공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냥 그 개인의 성공이 스토리의 전부인 것일까? 남들이 모두 추앙하고 모범을 삼아야 할 성공담이란 말일까? 그런 생각들 말입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통계적으로 따져보면 남들에게 부러움을 살 정도로 성공 스토리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숫자는 지극히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노력을 하지 않았다거나 도전을 하지 않았다거나 준비가 되지 않았다거나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거나, 그런 이유들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고 도전하고 준비해 왔던 뛰어난 사람들도 실패하거나 고만고만하거나 역사에 남을 만큼 위대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100명 중에 1명, 혹은 많아야 10명 중에 1명이 그런 범상치 않은 삶을 살게 될 뿐입니다.

따져보면 똑같은 원인들이, 가령, 재능, 노력, 환경이 같다고 해도 한 사람의 생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누군가의 인생이 그렇게 위대해지는 것은 우발적인 면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시각입니다. 그들을 품어낼 수 있는 지성과 마음입니다.

과학자는, 어쩌면 가장 개인적인 성공담을 가진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과학이라는 학문이 워낙 개인의 능력이 중요하게 평가되는 학문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과학자들은 자기 학문에만 집중하고 사회나 국가나 세계나 지구의 환경문제나 심지어 자신의 재산을 증식하는 제테크에도 무관심하거나 형편없는 관점을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회적 과학자. 과학을 하지만, 자연의 기본 원리를 찾아내려 공부하고 우주를 연구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한 관심과 전망, 비판적 시각, 인간의 삶에 대한 감수성과 존중, 인문학적 성찰과 반성을 함께 붙드는, 더 나아가서 과학의 사회적 책임 뿐만 아니라 과학자의 시각으로 과학과 무관해 보이는 사회현상에 대한 지성적 성찰을 함께 할수 있는 그런 과학자 말입니다.

사실, 과학을 가장 잘 하는 과학자는 우리가 사는 사회나 인류의 문제, 사회적 목소리에 관심도 없고 심지어 연구비를 따기 위해 연구정책이나 제도까지도 신경쓸 필요없이 보장된 연구비로 자기 연구만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만 할수 있다면 그래서 훌륭한 과학자가 될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일겁니다.

그러나 한편, 그런 과학자들이 심지어 노벨상급 과학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고급스런 만찬이 나왔지만 뭔가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는 듯한 느낌처럼 말입니다.

연구비나 연구논문 숫자 등에 끌려가지 않고 훌륭한 연구를 해내는 과학자가 된다는 것도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너무나 사적인 삶의 전망을 넘어 함께 사는 사회와 삶의 의미를 품어낸다는 건 훨씬 더 어려워 보입니다. 현장 과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아예 사회적 삶으로 방향을 돌리면 모를까 말입니다.

누군가의 필요를 채운다는 것, 나의 필요를 채운다는 것, 누군가의 삶을 조망하고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 나의 삶을 조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값지게 느낀다는 것. 나와 타자의 사회에서 그 경계를 허무는 사회적 삶은 정말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은 어떤 결과이기 보다는 걸어가는 과정입니다. 수십년 뒤에 내가 성취할 그 무엇을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뜻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과정에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2020년 새해, 어쩌면 새로운 10년, 아니 앞으로 반백세의 삶을 시작하는 첫날, 자신에게 속지 않고, 사라질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영원한 것 아름다운 것 그리고 사랑할만한 것들을 향해 걸어가자는 마음을 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