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5월 12일 ....

별아저씨의집 2019. 5. 30. 22:43

별로 방해받지 않고 책 읽으며 토요일을 보낼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유학+포스닥 시절 토요일에 참 책 많이 읽었는데 한국와서 10년 쯤 내공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1주에 1권은 읽어야 영혼이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는데 말입니다.

 

이번 봄부터 토요일에는 바빠도 책읽기에 시간을 투자하자고 다짐하고 보내고 있습니다. 쌓아둔 책들 하나씩 꺼내 읽는 재미를 만끽 합니다.

 

인류원리로 유명한 존 베로의 책을 꺼내들었습니다. 천체물리를 하기도 했지만 수학자인 그가 풀어내는 무한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워 홀딱 읽어버렸습니다.

 

대학 시절에 수학과에서 패러독스 과목을 청강하며 가졌던 탐구심이 다시 부활하는 듯 합니다.

 

무한은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잠재적 무한과 현실적 무한으로 구분하던 시절도 있지만, 수학에서 무한이 인정되는 지금, 3가지 차원의 무한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수학적 무한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연수에 1을 더하면 더 큰 수가 됩니다. 계속 1을 더해가는 방식으로 우리는 무한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가능성으로 혹은 이론으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무한은 추상적 무한이라고 불러 볼 수도 있겠습니다.

 

둘째는 물리적 무한입니다. 경험적 무한이라고 할까요. 물리적 우주에 실제로 존재하는 무한을 가리킵니다. 가령 블랙홀을 예로 들수 있습니다. 질량은 태양의 66억배인데 크기가 0이라면 밀도가 무한인 물리적 실체가 됩니다. 빅뱅도 마찬가집입니다. 이런 무한은 물리학에서 특이점이라고 부릅니다. 과학으로 정의되지 않는 그러나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무한이라고 볼 수 있지요.

 

세째는 초월적 무한입니다. 인간의 생각할 수 있는 그리고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는 무한입니다. 보통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한입니다.

 

과학자들은 물리적 무한에 관심이 많습니다. 수학적 무한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들이 우주에 실재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으로 탐구가능한 무한은 과학의 탐구주제입니다.

 

물리학이 마주치는 특이점이나 무한은 과학의 언어인 수학이 별로 신통하게 작용하지 못하는 한계 상황을 알려줍니다. 다시 말하면 물리적인 무한은 불가능하지만 다만 수학적으로 무한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그 점은 과학이 더 발전해야 할 프론티어가 됩니다. 가령 여기서 그러니까 이 지점은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고 바로 신의 영역이다 라고 한다면 지적설계론처럼 되어 버리는 겁니다. 과학자가 거기서 멈추면 게으르다고 비판받는 것이죠.

 

그러나 존 베로는 흥미로운 주장을 합니다. 물리적인 무한이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물리적 무한이 오류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물리적 무한을 생각해 볼때, 누구나 던지는 질문은 우주는 무한한가? 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주가 무한하다면 꽤나 풀기 어려운 패러독스들이 생겨납니다.

 

그 중 하나는 무한 복제 역설입니다. 우주가 무한하다면 발생 확률이 0이 아닌 일은 무한히 자주 일어나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확률이라고 해도 거기에 무한을 곱하면 무한이 되기 때문이죠. 무한한 우주의 어디선가 나와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나의 복제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것도 무한히 많은 나의 복제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수학적 무한 개념입니다. 이 패러독스를 피해갈 몇가지 길이 있기도 하지요.

 

사실 물리적 우주가 무한한지 아닌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관측가능한 우주는 유한하지만 그 너머에 무한한 우주가 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물리적 무한을 다루기 위해서 물리적인 데이타를 사용할 수 없다면 결국 수학적 무한을 비롯한 다면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흥미로운 주제이지요.

 

책을 읽다보니 인간의 유한성이 오버랩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을 탐구하는 인간의 지성은 인간을 유한성 안에 가두어 두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주는 넓고 공부하고픈 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