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제임스 스미스 강연

별아저씨의집 2019. 5. 30. 22:39

제임스 스미스의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종강예배라 찬양을 하다보니 캠퍼스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찬양을 참 오랜만에 한다 싶었습니다. 종종 가야할 듯 합니다.

 

제임스 스미스는 전형적인 미국인 스타일로 그러나 철학자답게 분석적인 방식으로 꽤나 긴 문장을 구상하며 개념적인 깊이를 담아 다채롭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원고는 이미 써두었을테니 문장 하나하나가 이미 명료하고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었을터라, 들으면서 책을 읽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구어적 느낌을 살려 풀어내는 스타일이 전형적인 (강의 잘하는) 학자들의 강연다왔습니다.

 

You are what you love라는 제목의 강연이었지만 제 느낌에는 you are what you do였습니다. 우리가 욕망하고 사랑하는 그것이 바로 내가 누구인지 결정한다는 의미였다면, 그의 강연은 사실 내가 매일 하는 일과 습관과 의례나 행동들 즉 ritual들이 나를 만들어간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십만이 모이는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미국국가가 울릴 때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국가를 부르는 행위,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형식들은 미국적 국가주의를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입니다. 그것이 고취되는 방식은 구체적인 내용을 가르치고 토론하는 지적 방식이 아니라, 그저 ritual에 참여하며 가슴으로 느끼고 하나가 되는 심정적인 방식입니다.

 

그는 대학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종교적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사랑해야 할지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사랑하고 욕망하고 숭배하고 성취하도록 가르치는 곳이라는 면에서 종교적입니다.

 

교수들은 가르침과 연구, 두가지를 대학의 역할로 보지만 학생들은 그보다 훨씬 넓은 스펙트럼으로 대학을 경험합니다. 기숙사 생활과 선후배 관계, 동아리, 식당, 스포츠 등등, 사실 수업시간을 넘어 훨씬 광범위한 영역에서 뭔가 ritual들이 이루어집니다.

 

학생들은 대학에서의 삶을 통해 성공하는 법, 욕망하는 법, 사람들을 자기목적을 위해서 이용하는 법 등을 배우며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대학은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욕망과 성공과 성취를 배우는 곳이 대학이라면 이미 대학은 직업학교일 뿐이며 더군다나 단지 성취를 가르치는 직업학교일 뿐입니다

 

그러나 대학은 성취보다는 가르침을 위해서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무엇을 욕망해야 할지, 무엇을 사랑해야 할지,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대학에서 보고 배우고 연습해야 합니다.

 

미국대학을 너무 자세히 분석해서 한국의 상황과는 좀 거리가 있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캠퍼스 종강예배 강연으로는 적합하다 싶었습니다. 학생들은 새로운 내용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사실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결론은 조금은 밋밋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무언가를 욕망하는 존재들이고 그 깊은 내면에는 창조자를 욕망 혹은 추구하게 되어있는 존재들입니다. 대학은 바로 우리가 무엇을 사랑해야 할지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고민하고 배우고 찾아야 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맺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맺는 관계들로 규정되고 우리가 하는 일로 규정됩니다. 제임스 스미스는 관계의 문제는 다루지 않았고 우리가 하는 일들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결국 내가 욕망하고 사랑하는 일들을 우리는 매일 행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을 위해 매일 연습하고 노력하고 투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따라 규정되고 정의되고 만들어집니다. 결국 매일의 삶에서 내가 하는 의례와 의식과 습관과 반복되는 일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셈입니다.

 

제임스 스미스의 힘은, 아마도 그의 주장보다는 그 주장을 끌어내는 분석적인 틀일 것입니다. 미국 문화를 분석해내는 그의 관점이 주는 설득력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이나 믿는 것에 의해 정의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선한 가치를 알고 있고 신을 믿는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명제적 동의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매일 하는 일들에 의해 정의됩니다. 선을 실행하고 내가 믿는 가치를 위해 한 걸음을 내딛고 사랑하는 것들을 즐기는 그 일상이 바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합니다.

 

작년 베리타스포럼 강연 때도 했던 이야기지만 믿음은 그 내용의 논리성이나 의심의 정도 등을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로 헌신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믿는다면 그 내용에 대한 이해의 깊이나 수용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 믿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바로 믿음의 의미입니다.

 

어제 새벽까지 글을 쓰느라 잠이 부족했던지 강의 시간에 깜빡 졸음이 오기도 했지만 좋은 기회였습니다. 학생들 질의응답을 다 듣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기는 하군요.

 

제임스 스미스의 책들을 훑어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