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창세기이니, 창세기는 우주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알려주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주의 기원, 지구의 기원, 생명의 기원을 다루면서 이 세상이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어떤 과정으로 어떤 순서에 의해 어떤 기간동안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다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자연사의 연대기나 우주의 형성과정이나 지구의 나이나 생명체들의 창조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과학책도 아니고 자연사의 정보를 제공하는 책도 아닙니다.
창세기는 모세의 러더십 아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를 출애굽시킨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주어진 책입니다.
창세기의, 특히 1-2장의 핵심메세지는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의 관계를 다룹니다
긴 세월동안 노예의 삶을 살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와 바벨론을 비롯한 고대근동의 신화들에 익숙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태양과 달을 비롯한 자연이 신적 존재들이고 신들은 인간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창조했습니다.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는 바로 그 신 중의 하나였고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그의 권력은 고대근동 신화들에 의해 정당화되고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10가지 재앙을 통해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한 이스라엘 민족은 신적 존재로 여겼던 자연이 모세에게 부여된 힘에 의해 장난감처럼 이용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신으로 여겼던 자연을 통제하는 모세, 그 모세를 보낸 여호와는 도대채 누구란 말인가?
결국, 그들은 파라오의 장자, 신의 아들이 죽임을 당한 날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도대체 우리를 인도한 신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가지고 말입니다.
모세를 통해, 아마도 그 당시에는 구전으로 주어진, 창세기 1장은 고대근동 설화와는 완전히 다른 계시를 전해줍니다.
똑같은 질문이 포로시대 이후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주어집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고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 앞에 모세의 전승이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창세기가 탄생합니다.
그들이 신인줄 알았던 태양과 달과 바다와 그 모든 자연의 대상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창세기 1장은 심지어 태양과 달이라는 표현도 쓰지않고 대신에 두개의 광명채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신으로 여겼던 그 모든 자연은 피조물의 지위로 격하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은 생물학적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니라 혹은 기적적으로 창조했다는 식의 창조의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존재, 하나님과 교제하고 언약관계를 맺을 존재,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로 창조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고 그 인간에게 주신 계명이 창세기 1장 28절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혹은 대리해서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다스리라는 임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문화명령이지요.
즉, 고대근동에서는 신적 존재로 여겼던 자연, 태양과 달과 바다와 그 모든 것들이 신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의 통치 아래 놓여있는, 그리고 인간의 도움을 통해 보존되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집트와 바벨론을 포함한 고대근동신화에서는 자연이 곧 신들이고 인간은 그 신들의 노예였다면, 창세기는 그와 대조적으로 자연을 피조물에 불과하고 인간은 신적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자연은 인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의 관계, 혹은 그 위상을 알려주는 것이 창세기 1장의 목적입니다. 그것은 이집트의 세계관, 자연이 신이고 인간은 노예라는 그 지배적인 사고에 착취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는 놀라운 신학적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신과 같은 존재들이며 오히려 자연을 다스리고 보존해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인도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한 창조주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창세기의 목적입니다.
창세기는 어떤 메카니즘을 사용하여 어떤 과정이나 순서를 거쳐서 우주가 창조되었나를 설명해주는 책이 아닙니다. 창세기 저자는 그런 내용에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창세기는 언제 혹은 얼마나 긴 기간동안 어떤 재료를 사용하여 무엇이 창조되어는가와 같은 과학적 질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창세기를 통해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알려주려는 내용이 아닙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창세기를 읽으며 창세기가 우리에게 주어진 (to us)책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럴리가요. 우리를 위해서 주어진 (for us) 책인 것은 분명하지만 창세기는 1차적으로 출애굽을 거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책이 어떤 목적으로 주어졌는지, 그리고 그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이지 주목해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의 의도를 넘어 과학을 읽어내려고 하면 무척이나 심각한 오해에 빠지게 됩니다. 창세기를 과학교과서처럼 읽다보면 고대근동지방 사람들이 가졌던 상식을, 가령 궁창 위에 물층이 있었다와 같은 내용을 성경이 가르치는 과학적 정보로 오해합니다. 성경에는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표사된 부분도 있지요. 그 구절을 가지고 천동설을 주장한다면 400년 전의 오류를 반복하는 겁니다.
결국 창세기를 어떻게 읽을까의 문제입니다. 다음 주에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서 콜로퀴움이 열립니다. 전성민 (Sungmin Min Chun) 교수를 모시고 창세기를 다룹니다. 구약학자에게서 듣는 창세기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울 것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참여하시기를 권합니다. 과신대 정회원들은 나중에 따로 동영상을 볼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현장만큼 분위기를 전하긴 어렵겠지요. 수강신청 링크를 달아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