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2017년 소망

별아저씨의집 2017. 1. 1. 23:43


올해도 어느새 새해 첫날이 슬쩍 다가왔습니다.

매년 세계 각처에서 각각 시작하는 첫날이 다르듯 1월 1일이라는 건 우리가 정해놓은 달력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한 해의 길이를 정하고 매번 새로운 시작을 맞는 건 감사한 일입니다. 비록 그 길이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주기를 정확히 맞추지 못한다 해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한 해가 항상 감사한 이유는 지나간 한 해가 매번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올해에는 꼭 성취하리라는 부푼 마음을 갖는 건, 비록 내년 첫날에 돌아보는 올해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게 판명난다 해도 여전히 유효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집을 사거나 훌륭한 논문을 몇편 쓰거나 책을 내거나 어딘가를 여행하거나 하는 그런 바램이나 소망도 물론 좋은 것일 겁니다. 돌이켜보면 십대에도 매년 새로운 소망을 품었고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에도 그랬습니다. 죽음을 앞둔 노년의 마지막 몇 해에는 어떤 소망을 품을까요? 비슷한 내용일까요?

소시민적이고 개인적인 복을 넘어 나는 과연 이 땅에서 무엇을 소망하는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해봅니다. 남성중창팀이 특송을 합니다 좋아하는 찬송가가사 2절에 감동이 밀려옵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오래전 선지자 꿈꾸던 복을
찬송이 하늘에 사무치네

매우 정치적인 가사입니다, 매였던 종들이 해방된다는. 선지서를 읽을 때 마다 독재와 폭압의 왕권 밑에서 백성의 아픔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선지자들은 과연 어떤 꿈을 꾸었을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것은 단지 한 개인이 잘먹고 잘살게 된다는 복음은 아니었습니다. 메시야를 오래동안 기다렸던 예수살렘 성전의 한 노인처처럼, 마른뼈가 살아나 군대가 되는 환상을 보았던 에스겔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건 위대한 소망입니다.

그의 통치에 대한 반역으로 드러났던 대표적인 예인 병들림과 귀신들림을 고치며 예수가 선포한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단지 한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넘어섭니다. 개인의 신앙고백은 단지 출발선일 뿐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명백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나 교단에도 그의 통치는 보이지 않고 죄된 본성을 가진 인간의 정치술수만 보이는 듯 합니다.

결코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의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소망하는 건 대단한 믿음이 아니고선 불가능합니다. 내 안의 욕심과 정욕들이 다스려지고 그분의 은혜로 내 영혼이 감화하고 세월호 가족같은 억울한 자들의 애통이 위로받고 죄없이 고통을 당한 자들이 신원되고 매었던 종들이 돌아오는 그런 나라를 당신은 정말 믿습니까? 오래 전 선지자들이 꿈꾸던 날이 오리라 정말 믿을 수 있습니까?

나의 기득권을 위해 종교에 의지하고 신을 이용한다면 종교는 아편입니다. 그러나 성서를 통해 약속된, 예수가 가르친 나라는 그런 아편이 아닙니다. 그 나라의 도래를 믿는 것은 단지 영혼 구원을 믿는 일보다 혹은 내 영혼이 천국에 간다는 걸 믿는 일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나라는 예수가 말했듯 오늘 여기에 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새해 첫날의 소망과 달리 나는 또 한해를 내 욕심대로 살 듯 합니다. 십일조도 하고 여기저기 헌금도 하고 나름 검소하게 살겠지만 그래도 철저히 나와 가족을 위해 살 것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끝없이 욕망에 흔들릴 것이고 용서하기 보단 비판하고 정죄하고 살 것 같습니다. 나는 신이 아니고 신을 배반할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 오호로 통재라 하며 죄된 본성과 주되심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살 것 같습니다. 작년에 비해 얼마나 더 성숙해질지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노력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비관적일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나는 믿고 소망합니다. 2017년이 아니더라도 이 땅에 그의 나라가 올 것을 소망합니다. 옛 선지자들이 꿈꾸던 그 꿈을 약간 그러나 강하게 공유합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하고 찬양할때 차오르는 벅참과 은혜가 있습니다.

올 한해 값없이 주신 그 은혜와 그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잊지 않기를, 그리고 잃지 않기를 새해 첫날 마음을 모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