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무크따 이야기] 4번째 - 과학자는 부활을 믿으면 안된다고?

별아저씨의집 2016. 3. 26. 11:53
#무크따_이야기 네번째

과학자는 부활을 믿으면 안된다고?

부활절을 앞둔 토요일입니다. 매년 이맘 때면 부활 전 3일의 시간을 생각해 봅니다. 그 어두움과 적막함과 악의 무게가 세포 하나하나를 짓누르는 죽음의 시간을...


과학자가 어떻게 부활을 믿을수 있냐고요? 글쎄요. 과학자가 부활을 믿으면 안된다는 태도가 어찌보면 상당히 종교적인 태도같습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부활을 믿는 것은 창조를 믿는 것과 예수의 성육신을 믿는 것과 함께 신앙의 핵심을 이룹니다.

물론 부활에 관해서 다양한 형태의 믿음이 존재합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하니 복음서는 소설이다, 예수는 사실 죽은 게 아니라 살짝 기절한 거다, 등등 말이죠.

분명한 것은 초대교회 공동체에는 예수의 부활을 경험하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진술이 모든 세부사항에서 일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런 경향은 어떤 역사적인 사건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빈무덤과 그 공동체의 경험과 진술, 그리고 순교로 이어지는 부활의 믿음에 대한 헌신은 부활의 역사성을 매우 강하게 제시합니다.

여기서 부활의 증거를 제시하거나 논박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한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몸의 부활이라는 개념은 과학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걸까요?

부활이 가능한가를 과학으로 밝힐 수 없다는 건 과학자들이 동의할 것입니다. 물론 의학적으로 죽은 사람이 죽음에서 깨어나 의사들을 당황케 하는 일이 어쩌다 신문기사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건 일상적인 경험이고 과학적 결론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무생물이 되고 무생물에서 생명체가 나올 수는 없다는 게 과학의 시각이니까요.

그런데 같은 잣대를 최초의 생명체에 적용하면 어떨까요? 지구에서 첫 생명체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옛날 사람들은 창문을 꼭꼭 닫아 둔 집안에서 초파리가 생기는 걸 보고 자연발생설을 믿었습니다. 말 그대로 생명체가 무생물에서 자연적으로 생겼다는 겁니다. 하지만 자연발생설은 폐기되었습니다. 무생물에서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만들어 질 수는 없다는 과학적 결론때문입니다.

문제는 최초의 생명체는 자연발생설을 피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46억년 전 지구가 만들어질 때 생명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명체가 탄생하고 그 이후 생명체들의 흔적이 이어져 내려옵니다. 무생물의 시대에서 생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죠. 무생물에서 생명이 나왔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 시대의 자연 조건이 다르다는 등 차이점이 많지만, 기억할 점은 무생물에서 생물이 나온다고 과학자들은 믿는다는 것입니다.

왜 믿는다는 표현을 썼을까요? 그것은 최초의 생명체가 어떻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지 과학으로 엄밀히 밝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밀러의 실험 정도로는 택도 없습니다. 무생물에서 생물의 시대가 시작되려면 빅뱅이 서너번은 일어나야 한다고 생물학자들은 농담하곤 합니다.

'최초의 생명체의 발생과정을 과학으로 밝힐 수 없으니 창조주가 기적적으로 만든 것이다'라는 견해를 제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과학자들이 무생물에서 생명이 탄생했다고 믿는다는 점, 그 과정을 과학으로 잘 설명하지 못해도 지구역사에서 무생물과 생물의 시대가 나눠지고, 그 사이에 생명이 탄생했다고받아들인다는 점을 지적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연발생설은 말도 안된다는 과학적 견해와 첫 생명체의 탄생은 배치되는 면이 있음을 지적하는 겁니다.

부활은 무생물에서 생명체가 탄생한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도대체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는가를 묻는 우리는 동일하게 도대체 어떻게 무생물 시대에 생물이 살기 시작했나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최초의 생명체가 무생물에서 탄생했다고 과학자들이 믿는 것처럼,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부활에 대해서도 믿을 수 있습니다.

인류가 수십억년 전 지구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한 과정을 직접 목격하진 못했지만 그 전후의 다양한 증거들을 통해서 무생물에서 생명이 생겨났다고 받아들이듯,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지만 예수의 처형 이전과 부활 이후의 다양한 증거들을 통해 예수의 부활을 받아들입니다.

부활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건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다면 믿음이 필요없습니다. 그것은 지식이 되어버리고 지식은 받아들이면 됩니다. 우리는 과학으로 증명되어야만 된다는 계몽주의의 산물인 증거주의에 푹 빠져있습니다.

내 아내가 나를 사랑하는 건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물론 많은 증거를 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자신을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속이고 있거나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내의 사랑을 믿습니다. 사랑은 증명되지 않습니다.

부활을 믿는 건, 무생물이 된 죽은 몸이 다시 생명체가 될 수 있느냐를 과학적으로 논쟁하고 탐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육신한 예수와 그의 대속과 부활을 믿는 건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그의 통치를 회복시키는 그 원대한 구속의 계획에 감격하고 그 일부가 되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단지 철학적 논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내어 걸고 예수가 걸어간 죽음의 길을 걷는 희생을 요구합니다. 예수의 도, 그 고난과 희생의 길을 우리가 조금이나마 흉내낼 수 있는 것은 예수의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