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우종학 교수의 별 아저씨 이야기] 태양 120억 개를 삼킨 블랙홀

별아저씨의집 2015. 3. 14. 18:33

[우종학 교수의 별 아저씨 이야기] 

국민일보 15/03/14


태양 120억 개를 삼킨 블랙홀


얼마 전 흥미로운 과학 뉴스가 흘러나왔다. 128억 광년 떨어진 먼 우주에서 초대형 블랙홀이 발견되었단다. 태양 120억개에 해당하는 막대한 질량을 가진 블랙홀 소식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누가 발견한 것인지 논문을 찾아보니 중국 베이징대의 교수가 주 저자였다. 오랜 지인이라 이메일로 질문을 던졌다. 발견 과정에서 혹시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별 응답이 없는 대신 질량 측정과 관련된 질문에는 답을 해 왔다. 


블랙홀 질량을 정확하게 측정하기는 어렵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값에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번 블랙홀의 경우도 다른 측정법으로 계산하면 질량이 태양 질량의 107억배로 나온다.

그림. Arp 220 은하의 합성 그림. Copyright: 나사/JPL-칼텍


블랙홀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질량 측정이다. 물질을 끌어당기는 블랙홀의 중력이나, 블랙홀을 빠져나올 수 없는 경계가 되는 ‘사건 지평선(事件 地平線)’ 밖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총량이 모두 블랙홀 질량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그가 했던 질문이 기억났다. 블랙홀 질량측정법이 다양하게 제시되던 그 무렵 200개가 넘는 블랙홀 질량을 연구한 내 논문을 읽은 그는 이메일로 몇 가지 질문을 보내 왔다. 그 시절에는 200여개의 블랙홀이 가장 큰 표본이었고, 그래서 그 연구 결과는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유쾌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과연 블랙홀은 얼마나 많을까. 우주에는 1000억개의 은하가 존재한다. 그중에서 다수의 은하들이 블랙홀을 하나씩 소유한다고 생각된다. 은하 중심에 자리 잡은 블랙홀의 질량은 보통 태양 질량의 100만배가 넘고 100억배까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거대 질량 블랙홀 혹은 거대 블랙홀로 불린다. 

이번에 발견된 블랙홀이 관심을 끈 이유는 두 가지 특징 때문이다. 우선 우주 나이가 10억년도 안 되는 초기 우주에서 발견되었다는 점, 그리고 기존에 발견된 블랙홀들보다 질량이 더 크다는 점이다. 이 블랙홀은 과연 어떻게 태양 120억개를 삼킨 듯한 거대한 질량을 갖게 되었을까. 

블랙홀은 주변에서 공급되는 가스를 흡수하며 성장한다. 하지만 먹이를 무한히 공급해주어도 블랙홀이 성장하는 속도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가스를 흡수하는 동시에 일정량을 에너지 형태로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출되는 에너지는 엄청난 압력을 발생시키는데, 구조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압력이 블랙홀의 중력보다 클 수 없다. 흔히 ‘에딩턴 한계’로 불리는 이 제약조건 때문에 무한한 먹이가 있어도 블랙홀은 다이어트를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트림을 하면서 먹어야 하기 때문에 블랙홀이 체중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나 할까. 

문제는 초기 우주에서 발견되는 블랙홀들이 너무 과체중이라는 점이다. 에딩턴 한계를 고려하면 10억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블랙홀이 태양 질량의 100억배 가까이 체중을 불리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과체중 블랙홀이 계속 발견되면서 이 문제는 블랙홀 연구자들이 풀어야 할 흥미로운 과제가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최근 결과는 블랙홀이 에딩턴 한계를 넘는 에너지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블랙홀이 매우 효과적으로 트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주 칠레에서 열린 학회에서도 블랙홀 주변의 가스가 난류현상을 갖는다면 에딩턴 한계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논의되었다. 블랙홀이 에딩턴 한계를 넘어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면 블랙홀 과체중 문제는 해결될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블랙홀 연구는 종종 기사화된다. 작년 가을에는 블랙홀이 존재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가 소개되기도 했다. 블랙홀을 직접 관측하는 연구자들에게는 황당한 뉴스였지만 뉴스를 접한 대중은 블랙홀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했다. 사실 과학 뉴스에 등장하는 내용은 정설보다는 확증되어야 할 새로운 도전인 경우가 많다. 한두 사람의 논문 한두 편이 바로 과학계의 정설이 되지는 않는 법이다. 

다양한 검증과 분석을 통해 새로운 증거와 이해가 쌓이면 드디어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진다. 마치 씨줄과 날줄을 엮어서 새로운 옷을 만들 듯 과학자들의 연구가 하나씩 쌓이면서 점점 더 명료하게 우주를 읽어내는 과정이 바로 과학이다. 그 과정을 통해 베일이 벗겨진 우주의 새로운 얼굴을 마주하는 건 신나는 일이다. 

과연 블랙홀의 과체중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까. 태양 질량의 120억배보다 더 무거운 블랙홀도 존재할까. 블랙홀 질량에는 한계가 있을까. 창조주의 명작품인 블랙홀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과 도전을 줄 것 같다. 

우종학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