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기독교 서적

월버포스의 전기를 읽다 1.

별아저씨의집 2008. 7. 25. 15:03
나는 별로 영국의 역사에 대해 괜찮은 통관을 갖고 있지 못하다. 월버포스라는 인물이 영국의 노예제도와 관습들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한 기독교인 정치인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가 활동한 무대에 대한 시대적 배경과 구체적 상황들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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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코스타에서 사온 책들 중에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월버포스'라는 책을 읽고 있다. 18세기 노예제도와 관련된 참혹한 상황들은 인류의 역사를 비참하게 한다. 몇 백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영국의 사회상의 부패함을 보는 것은 엮겨웠다.

그러나 반 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처음 주목했던 점 하나는 월버포스의 회심에 대한 얘기였다.

그의 회심은 제노바로 가는 마차 여행에서 시작된다. 어머니와 누이를 데려다 주고 몇달 후 다시 데리러 오는 그 긴 여정을 그는 아이작 밀러라는 사람과 함께했다. 그와의 긴 토론을 통해서 결국 월버포스는 기독교 신앙에 지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이것이 그의 회심의 시작이었다.그 후 월버포스는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지적성실성 앞에서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적으로 동의하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따라야 한다는 뜻이었다.그리고 그것은 정치인인 자신의 삶의 커다란 변화를 요구했다. 그는 그 댓가를 치루어갔다.

그 중에서 가장 컸던 것은 그의 정치적 동지이며 젊은 나이에 당시 영국의 수상의 자리에 올랐던 피트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정치인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월버포스는 피트에게 자신의 세계관이 변했음을 알리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월퍼보스가 갖게된 신앙은 그저 정치인으로서의 성공을 위해 도움이 되는 신앙이 아니었다. 그에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삶의 전영역의 변화를 의미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일들이 분명히 거기에 포함되었다.

드라마틱한 회심을 경험한 적이 없는 나는 회심하는 사람들의 이런 변화를 보면 무척 놀랍다는 생각을 한다.드라마틱한 회심은 뭔가 감정적이고 이벤트적인 면에서 드라마틱한 것이 아니다. 삶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변해버려 이제껏 살았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도록 추동하는 그 힘. 그것이 바로 회심을 드라마틱하게 하는 원인이다.

아이러니칼 한 것은 그렇게 정치인의 생명을 내놓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했던 월버포스에게 하나님은 다시 정치인의 길을 보여주신다. 그것은 물론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운 이기적인 정치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회를 개혁하고 관습을 바꾸어가는 섬김의 정치인이 되는 길이었다.

그렇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 정치가가 탄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