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산타 바바라, 카블리 연구소에서의 마지막 날

별아저씨의집 2013. 9. 21. 00:48



바닷가 가까운 숙소에는 해무로 인해 약간은 흐린 아침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산타바바라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아름다운 곳에서 유익하고 감사했던 일들을 돌아봅니다.


이번 여름에 산타 바바라에 처음 올라온 것이 8월 초반이었으니 벌써 한달반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중간에 일본 삿뽀로 학회도 다녀오고 LA아래쪽에 있는 얼바인에도 잠시 다녀왔지만 지난 4주는 여기 주욱 머물며 정말 오랜만에 여유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을 같이 쾌적한 날씨와 한적하고 아름다운 경관, 그리고 많은 의무에서 벗어나 하고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어쩌면 꿈 같은 삶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이 막 써질 것 같은 그런 몇 주였다고나 할까요. 


카블리 이론물리 연구소에서 다른 학자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많이 유익했습니다. 카블리 연구소와 지금 참여하는 블랙홀 우주라는프로그램은 지난 번에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블랙홀 우주 - 카블리 연구소에서).  


여기 있는 동안 아침마다 열리는 커피 브레이크 시간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한 사람이 칠판과 프로젝터를 이용해서 한 주제를 가지고 발표하면서 토론을 끌어갑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몰라서 묻기도 하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무엇이 한계이고 앞으로 어떤 일이 가능한지 여러 각도에서 질문과 대답, 토론이 이어지면 말 그대로 한눈에 한 주제에 대한 조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뒤에는 비슷한 주제가 다른 각도에서 토론되기도 하지요. 그렇게 하루하루 지식의 만찬이 벌어진다고나 할까요. 


개인적으로 여러학자들과 함께 토론할 기회를 갖고 공동으로 연구할 주제나 방향들을 잡는 일도 실질적으로 아주 유익한 일입니다. 저와 함께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이 참석했기 때문에 그들과는 진행되는 여러 프로젝트에 관해 현재 연구결과들 그리고 앞으로 연구할 내용들을 토론할 수 있었지요. 몇달 밀려 있던 논문을 다시 제출하는 일도 끝냈고 관측프로포잘 논의를 통해 새로운 구상도 하고 박사과정 학생의 논문도 마무리해서 저널에 제출하고 그 내용을 다른 학자들에게 소개하고 토론하고 그리고 후속연구를 제안하고 의견을 나누고... 하루에 하나씩 뭔가가 진행되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블랙홀 전문가들의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곳에서 몇주 씩 함께 있다보면 자연스레 새로운 연구주제들도 등장합니다. 구체적인 공동연구 프로젝트로 열매맺기도 하고 아직은 여물지 않은 아이디어로 남는 경우도 있지요. 중간 즈음에 세미나발표를 한번 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제와 관련된 주제를 앞뒤로 다른 연구자들이 발표를 했었지요. 이어지는 토론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공동연구 프로젝트가 나왔습니다.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지난 주에는 관측연구제안서도 제출했고 다음 주에도 미국국립천문대 쪽으로 연구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연구한 내용을 다 열거할 수는 없으나 어쨌거나 알찬 시간을 보냈다고 하겠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픈 많은 학자들이 있었지만 초청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 감사합니다. 


해질녘에는 아내와 바닷가로 걸어가곤 했습니다. 써핑을 하는 사람들, 해변에서 여유있게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들에 묻혀 눈부신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서서히 내려가면서 만드는 파스텔 톤의 하늘빛 바다와 연분홍빛의 하늘을 보며,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가치있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그리고 중년에 대해 생각합니다. 


3년이상 살았던 산타바바라에서 추억의 장소들을 하나씩 가보는 것도 별미였습니다. 모교회에서 어린시절을 함께 보냈던 동생의 친구를 한 30년만에 우연히 만나 인생얘기를 듣기도 하고 유학생시절에 가깝게 지내던 후배부부와 가까운 숙소에 머물며 함께 식사하고 교제하며 아이들 재롱을 본 것도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