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7월3일자 매경 칼럼에는 정보통제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제목이야 신문사에서 새로 뽑으니까 그렇다치고.
이번에 재밌는 것은 신문이나 방송도 정보의 취사선택과정에서 정보 조작을 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문장을 매경쪽에서 삭제하고 신문에 냈다는 것입니다.
칼럼내용이 정보통제에 대한 이야기 인데 더군다나 신문이 정보를 취사선택하는데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장을 그대로 삭제해 버리다니 참 아이러니입니다. 삭제된 부분은 굵은체로 처리했습니다.
[매경 사이언스플라자] 2013년 7월 1일
정보통제와 선택효과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영국 천체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은 이런 예화를 들었다. 한 어부는 크고 작은 다양한 물고기를 잡아보았지만 5㎝보다 작은 고기는 잡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5㎝보다 작은 고기는 없다고 결론내렸다. 물론 오판이다. 작은 고기는 촘촘하지 못한 그물망을 빠져 나갔을 뿐이다.
이 예화는 과학연구에 흔한 `선택효과`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생명체가 별로 없는 지구 사막 한가운데에 외계인이 도착하면 어떨까? 그들은 지구에는 생명체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제한된 정보로 자연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은 선택효과와 벌이는 기나긴 싸움이다.
선택효과로 인한 오류는 과학이 가르쳐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다양한 선택효과를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효과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
정보통제는 현대사회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다. 개인정보를 지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헌법에 보장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권리에 해당된다. 최근 미국 정보기관이 방대한 개인정보를 조직적으로 수집해 왔다고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다. 미국 내에서는 스노든이 배신자인지 영웅인지 의견이 분분하다지만 국제사회는 미국 정부를 조지 오웰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감시자 빅브러더로 비판한다.
반면 언론의 자유에 반하는 정보통제는 시민사회가 좌시할 수 없는 사안이다. 불리한 사건이 퍼져나가지 않게 방송을 통제하거나 특정 과학기술의 위험성이 알려지지 못하게 막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신문이나 방송도 정보의 취사선택 과정에서 선택효과의 오류를 범한다.
최근 원자력발전소와 관련된 비리사건들이 이어졌다. 신품으로 속인 중고 부품과 품질보증서가 위조된 짝퉁 부품 납품, 성능 검증 조작, 부품업체 선정 특혜 등 감독기관과 업체가 밀착된 비리들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원전의 안전성을 개인의 탐욕과 바꾼 중대 범죄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돈의 권력과 인간의 욕망이 낳은 짜고 치는 고스톱의 카르텔을 막지 못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눈여겨볼 점은 원전의 정전과 같은 민감한 정보가 외부에 누출되지 않도록 막으려 했던 점, 그리고 원전 안전성 같은 내용은 전문가들만 판단할 수 있는 제한된 정보라는 점이다. 식품, 의약품, 환경, 원전 등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안전하다고 하면 외부에서는 믿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일본 원전사고가 보여주듯 과학기술 발전은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가능성도 증가시킨다. 그렇다고 과학기술을 포기하고 과거로 회귀하긴 어렵다. 문제는 과학기술을 얼마나 잘 통제하고 관련 정보를 어떻게 투명하게 알릴 것이냐다. 과학기술자 스스로 정보를 통제하고 조작한다면 대중의 불신을 막을 수 없고 그것은 과학기술 자체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낳는다. 과학기술계가 더 몸을 낮추어 대중에게 다가서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 이유다.
불리한 사건의 보도를 막는 언론통제 대신 유명 연예인 결혼설처럼 대중적 관심을 끌 만한 사건을 터뜨려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정보통제 방식도 사용된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유리한 여론을 조장하는 일도 일어난다. 지난 대선 기간에 발생한 국정원 댓글사건은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건으로 보도되고 있다. 사실로 드러난다면 민주주의 훼손이라는 심각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과학기술이 정보통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방대한 정보수집과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가 과학기술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자의 양심과 과학기술의 오남용을 막는 구조의 필요성이 다시 한 번 요구되는 시점이다. 통제된 정보에 기인한 선택효과의 오류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