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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사이언스플라자] 과학을 위한 창의성

별아저씨의집 2013. 2. 16. 13:29

[매경 사이언스플라자] 2013.2.13 일자


과학을 위한 창의성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교수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 중요한 키워드로 쓰이는 단어 중에 창의성(creativity)이 있다. 창의적 사고, 창의적 리더십, 창의적 사회, 창의적 교수법, 심지어 창의적 이별 통보에 이르기까지 창의성은 기존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대안을 마련해주는 `문제 해결`을 위한 필수요소라는 인상을 풍긴다. 

창의성이란 쉽게 말해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거나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추구하는 예술가나 기획자, 신상품과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경영자,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신기술을 개발하는 학자나 엔지니어 등 직업을 가졌다면 창의성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창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연구를 하는 과학자에게 창의성은 꼭 필요한 자질이다. 

창의성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똑같이 겪는 경험이지만 그 경험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끌어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관점으로 그 경험을 바라보는 일에서부터 창의성은 출발한다. 

그런 면에서 예술가와 과학자의 창의성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예술가의 풍부한 감수성이 인간 내면의 희로애락을 다층적으로 읽어내는 도구라면 과학자의 관찰력은 쉽게 간과되는 경험적 증거들을 세세히 읽어내는 도구다. 

만남과 경험이 예술가에게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어주는 것처럼, 새로운 발견이나 자료는 과학자를 새로운 과학이론으로 이끌어 준다. 놀라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예술가나 과학자는 수집된 경험의 파편들을 한 번도 펼쳐진 적이 없는 참신한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한다. 그러면 파편들의 단순한 조합을 넘어 하나의 새로운 스토리가 창조된다. 그것은 한 편의 문학작품, 그림 혹은 교향곡이나 영화일 수도 있고 한 편의 과학논문일 수도 있다. 

과학사는 창의성의 일화로 가득 차 있다. 가령, 사과가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일상의 경험에서 아이작 뉴턴은 지구와 사과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냈고 그 힘을 해와 달과 행성들에도 똑같이 적용했다. 사과와 지구의 밀당 스토리는 만유인력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우주 모든 대상에 보편화되었고 그렇게 근대과학이 탄생했다. 더 나아가 18세기 영국인 존 미셸은 엄청나게 큰 중력을 가진 독특한 별을 상상했다. 사과가 아니라 빛도 끌어당겨 가두는 그 별은 검은 별이라 불렸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블랙홀 개념을 처음 생각해 낸 위대한 창의성의 일화다. 

창의성은 획일적인 교육으로는 기를 수 없다. 창의성은 자유로운 사고에서 탄생해 다양성이라는 양분을 먹고 자란다. 같은 책으로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TV프로그램을 보며 자라는 문화적 획일성은 창의성의 걸림돌이다. 반면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보고 다른 문화, 직업, 가치관 혹은 색다른 아이디어들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며 다양성과 새로운 시각을 배우는 일은 분명 창의성의 밑거름이 된다. 흔히 대세를 따르지 않고 튀는 사람들이 창의성을 발휘한다. 

아울러 일상이 조금 심심할 필요가 있다. 
학교와 학원 스케줄로 꽉 찬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은 창의성을 기를 기회가 없다. 심심할 틈이 없도록 끊임없이 콘텐츠를 제공해 주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 창의성과 상상력을 기를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는다. 


사회 전반에 시키는 일만 잘하는 로봇형 인재가 아닌 창의적인 인재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학교와 가정에서 우리 교육은 과연 어떤 인재를 길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부터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