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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플라자] 뛰어놀다가 쥐를 잡아라

별아저씨의집 2011. 10. 26. 18:26
매달 마감일이 순식간에 다가옵니다. 이번 칼럼에는 감상을 조금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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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자 매일경제 [사이언스플라자]

                                         뛰어놀다가 쥐를 잡아라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우주의 가속팽창을 발견한 공로로 세 천문학자, 펄뮤터와 슈밋 그리고 리스에게 수여됐다. 인류의 긴 역사 동안 우주는 무한히 크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허블과 르메트르는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주 공간이 커지고 있다는 이 발견은 현대우주론의 출발점이 됐고, 우주 시공간이 유한하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난 한 세기에 걸쳐 뿌리내렸다. 

하지만 21세기가 시작되기 직전 또 한 번 놀라운 발견이 우주론을 뒤흔들었다. 먼 우주의 초신성을 연구하던 버클리와 하버드대학의 두 연구팀이 각각 우주 팽창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과거보다 더 빠른 비율로 우주가 커지고 있다는 이 발견은 우주 팽창을 가속시킬 새로운 에너지가 존재함을 암시했고 정체불명의 이 에너지는 '암흑에너지'라 불리게 됐다. 우주에서 73%를 차지하고 있는 이 암흑에너지가 과연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은 21세기 천문학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됐다. 이 정도면 올해 노벨상 선정 이유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이 좁은 지구촌에서 바둥거리며 사는 인류가 광활한 우주 시공간 역사를 논하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라고 했다. 우주 기원을 밝히는 도전은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내며 우주에 대한 지식은 인간 삶에 대한 새로운 조망을 던져준다. 

우리는 고귀하고 위대한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되고 싶어한다. 훌륭한 가문의 후손이거나 위대한 국가의 국민이거나 혹은 최고 명문 축구팀 팬이기를 원한다. 

신비롭고 찬란한 우주의 일부인 인류가 그 우주의 신비를 밝혀내며 역사의 한 장을 채우는 일은 또 얼마나 위대한가! 인류의 우주관은 역동적으로 변해왔고 앞으로도 저 우주에는 우리를 놀라게 할 새로운 발견들이 숨겨진 보물처럼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위대한 우주는 위대한 도전자들을 기다린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했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노벨상에만 목을 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벨상은 치밀한 계획과 훈련으로 획득하는 금메달과는 다르다. 노벨상 대상이 된 연구 결과들은 우연히 빛을 보게 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 수상자들이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발견한 것은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X선 발견으로 1901년에 첫 번째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뢴트겐도 실험을 하던 도중 우연히 이를 발견했다. 

소가 뒷걸음질치다가 쥐를 잡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별 노력도 없이 공짜로 위대한 발견이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가만히 서 있는 게으른 소는 결코 쥐를 잡을 수 없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프리킥 상황에서 세밀하게 계획된 플레이로 골을 넣는 것보다는 열심히 뛰다 보니 수비수 사이에 빈 공간을 창출해 내어 득점 기회를 만드는 것과 같다. 세트 플레이가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위대한 발견의 우연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소가 마음대로 마당을 뛰어다닐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기반 조성이 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초신성이든 블랙홀이든 맘껏 관측해 볼 수 있게끔 최첨단 망원경을 대학천문대가 보유하고 있는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 연구 환경이 부러운 건 나만의 질투일까?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