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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플라자] 과학에는 민간의 힘이 필요하다

별아저씨의집 2011. 11. 30. 15:29
매경 [사이언스 플라자] 과학에는 민간의 힘이 필요하다  2011년 11월 30일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10여 년 전에 개봉된 영화 `콘택트`는 과학에 대한 깊은 통찰을 던져주는 명화다. 과학명저로 꼽히는 `코스모스` 저자이며 행성과학자로 유명했던 칼 세이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조디 포스터는 외계 생명체를 찾는 과학자로 등장해 열연한다. 뉴멕시코 사막지대를 배경으로 펼쳐 있는 전파망원경들 모습이나 과학적 증거와 경험의 역학관계와 같은 철학적 주제들도 흥미롭다. 
 

잊히지 않는 장면은 조디 포스터가 연구비를 얻기 위해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장면이다. 외계 생명체 증거를 찾지 못한 탓에 정부 지원 연구비가 끊어지자 그는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 기업과 민간 재단을 찾아다닌다. 외계 생명체를 찾겠다는 한 과학자의 도전과 좌절 그리고 열정을 한바탕 연설로 풀어내는 조디 포스터의 명연기를 보고 있자면 과학자인 내 가슴도 어느새 뜨거워진다. 

사실 수많은 과학 프로젝트들이 재력가들 기부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연구를 지원하는 카네기, 록펠러, 슬론, 패커드 재단 등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름이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대형 망원경이나 첨단 관측기기 개발이 학문 발전을 주도하는 천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세계 최대인 구경 10m인 켁 망원경은 석유 사업가였던 켁(Keck)이 설립한 재단을 통해 켈리포니아공대에 기부된 1억5000만달러를 기초로 90년대 초에 건설됐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이 정부 예산을 들여 동급 망원경들을 건설한 것이 그로부터 10년 뒤 일이었으니 켈리포니아 대학들이 지금도 관측천문학 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켁 망원경이 건설되기 전까지 약 40년간 세계 최대 망원경으로 관측천문학을 이끈 팔로마 5m 망원경이나 1917년에 건설되어 약 30년간 세계 최대 망원경이었고 허블의 우주팽창 연구에 사용된 윌슨산 천문대의 2.5m 망원경도 록펠러 재단과 카네기 재단의 기부를 통해 건설됐다. 19세기 중반 샌프란시스코에서 금광이 발견되기 직전 페루에서 귀국해 부동산 재벌이 된 릭(Lick)도 인류를 위해 남길 만한 위대한 유산을 과학에서 찾았다. 최대 굴절 망원경을 건설해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일이야말로 그의 재산이 가장 뜻깊게 사용되는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망원경 구경이 점점 커지면서 우주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고 그 흥미진진한 역사는 과학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던 사람들의 기부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개인 기부는 이미 선진국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지도층이나 부유층의 솔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에 대한 비판도 따갑다. 기부 내용 면에서도 종교단체에 기부하는 비중은 큰 반면 학술이나 문화에 기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고 한다. 

과학 발전에도 민간의 기여는 무척 중요하다. 정부와 민간의 동역을 통해 과학 발전을 도모하는 모델들은 기부가 활성화한 나라에서는 흔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보기 어렵다. 카네기, 슬론 재단과 같이 과학 발전에 한몫하는 재단이 왜 한국에는 없을까? 

기초과학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약하다. 내가 낸 세금이나 기부금이 과학연구에 사용되는 것을 우리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대중과학 수준을 높이는 일은 결국 과학자들 책임이다. 기부금에 대한 세금공제 혜택이 적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역할 모델이 필요하다. 장학재단은 상대적으로 많지만 과학연구를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재단은 아직 없다. 세계 일류라 불리는 기업들, 경제 발전 과정에서 혜택을 본 재벌들 혹은 과학의 가치를 깊이 이해하는 재력가들이 첫 삽을 떠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