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인간과 우주' 수업

별아저씨의집 2011. 9. 25. 23:19

87명의 학생들이 듣는 교양과목, '인간과우주' 수업을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강의를 할 때마다 학생들이 얼마나 강의에 흡입되고 있는지를 확연히 볼 수 있는데 이번 학기 학생들의 열의가 매우 좋아보입니다.

우선, 정원을 넘어 40명 가량이나 더, 꼭 이 수업을 듣겠다고 온 것도 기특하고 다른 수업으로 가라는 협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내 싸인을 받아간 학생들이 나름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과목 소개를 한 첫 수업에 이어, 우주공간의 크기를 다룬 두번째 수업에서 학생들이 수업에 주욱 몰입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첫번째 과제를 내주고 과목에 바라는 점과 목표를  쓰게 했습니다. 문과생들이 대부분인 수강자들은 과학에 대한 두려움이나 몰상식을 넘어 우주에 대한 과학 지식을 배우고 과학적 사고도 배우고 싶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몇번 수업을 거치면서 우주의 팽창을 설명하고 빅뱅우주론을 다루었습니다. 중고생들이 과학을 싫어하는 이유는 과학이 어렵고 재미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번 박힌 인상은 평생 바뀌지 않습니다. 과학 과목을 하나 꼭 들어야 하는 우리학교 대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편견을 깨주고 싶다는 것이 제가 가진 하나의 목표이고 또한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욕심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많아 이름을 외우기가 어렵습니다. 강의 웹싸이트에서 학생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들의 과제물을 읽고, 그들이 풀어나간 이야기와 그들의 얼굴을 연결시키려고 노력중입니다. 개인적으로 찾아왔던 학생들이나 수업시간에 질문이나 답변으로 돋보인 학생들의 이름은 쉽게 외웠는데 87명이나 되는 학생들 전부를 기억하기는  쉽지 않군요.

그래도 학생들과 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수업 전에 누군가가 갖다 놓은 캔음료가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강의를 열정적으로 하다보면 강의 후 진이 빠지는데 그때는 음료 하나가 힘을 주거든요. 그것도 학생들 중에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음료는 더더욱. 정보 전달자 보다는 선생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학생 숫자가 많으니 시간을 많이 잡아먹습니다. 87명의 과제물을 읽고 짧게나마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주는 것도 꽤 시간이 걸리더군요. 내가 지도하는 대학원생들이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도 사랑해 주세요라고 ^^

내가 왜 이 수업을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가르치는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대충 가르치고 학점주고 학기를 마무리해도 아무도 문제삼지는 않을 것입니다. 연구중심의 대학에서 교수들에게 교육은 다들 하기 싫어하는 의무사항이기 쉽습니다. 교육을 열심히 잘 하는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대신 연구에 집중해서 대학원생들을 지도하고 논문을 써야 하기 때문이빈다. 그러나 왠지 '인간과우주' 과목에는 애착이 갑니다. 직업학교같은 대학을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면서 스펙쌓는 일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는 이들에게 정말 대학수업다운 수업을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욕심, 과학에 대한 장벽을 깨뜨려주고 싶다는 욕심, 그리고 그들에게 의미있는 무엇인가를 가르쳐준 좋은 선생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그런 감사를 표현하는 학생들이 마약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수업이 있는 날은 설레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치 초등학교때 좋아하는 여친을 볼수 있다는 마음에 월요일 아침, 학교로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듯이 말입니다. 그러고보면 저에게는 가르치는 일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또 어떻게 학생들의 흥미를 끌고 생각하게 만들며 그들이 가진 것들을 끌어낼까, 또 어떤 새로운 것들을 만나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