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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물질적 창조가 아닌 기능적 창조

별아저씨의집 2009. 9. 18. 14:09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월튼의 책, The Lost World of Genesis One - John Walton (IVP) 을 반쯤 읽었다. 창세기 1장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는 이 책의 전반부의 중심주제는 바로 창조라는 것이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부여하는 의미로 쓰였다는 것이다. 창조라는 말을 뭔가를 물질적으로 만들어 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물질주의적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의 우리들은 창조라는 말을 당연히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그리고 문화를 공유하는 고대 중근동 지방의 독자들이었다면 창세기의 창조를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는 물질적 창조를 의미하기 보다는 뭔가 기능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가령, 의자가 존재한다고 했을때는 의자를 구성하는 나무라든가 그 나무의 조각들이 결합되어 의자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의자를 창조한다면 그말은 물질적으로 의자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회사를 창조한다고 할때는 어떨까? 회사를 만들때 물론 건물과 같은 물질적 구성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물질적 구성이 핵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에 사업자등록을 한다든가 사람들에게 직무를 부여한다든가 등등 뭔가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기능을 만들어 냈을때 바로 회사를 만든다는 의미가 된다. 아무리 건물 만들어 놓고 사람 뽑아 모아 두어도 사업허가나 나지 않으며 회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회사가 될수 없다. 우리는 창조라는 말을 뭔가를 물질적으로 존재하게 한다는 의미로 생각하지만 사실 창세기 1장의 창조는 기능을 부여한다는 의미라는 것이 월튼의 핵심주장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내 의자의 창조를 생각하는데 실제 창세기는 회사의 창조를 논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창세기 1장을 잘 읽어보면 창조의 원료들이 전혀 기술되지 않는다. 의자를 만든다면 나무를 가지고 만들었다든가 철로 만들었다든가라는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6일 창조기사에 나오는 창조의 대상들은 과연 어떤 원료/재료를 가지고 만들었는지가 전혀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대신 창조의 대상들에 어떤 기능이 붙여졌는지가 주된 관심사이다. 가령, 빛을 창조하신 표현을 보면 빛을 만들어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하신다. 창세기 저자의 관점은 빛에 낮이라는 기능을 부여한 것에 있지 빛을 무엇으로 부터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런 물질적 창조에는 관심이 없다.  궁창도 마찬가지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누고 그 궁창을 하늘이라고 부르셨는데 하늘이라는 창조물은 위아래로 물을 나누는 기능이 주어진다. 이 궁창은 고대 우주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고대인들은 하늘에 물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비가 와야하니까. 그리고 별을 비롯한 천체들을 떠받칠수 있는 튼튼한 받침대가 필요했다. 우리는 하늘이 공기라는 기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은 하늘을 딱딱한 고체로 생각했다. 그래야 물층을 비롯해서 해와 달과 별을 떠받칠수 있으니까. 그래서 물을 비롯한 천체들을 떠받칠수 있는 기능을 수행할 하늘이 창조되는 것이다. 그 이후 계속 나오는 창조의 대상들도 마찬가지다. 해와 달을 칭하는 두 광명체를 창조해서 하나는 낮을 주관하게 하고 다른 하나는 밤을 주관하게 하는 것도 그렇다. 어떤 물질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해를 창조하셨는가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는 해와 달에 어떤 기능을 주셨는가가 핵심이다. 이렇게 6일 창조기사는 천지만물들에 하나하나 기능을 부여해서 인간들이 살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을 기술한 것이고 그것은 이제 7일째의 안식 (안식은 진정한 의미에서 준비된 하나님의 왕국을 치리하기 시작하는, 혼란된 상태가 끝난, 안정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본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을 하다가 쉬는 안식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월튼의 해석은 많은 창세기 주석가들이 난해해 했던 문제들을 손쉽게 그리고 일관되게 풀어낸다. 창세기 1장을 그런 관점에서 읽어보자. 현대인의 시각으로 과학적 시각으로 어떻게 무엇으로 어느 순서에 따라 창조했는가라고 묻지 말고 그런 물질적 창조의 개념을 넘어서 각각의 창조물에 어떤 기능을 부여하시고, 창조계를 어떻게 질서 있고 준비되도록 만드셨는지, 기능적 창조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읽어보자. 창세기 1장이 새롭게 읽힐 것이다. 

창세기 1장을 현대과학의 시각으로 읽어내려고 하는 것은 제국주의적 성경해석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젊은지구론과 같이 하나님의 자연의 책에 반하는 주장을 하게 되는 오도된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