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누가 그를 죽음으로 몰았는가? 무죄추정의 원칙과 여론재판

별아저씨의집 2009. 5. 25. 08:11
노무현 전대통령 가족이 백만불의 돈을 받았다는 언론기사가 난 며칠 뒤, 나는 LA 한인타운의 어느 대형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다. 그날 설교를 한 목사는 예화로 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누구나 죄를 짓는다는 맥락에서 제시한 예화였지만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뇌물을 받았고 그것이 범죄라고 단정하고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가족이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나왔을 뿐인데, 그리고 노 대통령은 자신과의 관계를 부인했는데도 그대로 범죄로 규정하는 그 얘기에 어이가 없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법으로 재판을 받아 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검찰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서 구속을 했거나 기소를 했을지라도 법원이 판결하기 전까지는 무죄로 여겨야 한다. 그런데 겨우 혐의가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뿐인데 그것을 죄로 단정하다니. 동네사람끼리 수다를 떨다가 누가 그런 얘기를 하면 그럴수도 있겠다. 그러나 몇천명이 모이는 대형교회의 목사가 회중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에서 그런 몰상식한 얘기를 할수 있다는 것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무죄추정의 원칙도 모른다는 말인가? 예화를 들려면 4000억을 해먹은 사람 얘기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언론의 힘은 실로 막강했다. 그 이후 연일 보도되는 기사내용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 목사와 같은 생각을 갖도록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노 대통령이 범죄를 저질렀는가 아닌가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검찰이 기소하면 법원이 검찰과 변호사의 입장을 듣고 판단할 문제다. 문제는 언론의 보도행태다. 그리고 그 언론을 이용한 검찰이다. 끊임없이 정보를 제공하여 언론재판으로 몰아간 검찰. 물론 거기에는 우리가 명백히 알기 어려운 어떤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화가 난다.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강남 아파트 한 채 값도 안되는 돈이 없어서 그 가족이 돈을 받았다고 추정하는 현실도 화가 난다. 한국사회 악의 근원에 있는 재벌언론의 권력에도 화가 난다. 알아서 기는 검찰, 비겁한 검찰에도 화가 난다. 그리고 그런 화 날 일들이 그저 수용되는 한국사회에 화가 난다. 


노무현, 그의 행적의 잘잘못을 떠나 나는 그에게서 한국사회의 희망을 보았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 간 너희들은 한국사회의 희망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