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내조의 여왕, 알아서 기는 한국사회

별아저씨의집 2009. 5. 6. 15:42
 TV방송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한국방송을 여러개 볼 수 있게 되었다. LA에 사는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TV를 켜면 MBC뉴스도 나오고 드라마도 나온다는 것이겠다.

요즘 새로 시작된 '내조의 여왕'이라는 드라마를 꽤나 재밌게 보고 있다. 김남주의 자뻑과 오버를 보는 맛이 훌륭하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팍팍 느끼는 것은 한국사회는 말 그대로 '알아서 기는 사회'라는 것이다. 잘 보이기 위해서 미리미리 윗사람의 심기를 파악하여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띄워주는 말을 던져주고 그리고 노동과 자존심을 파는 것. 정말 알아서 기어야 살아남는다. 기어야 할 상황파악을 못하는 자들은 왕따의 세계로 추방되고 일사분란하게 기어주는 고수들이 성공한다. 아, 한국사회여!

얼마전 한국에 갔을때 어느 점심식사 자리에 선배 하나가 동석했다. 그런데 그 선배가 날 보자마자 한국에 왔는데 연락도 안한다며 다짜고짜 구박이다. 평소에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고 마지막 얼굴 본지도 5-6년은 되어가는데 오랜만에 봤으면 안부를 묻는게 상식일텐데 갑작스런 펀치에 당황스러웠다. "석사지도교수님이나 예일 선배들에게도 연락도 안하고 다니지만 아무것도 해준것 없는 선배님에게는 꼭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몹시 죄송하다"고 말 해 줄걸 미처 그냥 넘어갔다. 난 가끔씩 너무나 황당한 경우를 당하면 그것이 사실은 몰래카메라의 연출이거나 혹은 농담이 아닐까 싶어 진위파악을 하느라 할말을 다 못한다. 이 사람이 왜이럴까, 뭐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상황이 지나가 버렸다. 그것도 알아서 기라는 것이었을까? 

내조의 여왕에 담겨있는 풍자는 재밌기도 하지만 한편 끔찍하기도 하다. 무지 익숙한 저 사회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한편 찹찹하기도 하다. 그래도 심심한 천국보다는 재미있는 지옥을 선호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