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마라나타

별아저씨의집 2021. 4. 3. 14:31

창문을 열어놓으니 빗소리가 차분합니다. 언제나처럼 온세상의 빛깔을 잔잔하게 만드는 비가 갈라지고 찢어진 가슴을 촉촉히 덮어주는 듯 합니다.

 

유난히 더 잘 전달되는 음파는 세상의 소리를 한컷 키워주는 대신, 수채화처럼 엷게 채색된 풍경은 분주하던 세상에 잠시 눈을 감게 합니다.

 

4월 첫주 토요일. 새학기 시작 후, 한 달이 훌쩍 갔습니다. 창가에 지붕에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묻습니다. 무얼 찾아 그리도 정신없이 달렸냐고. 풍경 안을 가득 채운 빗방울들이 사랑이라면 모든 싸움을 덮어버리고 함께 흘러 내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겠다 싶습니다.

 

비판의식이 강해서인지 존경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선생들은 직업인에 가깝고 목사들은 사업가에 가까왔으며 정치인들은 선동가들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분야에서는 출중하나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평범하기 그지없었고, 과학자들도 직업상 모범이 될 사람은 많으나 존경의 대상은 찾기 어렵습니다. 이 모두가 내 탓입니다. 삶을 담보하는 가치를 외치고 가르치는 사람을 찾기엔 너무 비판의식이 강한 탓입니다.

 

그래도 꼽히는 분들이 있습니다. 평생의 영감이 되는 선생님, 모범이 되는 과학자, 꿋꿋했던 운동가.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삶에 있습니다.

 

문해력이 떨어지거나 비방으로 일관하거나 누명과 모략을 씌우는 사람들은 익숙합니다. 언제나 있어왔고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내가 가는 길에서 그들을 만나지 않길 바라지만 종종 큰걸음을 디뎌야 할 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할 때는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수없이 생채기를 내도 그들을 두려워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뭔가 소통이 가능했다고 생각했다가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뒤통수를 맞는 것처럼 쓰린 것은 그래도 뭔가 지향점이 같다라는 착각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존경하는 사람이 잘못한 것을 보면 손절하라는 누군가의 글에 놀랐습니다. 무서운 세상이 된지는 오래지만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가가 떨어진 주식을 재빨리 팔아치우듯 사람의 값어치가 떨어지면 팔아치우라는 이야기가 너무나 삭막하게 들렸습니다. 모함과 비난을 받는 사람을 주식처럼 빠르게 손절해 버린다면 물론 손해는 보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손절을 당하지 않으려면 추호의 실수도 없이 완벽해져야 하겠습니다. 혹은 회사의 재정이 엉망이거나 사업전망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쳐도 주식시장엔 절대로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게 해야겠습니다. 가족이든 친구든 동지든 가차없이 손절해 버리는 강팍함이 모두에게 필요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선 결코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내가 실수 할때, 내가 모함을 받을 때, 혹은 내가 비난을 받을 때, 그 비난의 원인보다 더 크게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없다면 어느 누구가 하루라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싶습니다.

 

역사는 작은 우발성들로 움직입니다. 전쟁의 상황에서 죽여야 하는 적군이지만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살려주고 숨겨주는 일들, 나를 속이는 사기꾼이지만 알고도 속아주는 일들, 피해를 주는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들, 누군가를 말없이 흠모하는 일들, 내가 손해를 봐도 큰 가치를 보고 함께 하는 일들, 흠이 많아도 미래를 내다보고 힘을 실어주는 일들...

 

이런 일들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여기에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랑의 우발성들을 통해 살아갈 수 있을 뿐입니다.

 

역사는 조건에 따라 결정하는 기계적인 과정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판단하고 의지적으로 새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우발성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지성의 특별한 의미이자 호모 사피엔스가 단지 양육강식에 의해 행동하는 동물과는 다른 인격적 지성의 의미입니다.

 

민족의 반역자로 찍힌 사람이 있었습니다. 몇년 동안이나 그에게 열광하던 사람들은 그가 연설할 때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경제적 불평등에 시달리던 사람들과 병과 장애로 고통받던 사람들은 큰 기대를 가졌습니다.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며 그를 정치적 지도자로 점찍고 따르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막대한 이익을 얻어내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갖고 있던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은 당연히 그를 매우 위험한 인물로 보았고 인터뷰를 통해 끝없이 그의 잘못을 만들어 내려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환호하던 수많은 대중들은 그에게 유죄를 선고하라고 합니다. 여론에 의하면 그의 지지율은 바닥을 칩니다. 언론은 그를 나라를 망하게 할 반역자로 묘사합니다. 그가 체포되던 날 그림자처럼 따르던 측근들은 같이 기소될까봐 죄다 잠적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최측근 중 한 명은 그 사람을 모른다고 부인하기까지 합니다.

 

그의 가장 큰 고통은 사형을 당하는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신뢰가 배반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하는 그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체포되기 직전에 피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운명을 피하게 해달라던 그 기도에 그의 가장 큰 고통이 묻어납니다.

 

이번 부활절은 비가 온답니다. 부활절마다 화창하게 피어났던 봄의 기운과는 다르게 올해는 비와 함께 차분하게 맞을 듯 합니다. 비가 좋습니다. 온세상의 채도를 한번에 바꾸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휘황찬란한 색깔들에 현혹되었다가 뿌옇게 흐려진 세상을 한발 떨어져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넘쳐나는 정보에 끌려다니며 듣지 못하던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Μαραναθ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