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다른 길은 없습니다.

별아저씨의집 2019. 8. 13. 06:07

오늘 예배드린 세인트-마틴-필즈 교회의 정면엔 십자가 대신 시공간이 휘어진 블랙홀 같은 느낌의 현대적인 형상이 있습니다. 어그러진 시공간이 십자가를 드러낸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삶에서도 십자가가 드러날 수 있다는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솔로이스트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만드는 울림이 맘속깊이 다가옵니다. 그런 아름다운 찬송을 듣고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 독특한 아름다움에 영혼이 휩싸여 하늘로 솟아오르는 그 경험을 결코 알지 못할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 지성적인 설교, 그리고 모두를 보듬어 앉는 찬송을 함께 부르는 포용의 자세. 왜 다르게 살아야 할까 깊은 의문이 드는 오전이었습니다

 

Jesus calls us to each other:

vastly different though we are;

creed and colour, class and gender

neither limit for debar.

Join the hand of friend and stranger;

join the hands of age and youth;

join the faithful and the doubter

in their common search for truth

 

3절을 부르다가 목이 메였습니다. 혐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어느 나라의 교회들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서로 믿는 신조가 달라도, 인종과 성정체성이 달라도, 친구나 낯선자나 젊은이나 노인이나, 특히 믿음이 있는자나 의심이 많은 자나, 모두 진리를 추구하며 예수의 도를 좇는 사람들입니다.

 

낯선 곳에 오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더 깊이 느끼는 법입니다. 색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고 성이 다르고, 믿음이 없고 때로는 환멸을 받을만한 사람들도 모두 환대하고 사랑해야 하는 법입니다.

 

혐오를 반대하고 사랑을 외치는 일은, 그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공평과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심오한 이유는, 바로 나도 바로 혐오의 대상이고 미움의 대상이고 의심하는 자이고 천한자이기 때문입니다.

 

혐오를 반대하고 사랑을 외치는 일은 공평에 대한 불타오르는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 혐오의 대상임을, 그리고 그런 나를 누군가 환대하고 보듬어 안아주었음을 맘속 깊이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랑 때문에, 혐오스러울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을 품고 안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유일한 길은 진리를 좇아 몸을 던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 유일한 길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