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7월의 아침

별아저씨의집 2019. 7. 3. 09:44

구름낀 아침 기온이 7월 답지 않게 아직은 선선합니다.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를 비교한 잠언 본문에 생각이 스칩니다. 창밖에선 새소리가 들려오고 방안에선 바이올린 소리가 울립니다.

 

학기를 마무리하고 숨돌릴 틈도 없이 출장일정을 소화하고 다음 주부터 다시 매달 출장이 이어지지만, 그래도 시차 탓에 몽롱피곤한 몸이라도 살짝 여유있는 한 주가 좋습니다.

 

매일 외부일정이 있긴 하지만 일과시간에 우리 연구팀의 연구진행상황도 보고 밀린 논문도 쓰지만, 그리 무리하진 않습니다.

 

스스로가 자신을 채찍질하는 피로사회에서 선순환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지혜인지 두려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만 좀 돌리고 이제는 좀 그 순환이 깨져도 어떠냐 싶습니다. 누가 들으면 별 걱정없는 사람이 하는 배부른 소리라 하겠습니다.

 

누구나 삶의 거친 현장에 있지만, 누구에게나 고통은 상대적이지만,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차이는 있기 마련입니다. 매번 위를 올려다 보고 바둥거리는 퍼덕거림을 내려놓고, 살아숨쉬는 것들에, 피어오르는 꽃들에, 희망을 잃지 않는 자들에, 눈길을 주고 마음을 주고, 먼 미래에 대한 지나친 계획과 두려움 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또 한 명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과학자, 신앙인, 대표, 선생, 사수, 월급주는자, 강연자, 해설자, 등으로 분열된 자아는 각각의 롤을 기대하는 자들 앞에서 정신분열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과학과 신앙을 포함한 모든 도그마에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그 나이브함과 궁색함을 비웃거나 멸시하지 않는 지혜를 배우게 하소서.

 

밀려서 맡은 일들에 치여 사람은 종종 도구가 취급하기 쉬우나, 그 모든 일들 가운데 사람이 성장하고 바뀌는 걸 중심에 삼을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주시길.

 

루이스가 그렸던 잃어버린 천국, 채워지지 않는 빈공간의 뿌리는 결국 상실을 경험한 온 인류의 공통된 경험입니까. 특별한 상실의 사건이 시간적으로 선재하던 않던, 내 안에 실존하는 그 부재의 공포가 종종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몽조리 덮으며 엄습합니다.

 

말초적 쾌락에 몸을 맡기는 대신, 다람쥐 쳇바퀴로 애써 그 상실을 지우는 대신, 당신의 나라가 곧 도래한다는 공허한 외침대신, 오늘 하루를 굳이 살아낼 수 있기를.

 

기소자들의 누명에 허를 찔리지 않고, 맹신자들의 사탕발림에 눈이 멀지 않고, 기억의 잔인함에 무너지지 않고, 치밀한 지성의 판단이 주는 미래의 허망함에 주늑들지 않고, 오늘도 한 걸음 애써 생존하며 나갈 수 있기를. 그 길에 새소리와 꽃과 하늘과 아름다운 사람들의 표정을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