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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기원을 밝힐 잃어버린 고리, 중간질량 블랙홀 찾다.

별아저씨의집 2019. 6. 11. 00:02

블랙홀 기원을 밝힐 잃어버린 고리, 중간질량 블랙홀 찾다.

 

블랙홀 기원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왜소은하 중심의 블랙홀이 최초로 확인되었다. 서울대학교 우종학 교수가 이끄는 국제공동연구팀은 그동안 논란이 되어 온 중간질량 블랙홀을 확인한 강력한 증거를 찾았다고 밝혔다. 14백만 광년 떨어진 왜소은하 NGC 4395 중심에서 빛의 메아리 효과를 측정한 이 결과는 한국시간으로 6 11일 0시에 Nature Astronomy 온라인 출판되었다. 

 

거대한 은하들의 중심에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미 정설이 되었다. 이 블랙홀들은 태양보다 백만 배 이상, 심지어 백억 배까지 무겁기 때문에 거대질량 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로 분류된다. 최근에 블랙홀 그림자가 관측된 M87은하 중심의 블랙홀도 태양질량의 66억배되는 거대질량 블랙홀이다. 그러나 그보다 질량이 작은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블랙홀이 과연 존재하는지는 논란이 되어왔으며 증거가 불확실하여 그동안 잃어버린 고리(missing-link)로 남아 있었다. 

 

은하 중심에서 발견되는 거대질량 블랙홀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블랙홀 형성에 관한 기원 시나리오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별 블랙홀(stellar black hole)이 씨앗이 되었다고 보는 ‘가벼운 씨앗(light seed)’ 모형이다. 태양보다 훨씬 큰 별들은 핵융합 반응이 끝나고 죽음을 맞이하면서 블랙홀로 변한다. 별의 죽음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별 블랙홀로 통칭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질량의 수십 배 가량이다. 최근 중력파가 검출된 블랙홀과 블랙홀의 충돌도 바로 별 블랙홀 2개가 서로 부딪힌 사건이었다. 가벼운 씨앗 모형에 따르면 우주 초기에 형성된 태양질량 100배 가량의 별 블랙홀이 거대질량 블랙홀의 출발점이 된다. 지금과는 환경이 매우 다른 우주 초기에는 태양질량 100배의 별 블랙홀이 형성될 수 있다고 추정된다. 별 블랙홀이 가스를 유입하며 점점 성장하여 천 배 이상 커지면서 거대질량 블랙홀이 된다는 시나리오가 가벼운 씨앗 모형이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우주 초기에 거대한 가스 덩어리에서 블랙홀이 시작되었다는 ‘무거운 씨앗(heavy seed)’ 모형이다. 가스 덩어리가 중력에 의해 수축하면서 태양보다 10,000배 가량 무거운 중간질량 블랙홀이 탄생하여 거대질량 블랙홀의 씨앗이 된다. 가스가 중력수축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원시 블랙홀이 태양질량의 10,000배 가량되기 때문에 무거운 씨앗이라고 불린다. 이 블랙홀들은 거대질량 블랙홀과 별 블랙홀을 잇는 중간질량 블랙홀이다.

 

이번 연구는 왜소은하 중심에서 중간질량 블랙홀을 처음으로 확인하여 거대질량 블랙홀과 별 블랙홀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를 이은 의미심장한 결과다. 우주 초기의 블랙홀 씨앗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블랙홀은 질량이 작을수록 발견하기 어렵다. 블랙홀의 중력이 미치는 공간이 작기 때문에  관측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공동연구팀은 빛의 메아리 효과를 이용하여 블랙홀 질량을 측정하였다. 빛의 메아리(light echo)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빛이 블랙홀 주변을 회전하는 가스구름에 반사되는 효과를 말한다 (그림 1 참조). 회전하는 가스구름은 수소 등의 원소가 내는 특정한 색깔(파장)  빛을 방출한다. (가령, 가장 강하게 나오는 수소선은 656나노미터 파장에서 관측되며 방출선이라고 불린다. 이번 관측은 수소선을 사용했다) 이 빛은 블랙홀 강착원반에서 나온 빛 (연속선이라고 불린다) 보다 더 늦게 지구에 도착한다. 마치 산에 올라가서 소리를 지르면 반사된 메아리가 늦게 들리는 것처럼, 연속선과 방출선 사이에 시간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빛의 메아리 효과라고 불린다. 우교수는 두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시간차를 측정하면 블랙홀에서 가스구름 영역까지 빛이 이동하는 시간을 알 수 있다 고 말했다. 잘 알려져 있는 광속과 측정된 이동시간(시간차)은 블랙홀에서 가스구름 영역 (방출선 영역)까지 거리를 결정해 준다. (여기서 블랙홀의 강착원반의 크기는 매우 작으므로 블랙홀과 강착원반 사이 거리는 무시한다)

 

그림 1 빛의 메아리 효과. 회전하는 가스구름이 있는 방출선 영역에서 나오는 빛(방출선)은 강착원반에서 나오는 빛보다 지구에 더 늦게 지구에 도착한다. (강착원반에서 방출선 영역까지 빛이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Δt 라고 하면, 방출선은 연속선에 비해 Δt 만큼 늦게 지구에 도착한다.) 즉 메아리 효과로 발생하는 시간차 Δt는 강착원반에서 방출선 영역까지 거리를 알려준다.

 

우교수는 지금까지 수소 가스구름을 이용하여 측정한 빛의 메아리 효과 중에서 가장 짧은 80분을 얻었다.”고 말했다. 메아리 효과로 측정된 거리와,  스펙트럼에서 측정한 가스구름의 회전속도를 합하면 뉴턴의 법칙으로 블랙홀 질량이 결정된다. 국제공동연구팀의 멤버인 미시간 대학교의 엘레나 갈로 교수는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보다 약 10,000배 무거운 것으로 밝혀졌다. 메아리 효과로 측정한 블랙홀 중에서 가장 작은 블랙홀이며, 중간질량 블랙홀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말했다.

 

왜소은하들은 중간질량 블랙홀을 발견할 확률이 높은 금광에 해당된다. 거대한 은하들과 달리 질량이 작은 은하들은 진화를 거의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초기 우주의 흔적을 갖는다. 왜소은하 중심의 블랙홀도 우주 초기에 형성된 원시 블랙홀의 특성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거대한 은하들과 달리 왜소 은하들의 중심에 블랙홀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아직 베일에 쌓여있다.

 

국제공동 연구팀은 NGC 4395라는 이름의 왜소은하를 타겟으로 삼았다. 블랙홀의 질량을 태양질량의 10,000배로 측정한 이번 결과는 이 블랙홀이 원시 블랙홀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만일 무거운 씨앗 모형이 맞다면, 이 블랙홀은 우주 초기에 태양질량 10,000배의 블랙홀로 형성된 후 거의 변하지 않아 원시 블랙홀의 흔적을 갖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가벼운 씨앗 모형이 맞다면, 이 블랙홀은 우주 초기에 태양질량 100배의 별 블랙홀에서 시작되어 태양질량의 10,000배까지  성장해야 한다. 이 경우 블랙홀 씨앗이 100배 이상 질량이 커지기 위해서는 은하 중심에 많은 가스가 공급되어야 한다. 연구팀은 왜소은하의 진화 과정 연구를 비롯한 다양한 후속 연구는 진행할 예정이다.

 

빛의 메아리 효과를 측정하려면 까다로운 관측이 필요하다. 블랙홀 강착원반이 내는 빛과 회전하는 가스구름이 내는 빛을 동시에 모니터링 해야 한다. 강착원반의 빛을 지속적으로 관측하면 빛의 밝기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광도곡선을 얻을 수 있다. 똑같은 밝기 변화 패턴이 가스구름이 내는 방출선의 광도곡선에도 관측된다 (그림 2 오른쪽 광도곡선 참조). 그러나 방출선의 변화는 메아리 효과에 때문에 시간차를 보인다. 연구팀은 두개의 광도곡선을 비교분석하여 빛의 메아리를 80분으로 측정했다. 회전하는 가스구름은 블랙홀로부터 빛의 속도로 80분 이동한 거리에 위치한다는 뜻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이 공동운영하는 구경 8.1m 제미니 천문대가 이번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몇 년 전에 한국이 제미니 천문대에 국제파트너로 참여하면서 한국천문학자들에게 제미니 천문대를 사용할 기회가 열렸다. 이 프로젝트는 대형 망원경이 꼭 필요한데, 한국이 파트너가 된 시점부터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우교수는 밝혔다. 이번 관측에는 미시간 대학의 천문대를 비롯해 전세계 20여 개의 천문대와 우주망원경인 Swift도 참여하여 2017년과 2018년 관측 캠페인을 벌였다. 미국의 여러 천문대들에서 시작해서 하와이를 거쳐 일본과 한국, 인도, 세르비아, 이스라엘, 스페인 등을 이어가며 24시간 이상 모니터링을 시도했다. 폭풍우 등으로 날씨가 좋지 않아 많은 천문대들이 관측에 실패했으나 성공한 천문대에서 얻은 자료를 통해 연구결과가 도출되었다.

 

왜소은하 NGC 4395 중심의 블랙홀을 관측하여 빛의 메아리 효과를 측정하려는 프로젝트는 과거에도 여러 천문대에서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서울대 박사과정 조호진 연구원은 매우 도전적인 관측이었고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어려움이 컸지만 대대적인 관측 캠페인과 철저한 준비를 통해 훌륭한 자료를 얻었다. 매우 흥분되는 결과다"라고 말했다.

 

그림 2. 왜소은하 NGC 4395과 은하 중심의 블랙홀.

회전하는 가스구름이 있는 방출선 영역에서 나오는 빛(방출선)의 밝기 변화는 강착원반에서 나오는 빛(연속선)의 밝기 변화를 따라 변하며, 메아리처럼 시간차를 두고 관측된다. 강착원반에서 나오는 빛(파란색)과 방출선 영역에서 각각 나오는 빛(붉은색)의 밝기를 시간에 따라 측정한 광도곡선은 오른쪽 위에 제시되어 있다. 두 광도곡선이 보이는 밝기 변화의 시간차는 80분이다. 이는 강착원반에서 방출선 영역까지 빛이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나타내며 이 시간차가 방출선 영역의 크기를 알려준다. (빛의 속도로 80분 간 거리). 배경의 NGC 4395의 영상출처: Adam Block Mt. Lemmon Sky Center/Univ. of Arizona

 

논문 링크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19-0790-3.epdf?author_access_token=hwOVjN9yCAPg3F7wZ2Lu_NRgN0jAjWel9jnR3ZoTv0MWxpfe0xwHK9j1KtVYlkHW2soZqOMl5a6sKzSZCxtSqgouHMhibQlhff5ZgGAidhMue43VhZptg2sg8X9Jg5bkYz_7L48obIMfVptKVaUxjA%3D%3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