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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월간 복음과상황 2003년 12월호: 광대한 우주공간 그리고 우리동네 - 우종학

광대한 우주공간 그리고 우리동네 [월간 복음과상황 2003년 12월호] 우종학 집을 잃어버릴 위험이 높았던 어린 시절, 꼬불꼬불한 동네 골목을 거쳐 집으로 돌아올 때면 가끔씩 새로운 길로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저기로 가면 어디가 나올까? 내가 살던 작은 동네는 어린아이의 일상을 보내기에 충분히 컸지만, 가끔씩 그 경계에 다다를 때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대책 없이 솟아오르곤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참 새로운 길을 탐색하다 가도가도 끝없는 낯설음에 두려움이 들기 시작하면 조심조심 오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 집을 잃을 염려는 이제 없어졌다. 그 대신 다양한 방식과 세계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릴 염려가 새로 생겼다고나 할까. 미국 국립천문대가 위치한 ..

지적설계 운동 비판 3 - 너무나 인간적인 반쪽 짜리, '지적' 설계 (복음과상황 2003년 2월)

이 글은 월간 복음과상황에 지난 2003년 2월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복음과상황의 문맥 (다른 분들의 기고글들과 관련된) 에서 벗어나 제가 쓴 글만을 올려서 포커스에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최근에 쓴 글은 아니지만 여전히 유효한 글이며 지적설계 운동에 대해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이 전달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반론에 응답하여 두편의 글을 더 기고하였고 이 글과 함께 올립니다. ------------------------------------------------------------ 너무나 인간적인 '지적' 설계 (월간 복음과상황 2003년 2월호) 우종학 연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고 현재 미국 예일..

지적설계 운동 비판 2 - 지적설계 논증은 과학인가? (복음과상황 2002년 11월)

이 글은 월간 복음과상황에 지난 2002년 11월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복음과상황의 문맥 (다른 분들의 기고글들과 관련된) 에서 벗어나 제가 쓴 글만을 올려서 포커스에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최근에 쓴 글은 아니지만 여전히 유효한 글이며 지적설계 운동에 대해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이 전달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반론에 응답하여 두편의 글을 더 기고하였고 이 글과 함께 올립니다. ------------------------------------------------------------ 지적설계 논증은 과학인가? (월간 복음과상황 2002년 11월호) 우종학 연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고 현재 미국 예일..

지적설계 운동 비판 1 - 지적설계 운동은 창조과학의 옷을 벗을 수 없다 (월간 복음과상황 2002년 8월)

이 글은 월간 복음과상황에 지난 2002년 8월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복음과상황의 문맥 (다른 분들의 기고글들과 관련된) 에서 벗어나 제가 쓴 글만을 올려서 포커스에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최근에 쓴 글은 아니지만 여전히 유효한 글이며 지적설계 운동에 대해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이 전달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반론에 응답하여 두편의 글을 더 기고하였고 이 글과 함께 올립니다. ------------------------------------------------------------ 지적설계 운동은 창조과학의 옷을 벗을 수 없다 (월간 복음과상황 2002년 8월호) 우종학 연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하..

밤...

조금씩 밤이 깊어 갑니다. 무척이나 더운 하루입니다. 2층짜리 아파트의 2층이라서인지, 서녘으로 향한 창으로 오후 내 햇살이 들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젊음이라는 열기가 내안에서 끝도 없이 복사되기 때문인지 스탑싸인에 멈춰섰던 차 한대가 유유히 지나갑니다. 모두 잠든 이 밤에 그는 집으로 가는걸까... 문득 나는 어디로 가는지를 한번 물어봅니다. 여름이 빨리 갔으면하는 생각같은 건 이제 하지 않습니다. 그저 여름은 매년 오는 것임을 알게되었기에, 더울만큼 더울거라고, 흐를 만큼 땀이 흐를거라고. 막 나온 C.S.루이스의 전기 한권을 받았습니다. 그의 삶의 한 주제가 'Joy'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블럭버스터 영화와 감각적인, Joy도 아닌 Joy에 비춰 어린시절의 잠못 이루던 설레임들을 떠올려봅니다. ..

내가 본 한국교회, 내가 본 코스타

한국교회와 코스타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던 이 글을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이 글은 7년 전에 쓰여졌지만 상황을 생각해보면 별로 변화가 없지 않나 싶군요.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옛글들을 정리 중인데 현재도 유효한 글들을 볼 때 씁쓸함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물론 코스타는 간사님들의 헌신을 통해 점점 좋아지고 있음을 의심할 수는 없죠. [우종학] 내가 본 한국 교회, 내가 본 코스타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1년 8월호 내가 본 한국 교회, 내가 본 코스타 To generalize is to be an idiot. - William Blake 1.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 신병 교육대와 전투지 어떤 분께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정신에 반하는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을때, 그것이 윤리의..

삶을 고민하다 2001.09.01

[기고] 유신론적 진화론과 창조과학 (복음과상황 99년 2월호)

*이글은 1998-1999년 사이에 월간 복음과상황을 통해 제기되었던 창조-진화 논쟁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을 편 장대익씨의 글과 그에 대한 응답으로써 창조과학회의 이은일씨가 쓴 글과 장대익씨의 반론으로 이어진 글에 대해 독자들의 오해를 바로 잡고 토론의 내용을 분명히 하고자 쓴 글입니다. (99년 2월) 유신론적진화론과 창조과학 (복음과상황 99년 2월호) 우종학 한국의 창조과학을재고하는 장대익씨의 글에대한 응답으로서 창조과학회 이은일 씨의 글을 읽고 필자에게가장 먼저들었던 생각은 무엇이 문제인가가뚜렷하지 않다는것이었다. 필자는유신론적진화론자도아니고, 6일창조설을믿는 사람도아니다. 단지두 입장의차이를 좀더명확히 짚고넘어가야 한다는생각으로 이글을 쓴다. 두 세계관: 기독교유신론과 자연주의 우리가 살아..

[글] 복음과상황 98년 9월호 시리즈 3. 과학과 신앙 - 우종학

지난 두편의 글에서 필자는 빅뱅우주론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그것이 가지는 기독교 신앙적 함의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번호에서는 그러나 우주론과 기독교신앙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는 입장이 갖는 문제점들에 대해 살펴보고 전체글의 결론을 내리려한다. 빅뱅우주론과 기독교신앙의 직접적 연결의 문제점 과학과 신앙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는 견해는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여 자연을 통해서 신을 알수 있다는 자연신학적 접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성을 과신하는 경향을 가진다. 또한 자연과학의 전제라고 할수 있는 합리성(rationality)과 명료성(intellegibility)에 대한 믿음을 지나치게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과학을 통해서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알아낼 수 있고 그 정보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는 낭만적..

[글] 복음과상황 98년 4월호 시리즈 2. 빅뱅우주론이 신을 보여준다는데 - 우종학

빅뱅우주론이 신을 보여준다는데.. 우종학 과학지식의 절대권력이라? 가끔씩 TV를 보다보면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를 듣는 장면이다. 어떤 현상을 분석하거나 그 원인을 따져보는 데에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그 방면의 전문가가 나와서 의견을 제시하는 장면이 포함되고 그 전문가의 말에 모종의 절대성이 부여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디어디의 의학박사가 나와서 한마디 점잖게 하거나 무슨무슨 박사가 나와서 이래저래 설명하는 내용들을 방청자들이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받아들이는 장면을 상상해 보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 '방면'이란 것이 과학일때 설명하는 과학자의 분석과 결론에 실리는 '대중적 믿음'의 정도는 한층 강해진다. 이것은 과학적 지식이 일반인의 삶과 얼마나 분리되어 있..

[글] 복음과상황 98년 3월호 시리즈 1. 성경과 과학이라고 - 우종학

성경과 과학이라고? 우종학 코페르니쿠스의 고민 카톨릭 사제들과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코페르니쿠스는 책상 한쪽 구석에 팽개쳐놓은 과학교과서를 다시 집어들었다. 이제는 헤질대로 헤진 그 페이지를 다시 펼치자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달, 그리고 행성들이 공전하는 익숙한 그림이 나타났다. 바로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는 '천동설'의 그림이었다. 이제까지 그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 그림은 틀린 것이었다. 지구를 중심에 놓고서는 도저히 태양과 행성들의 운동을 제대로 설명할수가 없었으며, 오히려 지구가 태양주위를 공전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너무도 자명했다. 그러나 자신이 회원으로 있는 카톨릭 교단에서는 성경에 기초해서 지구가 절대 움직일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지동설이 맞다면 성경이 틀린것일까? 아니야 성경이..